<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
바닷가에 앉았다. 파도 소리를 들었다. 짙푸른 물을 보았다. 수평선 너머의 모습을 상상했다. 듣고 보고 상상했으니,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다. 일찍부터 나는 다 아는 아이였다. 경험하려고 하지 않았으니,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안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사실만 몰랐다.
<헤어질 결심>에서 감독은 오직 두 인물 해준(박해일)과 서래(탕웨이)를 따라가는데 집중한다. 다른 인물들이 코믹하게 그려질 정도.(잘 알지 못하는 이들의 삶은 종종 우습게 보이지 않는가. 덕분에 영화는 지루하지 않다.) 덕분에 관객은 해준과 서래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그래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색하지 않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 이렇게 집중하나?’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내 자리가 해야 할 일을 선택했었다. ‘자리’가 ‘자기’보다 선행하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분노했다. ‘내가 한 선택이 내가 한 선택이 아니란 말이오!’ 어른이 이러는 게 위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의 나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다행히 어느덧 타인의 삶에 무관심한 법을 배웠고, 내 삶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예전의 나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난 해준과 서래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지도 않고, 때와 장소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하지만 그들이 나(타인)의 시선에 맞출 이유는 없다. 자기 일(형사와 요양보호사)로 성실하면 그만이다. 또 자신의 잘못을 알았을 때, 자기 자리에서 물러날 줄도 안다. 무엇보다 ‘나’를 넘어 ‘너’를 사랑한다.
작품이 끝나고 머리가 멍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라며 따라가다가, 말할 수 없는, 아니 아무리 큰 소리도 삼키고 마는 거대한 파도를 마주한 기분이다. 이것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고작 생각해낸 게 ‘생의 충동’ 정도? 작품을 보고 ‘아무리 무거운 말도 삶보다 가볍다.’는 것을 느꼈다. 말이 줄어들 것 같다. 부서지는 파도를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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