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하고 1년 지나 선배 둘과 낮술을 거나하게 먹고 극장에서 작품을 봤다. 술기운 때문인지 스크린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18년이 지나 다시 봤는데, 여전히 눈물이 흐르는 걸 보니, 술기운 때문은 아니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은 무기력한 개인, 그리고 그 속에서 발버둥 치는 가족 이야기는 여전히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수도꼭지다.
눈물과 더불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념, 종교 등 거대담론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하는 고민이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 두 형제의 이야기에 오버랩됐다. 작품은 형 진태가 변화하는 모습을 잘 묘사한다. 세상 좋은 형에서, 전쟁 영웅으로, 그리고 이념에 사로잡힌 한 인간으로. 아쉽게도, 현시대와 어울리는 인물은 그에게 없다.
반대로 진석은 지금 시대와 화합할 수 인물이다. 형(타인)에게 종속되기를 거부하고, 이념보다 인간으로 살기를 고집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형과 관련해서는 증오의 모습을 보인다. 그의 눈빛이 변하면서, 전쟁이라는 지옥이 내면의 지옥으로 확장된다. 싸우면 싸울수록 지옥의 바닥은 깊어진다.
사실, 독립운동이나, 한국전쟁 등 근대사를 생각하면,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든다. 영문도 모른 채 최후를 맞이한 수많은 인생을 생각하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뭐를 해야 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들이 바라던 것이, 아무것도 구애받지 않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인, 허울 좋은 핑계일지 모르지만, 최소한 내가 이 작품에서 목격한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나는 자유인으로 살아야 한다. 돈, 명예, 이념 등은 어느 정도 결별을 한 것 같은데, 아직 남은 것은 형을 바라보는 진석의 눈빛, 즉 증오다. 40년 넘게 무겁게 살아오다 보니, 나를 향한 적대의 시선을 툭 쳐버리기가 어렵다. 사람이 변했는데 아직도 증오와 싸우고 있다.
‘삶이 무거울수록 나는 더 가볍게.’
카톡 프로필을 바꿨다. 한없이 가벼워지고 싶다. 맑고 가벼운 눈빛으로, 밝고 따뜻한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