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타그램
추위가 꺾였다. 수로의 얼음이 녹는다. 그런데 다 꺾이지 않았다. 밤에는 영하 10도를 밑돌아 해가 질 무렵부터 물이 다시 언다. 물이 녹으니 자꾸 흘러들어 퍼도 퍼도 끝이 없다. 결국 논에 물을 대던 수중펌프를 갖고 왔다. 한참 겨울잠을 자던 일꾼은 얼음 속에 들어가야 했다.
속이 다 시원하다. 물이 콸콸 쏟아져 내몸에 막혔던 뭔가 뚫리는 것 같다. 그런데 힘차게 돌아가던 펌프가 ‘쉭쉭’하며 물을 내뿜지 못했다. 해는 이미 졌으니 일단 작업 종료. 다음날 돌려보았으나 안 돌아가기는 마찬가지. 전동드릴을 가져와 눈밭에서 펌프 해체쇼를 해야 했다.
짜증이 났다. 허리는 아프지, 점 빼서 햇빛은 안 봐야 하지, 봄부터 쓸 펌프는 고장 났지. 하지만 아무도 대신해 줄 이 없다. 그냥 해야 한다. 한참 낑낑대고 있는데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힐끗 봤는데 고양이치고 색깔이 낯설었다. 자세히 보니 너구리였다. 겨울잠에서 깼구나!
마른 너구리를 한참을 바라봤다. 덕분에 허리를 펼 수 있었다. 그를 따라가다 수로에 난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그래, 여기서 물이 나가면 넘치지 않을 거야. 옆을 보니 얼음 아래서 물이 뽀글뽀글 올라왔다. 땅이 온기를 내고 있다. 그래, 입춘(立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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