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언어의 경제성을 해치는 게 내 페미니즘입니다
가끔, 마치 견고한 벽에 돌멩이 한 개를 톡 던진 것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어떤 의도된 말이나 행동들이, 조금은 큰 결심이나 행동력을 요하는 어떤 것들이 말이다. 물론 어떤 돌멩이들은 쉬지 않고 던진다면 분명히 작지만 예리한 균열을 그 벽에 낼 수 있으리라 하는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돌멩이를 던진 의미를 저 벽은 알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순간들은 분명 자주 온다.
별 것 아니지만 작은 말 습관부터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데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가끔 그것들은 너무도 작고 사소해서 자주 사람들로부터 잊혀지는 듯 하지만 어쨌든, 잊지 않으려 애쓴다는 게 중요하니까.
"남자친구 있어요?" 라는 질문 대신 "애인 있어요?" 라 묻는 것, 나이가 지긋한 40 50대 여성분에게 자연스럽게 '아이가 있을 것'을 상정하고 대화하지 않는 것, 10대 청소년이라고 하여 무조건 학교를 다니고 있을 것이라 상정하지 않는 것, 그런 작고도 사소한 것들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기껏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 말들이 내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음을, 혹 가끔은 아예 한 바퀴 돌아 전달되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종종 친구들과 이를 두고 장난처럼 "내가 즐겁게 살아가기에 난 너무 빨리 태어났어."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건 반 자조적, 반 선민사상적인 농담이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본 어떤 유저의 경험담.
[마트에서 1만 5천원짜리 샤인머스캣 한 송이를 샀는데, 여성 캐셔분이 “포도 좋은거 사셨네요. 애기들 먹이려구요?”라고 했다. 성인여성이 좋은 과일을 사면 자연스럽게 자녀를 먹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구나. 저는 비싼 포도를 혼자 다 먹으려고 내일도 출근하는데요...]
유저들로부터 많은 공감과 리트윗을 받았던 이 트윗의 내용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항상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난 직업 특성상 많은 중년 여성들을 고객으로 만나고 있는데, 내가 항상 조심하는 대표적인 것은 '남편/아이가 있다고 가정하지 않기', 즉 '가정을 꾸렸다고 가정하지 않기'. 혹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기', '주부일 것이라고 가정하지 않기' 등이 있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고객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나의 이런 언행과 질문들로 인해 '중년 여성은 남편과 아이가 있고 가정을 위해 우선적으로 행동하는 주부일 것이다' 라는 편견이 이 세상에 작게나마 재생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는 노력을 하지만, 가끔 나의 질문이 힘없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중년 여성 고객에게 내가 의도적으로 '당사자 위주'로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걸면, 순식간에 나는 '시집도 안 가봐서 뭘 잘 모르는 20대 미혼 여자' 가 되고 마는 경험을 많이 했던 것이다.
나 - "와! 정말 멋진 걸 사셨네요. 컬러링북 요즘 인기던데, ㅇㅇ님도 여가시간에 해보시려고 사신거에요?"
중년여성 - "네? 아유, 제가 뭘 이런 걸 해요. 당연히 애기꺼지. 코치님 진짜 시집도 안 가고 모르시는거 티내신다~"
그러면 그냥 나는 보통 "왜요~ ㅇㅇ님이 하고 싶어서 하실 수도 있는거지." 하고 대충 말을 끝마치지만, 그 말마저 대부분 현실 모르는 철부지취급으로 끝나곤 한다.
"에이, 애들 해주고 뭐 해주고 챙기다보면 이런거 신경 쓸 여유 없어요.
코치님도 시집가서 애 낳고나면 알거에요. 그런 말 나오는지."
상황이 이렇게 되면, 내가 한 발화는 순식간에 '여성의 돌봄노동과 가정 내 사적 역할의 현실을 못본 척하는 이퀄리스트'의 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기혼 유자녀 여성이 집에서 독박육아, 독박가사노동 등으로 겪는 가부장적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그런 게 어딨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사이좋게 지내고! 여자라도 하고 싶은게 있으면 하셔야죠!" 라고 외치는 이퀄리스트. (이 부분은 쓰고 혼자 낄낄 웃었다.) 내가 페미니즘적 의도를 똘똘 뭉쳐서 보냈더니, 정 반대로 360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사실 농담삼아 이퀄리스트 같은 발언이라고 하긴 했으나 따지고 보면 나의 발화가 반페미니즘적인 것도 아니다. 내 앞에 있는 이 고객이 '자신보다 아이를 더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를 참고하여 다음부터는 다르게 말 할 수 있으니까. "컬러링북 애기가 칠하고 있을 때 옆에서 ㅇㅇ님도 같이 해 보세요. 성인에게도 정서 발달과 생각 정리를 하는 데 굉장히 좋대요. 애기 말고 ㅇㅇ님 건강도 중요하니까요."
어쨌든, 누군가는 정말 중년 여성이더라도 기혼이 아닐 것이고, 자녀가 없기 때문에, 나의 이런 태도를 다시 '정상성 이성애 가족 기준'으로 바꿀 마음은 없다. 나의 어떤 질문이나 발화를 듣고 "엥? 그런 사람도 있어요? 저 같은게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라는 질문이 돌아와도 오히려 괜찮다. "네, 그런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묻는 거에요~ 저도 바꾼 지 얼마 안됐어요. ㅇㅇ님도 앞으로 이렇게 말해 보세요~" 라는 식으로 나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니.
가끔 내가 PC(Political Correctness : 정치적 올바름)를 위해, 생각을 똘똘 뭉쳐 던진 질문이나 발화가 '정상성규범'이라는 견고한 벽에 부딪혀 톡 바닥에 떨어짐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일부러 젠더/나이/상황 등에 대해 중의적 표현을 쓰거나, '아직 정보를 듣지 못한 어떠한 개인적인 것'을 당연하단 듯 상정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 노력한다. 이 사회에서라면 지극히 당연히도, 그런 말들은 "엥 코치님 넘 당연한데 이상한 질문을 하시네요" 같은 반응들을 몰고 온다.
하지만 내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 되더라도 괜찮다.
10대 청소년에게 "혹시 학교를 다니시나요? 이 근처? 어디 학교 다니세요?" 같은 질문을 먼저 하느라, "오, 어디 학교 다니세요?"로 간단히 끝낼 수도 있었을 뻔한 언어의 경제성을 해쳐도 괜찮다. 새로 등록하러 온 중년 여성에게 "혹시 ㅇㅇ님이 남편이나 혹은 함께 사는 아이들이 있다면, 쿠폰을 나눠서 함께 쓸 수도 있어요." 라는 말을 하느라, "자녀분들과 쿠폰 함께 쓰셔도 돼요!" 라는 짧고 쉬운 말을 포기해도 괜찮다. 아이들이 있는지 없는지, 회사를 다니는지 아닌지 조차 모른 채로 중년 여성을 일률화된 어떤 한 가지 이미지로 상정하고 말을 거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리스크가 적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런 질문들이 더 당연해지는 날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세상은 꽤나 많이 바뀌고 있어, 하는 희망을 갖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