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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Mieum Mar 11. 2022

17. 가장 중립적이고 편견 없는 상황에서의 여성혐오

난 여성혐오를 하자는게 아니라 그 사람을 욕하는 것 뿐인데?



 보통의 경우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지향한다고 밝히면, 이에 반응하는 비-페미니스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본인도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을 경우 바로 동의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말이다.) 첫째,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거나 더 차별적 언행을 조심하는 등의 반응. 둘째, 비아냥거리거나 본인은 차별주의자가 절대 아닌 척 하는 반응. 대부분의 경우 후자인 사람들은 본인을 ‘가장 중립적이고,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한 다음 ‘한국 페미니스트들’은 너무 치우쳐져 있는 사람들이며 여자편을 무조건 드는 사람들이고, 그건 ‘진정한 평등’을 지향하는게 아니라는 방식으로 흉을 본다. 사실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분야의 인문학이나 사회학이었더라도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겠는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갖고 사회 운동을 조금씩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대놓고 비아냥거리며 본인은 쏙 빠져나가는 방식의 화법은 유독 페미니즘 분야에서만 강하게 나타난다.  


 사실 이젠 웬만한 질문이나 비아냥들은 너무도 많이 들어서 익숙해졌다. 해당 질문과 태도에, 나의 대답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한 메뉴얼도 질문별로 웬만큼은 있다. 내게 질문을 한 상황이 아니라도 일상 속에서 여성혐오적인 말이나 태도를 마주했을 때, 필요하다면 "방금 그 말 여성혐오적이다"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적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바로 ‘가장 중립적이고 편견없는 상황에서의 여성혐오’다.  


 ‘가장 중립적이고 편견 없는 상황에서의 여성혐오’. 반어적이자 역설적으로 수식어를 붙여 보았다. 중립적인 여성혐오, 편견 없는 여성혐오가 어딨겠는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나는 쟤가 여자라서 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쟤라서 욕하는 거야. 원래 모든 사람들에게 난 같은 잣대를 댄다고. 

- 헉 뭐 저렇게 살이 쪘냐…. 아니, 여자라서 살찌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살찌면 건강에 나쁘잖아 보기에도 안 좋고. 내가 보기엔 남자나 여자나 똑같애. 

- 그 때 문 열고 들어와서 '그 여자'가 막 소리를 지르는거야! …. 아니, 난 남자한테도 ‘그 남자’라고 지칭해. 이게 문제야? 여자니까 여자라고 한거지. 그럼 뭐라고 해? 

- 천하의 몹쓸 년이지. 자기 남편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다니 인간도 아니야. … 평소에 가정폭력 당했다고? 그래도 사람을 죽이면 돼? 이건 여자라서 욕한게 아니라 최소한의 윤리를 바탕으로 말 하는거야. 여성혐오가 아니라고.  


 이런 상황들의 공통점은, 본인은 ‘남자고 여자고’ 비판하는 사람이니, 편견없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것들이 본인이 인지하기 가장 어려운 여성혐오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확고한 가치 잣대를 통해 사람을 판단한거지, 여자라서 더 욕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그 순간’의 자기 마음 말고, 평소의 자기 마음을 함께 톺아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비판/비난하는 개체 대상이 남성일 경우 ‘사람’이라 인식해서 욕을 하고, 여성일 경우엔 ‘여성’으로 인식해서 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뭔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 ‘남자 남자’ 거리면서 욕을 하는 경우보다 ‘여자 여자’ 거리면서 욕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년’의 대응되는 단어는 ‘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놈은 남자가 아닌 인간 전체를 지칭하는 것에 가깝다. 여성에게만 비판의 세기가 강한 것은, 그런 ‘사람 자체에 대한 비판’과 ‘여성으로서의 비판’을 함께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잘못을 한 것이 아닌 상황에서의 비난도 있다. 주로 바디셰이밍의 상황이 많은데, 이 사회에서 어떤 남성이 뚱뚱한 것과 어떤 여성이 뚱뚱한 것은 그 존재의 정치적 함의가 엄연히 다르다. 뚱뚱한 남성은 ‘뚱뚱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뚱뚱한 여성은 ‘뚱뚱한 여자’가 된다. 사람이 건강 생각해서 살을 빼야지, 뚱뚱하면 둔해보이지, 하는 말들은 사실 그냥 핑계다. 이 사회는 여자가 뚱뚱한 것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등한 잣대로 욕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정도면 희망이라도 있는 편이다. 세상은 대놓고 여자를 싫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왜 저렇게 뚱뚱해, 여자가…” 라는 말이 필터링도 거치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 입에서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또 하나 더, 여자기 때문에 봐주자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는 여성에게 각박한 것도 있지만, 사실 남자기 때문에 너그러워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특히 범죄나 형벌에서. 고유정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반응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배우자를 살인’하고, ‘토막내어 유기’하는 것 자체만 놓고 보면 당연히 범죄가 맞고 비윤리적인 행위가 맞지만 그 동안 아내를 죽여 온, 더 한짓도 더 해 온 수많은 남편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 누구라도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사실 고유정 사건을 보며 우리 사회가 이렇게나 배우자를 죽인 범죄자에게 무시무시한 중벌과 비난을 내릴 수 있는 사회였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여자니까 봐주자'가 아닌, '남자라고 봐주지 말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요즘 들어 보이기 시작한 또 하나의 새로운 잣대. 이것은 흥미롭게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자주 보이는데, ‘남자는 어차피 갱생 가능성이 없고, 바뀔 가능성은 여자가 더 많으니 여자들에게 더 많이 얘기하자’라는 논리다.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 하지 말라, 여성들이 입은 옷으로 메시지를 판단하지 말라, 여성들의 능력치를 무시하지 마라 등을 남성에게 말 해봐야 어차피 그들은 바뀌지 않을테니, 여자들에게 ‘성적 대상화 될 만한 행동 하지 마라’, ‘성적 대상화 될 만한 옷 입지 마라’, ‘능력을 가지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남자들보다 더 더 노력해라’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것이다. 게다가 심지어 기혼 여성, 유자녀 여성들을 ‘스스로 가부장제 종속으로 기어들어간’ 사람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떤 연예계 여성혐오 관련 이슈가 터지면, 남성일 경우 그냥 “한남 ㅉㅉ 재기해~”로 끝나지만, 여성일 경우 “내가 저럴 줄 알았고 / 쟤 완전 흉자같았고 / 페미니즘도 모르는 어쩌구 저쩌구였고 / 원래 쎄했었고 / 누구랑 놀더니 어떻게 됐고 / 한남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고 / 좆빨러 / 그렇게 한남들한테 기생해서 살아라” 등 온갖 말이 더 붙기 쉬워졌다. 그들이 하는 것은 페미니즘인가? 아니면 새로운 종류의 여성 억압인가?  


 그리고 사실 남자에게 말해봐야 듣지도 않으니 여자에게 말한다 - 는 것은 유구한 여성혐오여 왔다. 집에서도 "아들내미들 다 똑같애. 키워봤자 소용없고, 딸내미가 최고여.”, “너는 내가 니네 오빠한테까지 이걸 시켜야겠니? 니네 오빠한테 말해서 뭐 해. 저 멍청한 놈 듣나 봐라. 너니깐 하는거지.” 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것이 실제로 여성이 더 우월하다 느끼기에, 혹은 여성이 어떠한 사회적 지위나 가치가 있기에 딸을 원하는 것인가? 절대 아니다. 한 사람에게 여성으로서, 집안의 딸로서 기대하는 역할이 더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와 같은 기대를 저버렸을 때 돌아올 여성혐오적 말들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너는 딸도 아니다, 너는 딸이 왜 그러냐, 너는 애가 딸 같지가 않다. 등) 


 덧붙여, 인터넷 SNS에서 자주 등장하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논쟁 현상이 있다.  


 “여자 패지 말라.” 


 언뜻 보면 본 글에서 쭉 언급한 내용대로 ‘여자라고 더 패지 말고 내 안의 여성혐오를 찾아보자’는 내용 같지만, 사실 조금 다르다. 이건 그냥, 막무가내로 여자를 봐주자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사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제대로 중립을 지키려면 ‘그냥 여자니까 봐주는’ 것도 있긴 해야 하겠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지정성별을 근거로 모든 비판이나 비난을 납작하게 만든 채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다보면 제대로 된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실제로 어떤 사람이 “여자 패지 말라!”면서 본인이 패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여자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페미니스트로서 가장 바라는 사회는 ‘여자니까’ 더 봐주거나 더 패지 않는 사회다. 아니, 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인 사회를 꿈꾼다. 예를 들어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을 유독 욕하거나, 유독 봐주자는 주장이 있다면 그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여기에서는 “나는 근데 김씨면 좀 봐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김씨라고 봐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라는 논쟁 조차 웃기게 들리지 않는가? 젠더가 그 자체로 평등한 사회, 여성이라는 것이 인간의 일부로서, 비남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사회. 여자가 딱히 더 욕을 먹거나, 혹은 욕을 해서는 안 될 대상이 아닌 사회. 하지만 아직 일만년은 먼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러니 본인의 마음 속에서 누군가를 비판할 때, 마음의 소리를 솔직하게 들어 보시길. 지금 이 대상이 남성이었고, 같은 행동을 했어도 이렇게까지 혐오스러웠을지, 욕을 이렇게나 많이 먹었을 일일 것 같은지. 대부분의 경우 남성의 예시가 훨씬 더 많았을테지만, 그걸 자체적으로 내 마음속에서 거르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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