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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Mieum Apr 06. 2022

18. 예쁜 여자가 벗으면 무조건 '성적 대상화'?

뚱뚱한 여자가 벗으면 멋있는거고, 날씬한 여자가 벗으면 성적 대상화라고?

 



“지나친 성적 대상화 논란…”, “성적 대상화 반대 여론…”  


 ‘성적 대상화’라는 표현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이후로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혐오(misogyny)’ 개념에 대해 비교적 그 전보다 꽤 익숙하게 접해 왔다. 물론 그 때에도 지금에도 여전히 여성혐오라는 단어에 대해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라고 오독하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 보이긴 하지만. 이 여성혐오의 개념과 함께 지나친 ‘성적 대상화’, 등의 표현에 대해서도 많이 대중들에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 단어 역시 상당히 오해를 가지고 퍼지고 있는 듯 하다. 



간호사 '성적 대상화'로 논란이 되었던 모 가수의 뮤직비디오 캡쳐.


 성적 대상화라는 표현은 뮤직비디오, 게임, 영화, 광고, 뮤직비디오, 웹툰 등 매우 다양한 매체와 미디어에서 다뤄진다. 2020년 11월 말, 구글링으로 <성적 대상화 논란>을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이미지는 위 가수의 뮤직비디오 캡쳐본이었다. 신곡을 발표하며 뮤직비디오에서 ‘간호사 복장’을 적절하지 못하게 다뤘다는 이유로 구설수에 올랐던 사건이다.  



B사의 아이스크림 광고 캡쳐


아이스크림 회사로 유명한 B사도 최근 아동 성적대상화 광고로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다. 새로운 맛의 아이스크림을 출시하며 냈던 영상 광고에 위 아동이 등장하여 각종 성적 메타포를 활용한 영상 미장센들을 보이며 문제가 되었다. 어린 아이가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을 가까이 클로즈업 하여 입술과, 입 안에 들어가는 아이스크림 만이 연출되는 장면도 등장한다.  



성적대상화로 논란이 되었던 모 웹드라마의 PD채용 장면.


 또한 모 웹드라마에서는 PD를 채용하는 면접 장면에서 지나치게 여성의 몸을 성적대상화하였다고 논란이 되기도 했다. 허벅지나 가슴 등의 여성 신체를 확대하여 담아내는 남성적 시선으로 드라마를 담아내었다는 이유였다.  


 사실 이 모든 논란들은 매우 정확한 지적이었으나, 일부 이를 이해하지 못한 네티즌들은 “여자들이 예쁜 여자들을 질투해서 저런 논란을 만드는 것이다.”, “저게 뭐가 야하냐”, “이건 21세기에 맞지 않는 성적 보수주의(성적 자유주의의 반대말)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사실 페미니스트들이 성적 대상화를 반대하는 맥락은 전혀 성적 보수주의적인 메시지가 아님에도. 성적 자유주의를 쾌락주의와 혼동해서 나타나는 반응들이다. 


 이 사회에서 성적 대상화 논란이 될 정도였던 사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페미니즘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무조건 여자한테 노출있는 옷 입히면 안된다는거지?”, “그러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섹시하게 보이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는거야?”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워 보이긴 한다. 그리고 또 그러한 시각으로는 “여자들도 남자 벗은 거 좋아하잖아. 남자들에게는 그 대상이 여성인 것일 뿐인데, 그러면 그게 잘못됐다는 거야?” 라는 질문에도 대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기에 이 쯤에서 성적 대상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성적 대상화(性的 對象化, Sexual objectification) 또는 성적 객체화(性的 客體化), 성적 객관화(性的 客觀化), 성적 사물화(性的 事物化)란 인간을 단순한 성적 쾌락의 도구로 취급하는 행위이다. 좀 더 폭넓은 개념인 대상화는 한 개인을 그 사람의 품성이나 존엄성에 상관없이 상품이나 물건으로 취급하는 행위를 뜻한다. 즉, ‘한 개인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자신보다 사회적.정치적, 신체적으로 약한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을 인격이나 감정이 부재한 물건처럼 취급하는 현상.’ 이는 대상화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기 자신이 주체로서 기능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 혹은 성적인 요구에 따라 행동하며,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대상화는 사회적 수준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관찰되지만, 개인의 행동에서도 관찰될 수 있다. 즉 저 ‘objectification’이라는 단어에서 큰 오해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적 대상인 상대니까 ‘성적 대상화’해서 보는 게 무슨 문제가 돼? 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정확하게 이 표현을 ‘성적 물화’, 또는 ‘성적 사물화’로 바꿔서 쓰는 것이 더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적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논란 중 하나 예시로 가져왔던 간호사 복장 성적 대상화 관련 이슈는 사실 굉장히 뿌리깊은 성적 대상화의 역사가 있다. 현재는 아무도 저렇게 생긴 간호사복을 입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치마도 입지 않고, 활동성이 좋은 바지를 입는다. 간호사캡도 1990년대 이후로 사라진지 꽤 오래 된 의복이다.) 여전히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류의 AV물에서는 그런 복장의 간호사들이 등장한다. 또한 ‘이벤트성 코스프레’라는 이름 등으로 나오는 연인들 간의 성적 코드로 쓰이는 복장에서도 그렇게 쓰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옛날 버전의 간호사복과 간호사캡은 성적인 코드로서 연결이 되어 읽히기 쉽고, 현실과도 점점 더 거리가 먼 ‘성적 대상화’된 옷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해당 아이돌이 ‘예쁘고 섹시하게 잘 입어서’ 질투하는 것이라는 의견은 상종할 가치도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위 뮤비에서 해당 아이돌이 저 옷을 입고 섹시한 제스쳐를 취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문제가 된다.


 사실 어떠한 상징적, 의미적 대중코드가 없다면 해당 직업군에 대해 굳이 ‘매력’을 강조할 필요도 없다. 예컨대 아무도 이런 뮤직비디오나 미디어에서 같은 여초 직업군인 ‘영양사’라는 직업을 성적 대상화 하지 않는데, 이는 영양사들이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해당 직업이 그런 의미로 더럽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양사의 의복이나 상징물(조리기구 등)은 성적 코드로 읽히지 않는다. 즉 위 아이돌의 뮤직비디오에서 정말 간호사가 역할적으로 필요한, 의료진의 역할로서 현실적인 복장을 입고 등장한 것이라면, 아무리 그 아이돌이 예쁘고 매력 있다고 해도 문제로써 지적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또한 아이스크림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출처 : ifs post 기사


 위 내용은 2019년도에 쓰여진 ifs 포스트의 기자가 쓴 글 내용 일부 발췌다. 역대 해당 아이스크림의 광고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그 영상의 촬영 기법과 담아낸 시선, 그리고 미쟝센의 기호성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해당 광고에서 어린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는 것 외에 그 어떤 서사도 들어가 있지 않는데, 그 담아내는 과정이 신체를 조각조각내어 담아내고 있다. 사람은 사람을 인식할 때 그렇게 한 부분만 뚫어지게 인식하지 않는다. 이는 해당 대상 아동을 사람, 인격체가 아닌 아이스크림을 먹는 여성의 입술로써 소비한 사례다. 어린이지만 짙은 화장을 하여, 입술만 클로즈업 시켰을 때 아동임이 드러나지도 않게 촬영되었다. 예뻐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로 그 장면을 담아내는 과정이 문제적이라는 의미다.  


 이쯤 되면 왜 마지막 사례였던 웹드라마 채용 장면이 성적 대상화되었다고 논란이 되었는지 이유가 선명히 보일 것이다. 어이없게도 성적 대상화 논란에 시비를 거는 대중들은 대부분 자꾸 ‘매력’을 그 기준으로 삼느냐며 반기를 드는데, 해당 장면에 나온 여성의 몸이 매력적이어서 성적 대상화라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를 초래하는 어떤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뿌리 깊은 메시지여 왔다.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낸 의도와 맥락이, 해당 배우를 사람으로서 대하지 않고 ‘가슴’, ‘허벅지’로만 대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위의 웹드라마 캡쳐본을 언뜻 봤을 때도 약간 '후방주의'스럽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가?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몸'일 뿐인데도? 


 즉 ‘대상화’라는 의미는, 해당 신체 부위가 물건화되어 '쓰여지고' 있다는 의미다. 사람이 야하거나 섹시한 것, 지나치게 예쁜 것이 문제가 아니다. 마치 성적 도구처럼, 성인용품처럼 사람이 다뤄지고 있다. 부분 부분 나뉘어 촬영되며 성적 코드를 자극하고, 성적 미장센만을 담아낸다. 상징적인 물품들이 여성의 신체와 함께 소비되고 있다. 그런 것이 성적대상화, 성적 물화다.  



2019년 변경된 <선정성> 픽토그램. 좌 - 예전버전, 우 - 신버전.


  영화나 드라마에서 <선정성>을 알리는 지표 픽토그램도 그래서 변경되었다. 여성의 몸 실루엣이 그려져 있으며 <선정성>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은, 여성의 몸을 인간의 몸으로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흔히 여성공포증이 있어서 여자와 대화를 잘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남성들의 대부분도 여성을 ‘인간’이 아닌, 야동 등으로만 접한 ‘신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인간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바라본다면 성별이라는 것이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될 이유가 될 수 없다. 이런 모든 것들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때문에 나타난 것들이다. 

그러니, 본인이 여성애를 하기 때문에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필연적이라고 느꼈던 사람들에게, “그 포인트가 문제가 아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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