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주댁민댕씨 Aug 24. 2022

달라진 풍경

벌써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온지도 4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 와서도 나는  년에   예전 동네를 지나 쌍문동에 있는 치과를 가곤 한다. 평소처럼 차를 몰고 방학동으로 향했다. 예전  앞에 있던 홈플러스에 자연스럽게 주차를 하였다. “어머! 여기 극장  지었구나. 홈플러스도 이제는 요금을 받네?”라는 말을 뱉어내며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마주한다. 좁디좁은 쌍문동 뒷골목에 주차하기가 매번 어려워  이곳에 주차를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정거장을 지나서 치과에 가곤 한다.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즐겨   없는 양주의 생활에 결핍이라도 느끼듯 나는 치과에 가는 날이 너무 즐겁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매번 나도 모르게 달라진 풍경에 마음이 시끄러워지곤 한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있던 것이 사라지고 또 지금도 있는 그곳들을 바라보며 절로 웃음이 나고 또 달라지긴 했는데 예전과는 또 다른 모습들을 바라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때만큼은 ‘예전에 여기 뭐가 있었더라?’하며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비록 몇 년 전의 일인데도 또렷한 기억은 형태도 없이 구름처럼 흘러간다.


치과진료를 보고 돌아오는 길 같은 생각들로 몇 정거장을 지나서야 멍한 표정으로 정류장에 하차한 후에도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예전에 살 던 동네인데도 익숙하지 않았다. 집 앞 작은 구멍가게처럼 드나들던 홈플러스도 뭔가 조금씩 변해 있었지만 그 옆에 낯선 cgv 건물이 눈이 들어온다. 내가 좋아하는 극장 밑에는 또 내가 좋아하는 모던하우스와 서브웨이 그리고 스타벅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꼰대 같은 말투로 기억을 추억한다. “예전에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마시려면 쌍문동까지 버스를 타고 갔어야 했는데, 그 연말 지나 나오는 시크릿 박스를 살려면 새벽같이 버스를 타고 나가 줄을 서야 했다고!”그러면서도 그 말들이 무색하게 ‘나 여기 살았어도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이 동네도 참 좋아졌다는 생각에 잠시 혼미해진 정신을 붙잡고 잠시 스타벅스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해 놓고는 반대편 길 건너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여긴 또 ‘아직 그대로구나!’싶은 마음에 편안함 반, 안쓰러움 반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금세 변하는데 왜 아직 저기는 그대로인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음료가 나왔다. “양주댁 민댕씨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나를 부르는 저 소리가 왜 이리 낯설기만 한 건지,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결국 지금 이 자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익숙한 듯 낯선 마트 안에서 장을 한가득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아주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첫째 지우가 돌도 되기 전, 주말에 남편과 셋이서 친정을 갔었는데 유모차에 지우를 태우고 예전에 살 던 집 근처로 산책 아닌 산책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넓어만 보였던 초등학교  주변의 길을 걸으며 ‘이리도 좁았단 말이야?’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저만치 보이는 학교도 운동장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작게만 느껴졌다. 그만큼 내가 큰 거겠지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여기서 부모님들까지 모여 운동회를 어떻게 했을까 싶은 의문도 들곤 했다. 그 을 따라 한참을 가는데 학원이 있던 자리도 친구네 미용실도 내가 다니던 학원도 여전히 자리를 남겨 두고 있었다. 단지 낯선 간판만이 또 다름을 장식하고 있을 뿐, 그 마저도 너무 신기해했었다.


길을 따라 언덕을 올랐다. 친구가 살던 집 가끔 할머니와 다니던 미용실 그리고 슈퍼가 있던 자리까지 내 기억에 오차라도 있는 듯 형태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여기가 이랬다고? 뭔가 되게 이상하다. 기분 참 묘하네!” 손에 쥐고 있던 레몬에이드를 맛없다는 핑계로 잘 마시지 않았지만 난 다시 생각해보면 목구멍으로 무언가를 넣을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던 것 같다. 꽤나 목 끝이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몇 분 안 되는 거리인데도 지금의 친정집으로 이사와 내가 성인이 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될 때 까지도 한 번도 찾아가 보지 않았던 동네가 낯설다 못해 정말 이상하리만큼 불편했다. 내가 살 던 빌라도 그대로고 그 옆에 있던 단독주택들도 여전히 있는데 감정 없이 변해버린 동네도 집 앞 길도 너무 좁고 친구들과 놀던 풀밭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울창해져 버렸지만 꽤 상막해져 정신이 혼미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그런 기분을 느껴 버린 그때의 내 감정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또 무수히 변해 가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보면서 과연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가 아는 동네들은 과연 얼마큼 변해 버릴 수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본다.


가끔은 우리나라만큼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 나라도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러다 신혼집도 아이들을 키우며 살던 집들도 가깝게 지내던 시댁의 아파트도 어느새 흔적을 잃을 것만 같아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세월의 흔적이라는 것이 또 그만큼의 빛을 낼 때도 있을 텐데 우리에게 남긴 세월의 흔적은 뭔가 깨끗하고 반짝거리고 요즘 것들에 취중 된 형태로만 남아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씁쓸해졌다. “라테는 말이야!” 이런 언어유희처럼 웃어넘길 수 없는 추억들도 그 안에서 수중함도 분명 있을 텐데 너무 쉽사리 숨 쉬듯 변화하는 현실이 조금은 안타까워진다. 그래서 사실 조금은 슬펐다.


내 아이들에게도 조금은 간직하고픈 풍경이 있을 텐데  나만큼 슬퍼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내가 예전 동네에서 문득 살고 있었어도 괜찮았더라는 생각처럼 좋을 때도 있지만 너무 아무렇지 않게 감정을 다 태워버린 듯 한 공허한 변화를 마주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부끄럽지 않게 조금은 지켜내 줄 수도 있는 어른들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짧게나마 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의 싸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