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에 둘째가 타던 자전거와 친구의 아이가 타다 물려받은 자전거 2대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던 어느 날, 막내가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다. 아직은 너무 어리다고 안된다고 미루기를 수십 번 끝에 결국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여름은 훌쩍 지나고 겨울을 바라볼 그즈음에 막내는 네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내를 바라보고 있으니 애들도 참 제각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자전거를 타기까지도 꽤 다르구나!’ 새삼 깨 닿는다.
앞으로 굴러도 쉽게 뒤로 돌아와 버리는 발 때문에 나아가지를 못 한다. 그래도 네발자전거쯤은 4살 때 거뜬히 타던 지우와 지아를 생각하며 곧 하겠지 싶었다. 놀이터 밖에서 낑낑거리며 한 바퀴를 돌고 오더니 다리가 아프다며 잠시 평상에 앉아 쉬었다. 그때를 기다리던 우진이가 슬쩍 다가와 “나도 한 번 타봐도 돼?”라고 묻자 잠시 머뭇 거리더니 한 번만 타 보고 달라고 하더니 계속 우진이를 주시한다. 불안한 마음에 흔들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 번씩 발을 구르고 멈추기를 계속하더니 짜증이 났는지 왜 안 가냐며 버럭 소리를 내어 울어버린다. 그때 바람처럼 우진이 앞에 나타나 서진이가 자전거를 체가 발을 굴러 자전거를 타고 가버린다. 한 바퀴 도는 동안 힘들어하더니 타는 방법을 터득했다. 몇 번을 타더니 제법 잘 간다. 유치원까지도 타고 가겠다고 해서 몇 번을 동행했다. 우진이는 서진이가 다 타고나면 자기가 타야겠다고 말하며 삐죽 웃어 보인다.
자전거는 몇 번의 동행 끝에 추위에 밀려 다시 현관 앞에 세워져 있다. 봄 되면 다시 타보자고 했는데 물려받은 자전거 보다 조금 더 큰 누나의 자전거를 쓱쓱 만지더니 “나 이제 이거 타도되지 않아?”라고 묻는다. 봄이 되면 또 얼마나 신나게 자전거를 끌고 나갈지 안 봐도 알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초등학생이 되어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었는데 사 달라고 말도 못 하고 아빠한테 가르쳐 달라도 떼를 써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친구가 시골에 가야 한다며 자전거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자전거를 잘 봐달라고 부탁하고 떠났다. 나는 그 자전거를 매일 같이 꺼내 타고 또 타고 언덕 끝에서 집 앞까지 내려오는걸, 처음에는 중심도 못 잡더니 이틀 만에 진정 자전거의 달콤함에 빠졌었었다.
친구가 돌아와 “내 자전거는?” 하고 물었는데 뻔뻔하게 매일 같이 잘 있는지 확인하느라 무척 힘들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 나에게 자전거를 맡겨두고 내가 자전거를 타게 됐을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자전거를 독학으로 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자전거에 대한 욕심을 늘 자리 잡고 있었다. 늘 자전거를 타다 말다를 반복하더라도 다시 손잡이를 잡고 올라탈 때면 늘 흥분되는 건 그런 설렘을 맛본 덕이 아닐까 싶다.
그 기억의 글을 쓰고 있으니 열심히 발을 굴러가며 네발을 타고 두발을 타기까지 자신의 온전한 노력이 있음을 알고 자전거에 대한 설렘을 늘 간직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첫째도 나처럼 어디선가 연습을 하고 두발을 탈 때쯤 짜잔 하고 나타나 자전거를 타는 친구들 속에서 함께 하며 두발을 굴리도 땀을 흘렸다. 그 노력이 어떤 일을 하던 그렇게 해 낼 수 있는 씨앗 같은 마음이 되었으면 한다.
아직은 두 바퀴로 서있는 누나의 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달아 봄이 되면 서진이와 함께 놀이터를 향해 밖으로 나와야겠다. 겨울이 오기 전 아팠던 무릎을 떠올리고 끙끙거리고 이마에 맺혔던 땀들을 기억하며 인생을 살아간다면 매일의 힘듦도 가끔은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 때문에 웃음이 절로 난다. 그렇게 매일 커 가는 거겠지. 어서 봄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