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서사를 만들어준 일들

Chapter 3. 좋아하는 것, 자유로움.

by 밍기적의 기적

처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엄마는 나의 피아노 학원비를 꼭 챙기셨다. 아빠의 사고 이후 집안 형편이 힘들어졌지만, 피아노 대회에 나가도록 지원해 주셨고, 연주회에서는 내 연주에 대한 피드백을 아끼지 않으셨다. 피아노는 그 시절 나에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삶의 중심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진로를 고민할 때쯤, 피아노는 내 삶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부분이 되어 있었다. 서울대 교수님이 계신 하트 장학회에 선발되어 서울에서 클래식 피아노 레슨을 받던 어느 날, 인간극장에 출연한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를 처음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나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피아노를 즉흥적으로 연주했다. 그 모습이 충격이었다. 내가 알던 피아노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떻게 그런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작곡이나 즉흥 연주, 재즈라는 장르 자체가 내게는 낯설고 새로웠다.


궁금증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학교종이 땡땡땡”을 내 멋대로 바꾸어 보았다. 손이 가는 대로 화성을 바꾸고, 리듬을 변형해보았다. 놀랍게도, 나도 그런 연주를 할 수 있었다. 연습하던 곡을 조금씩 변형하며 연주를 이어가다 보니, 그저 악보를 따라 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즐거움이 찾아왔다. 마치 내가 피아노의 세계를 처음으로 진정하게 탐험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천재라도 된 줄 알았다. 자유롭게 음악을 탐색할 수 있었던 건 틀에 얽매이지 않고, 기존 지식에 휘둘리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공부와 거리가 멀었던 것이, 연주의 자유분방함에 도움이 되준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진보라의 연주에서 느낀 감동은 클래식 연습 방식에 대한 의문을 품게 했다. 나는 악보에 얽매여 표현하는 데만 집중했던 기존의 연습 방식에서 벗어나, 코드와 감정을 통해 나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실용음악”과 “재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엔 새로운 꿈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꿈은 내가 이미 가졌던 하트 장학회의 자리를 내려놓을 만큼 강렬했다.


엄마와 함께 강남역 실용음악 학원을 찾아다니며 입시 준비를 시작했고, 고3 겨울, 나의 진로는 실용음악으로 정해졌다.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 그 열정으로 인해 마음이 들뜨는 경험은 특별했다. 그때의 열정과 설렘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나누며 성장한 시간들은 단순한 학창 시절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그때 느꼈던 기쁨과 열정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모든 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지는 않다. 좋은 기회가 많았지만, 그 기회를 모두 살리지 못했던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그 시절 내가 겪은 어려움과 내가 선택했던 길을 존중하고 싶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으니까.


요즘은 입시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아이들을 보며 과거의 나를 떠올리곤 한다. 예전에는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연습을 해오지 않은 학생에게 화가 나기도 했고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이듯,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어쩌면 나이가 든 탓일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을 통해 진로를 정하고, 일을 찾고, 돈을 벌고, 그렇게 그렇게 달려온 시간들. 1/3의 인생을 살아왔다. 아직은 한참!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다.


난, 앞으로 어떤 걸 좋아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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