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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블리 Nov 01. 2021

그저 그런 디자이너

Joshua

@oni_hooya.dad





나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는 지금 다른 사람들, 다른 제품들에 비평을 하고 왈가왈부할 정도의 실력 있는 디자이너는 아니다.
그래서 그냥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 이야기를 보며 '저 사람은 저렇게 살고 있으니,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이 드는 글이 될지라도 그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대학 전공수업에서 HCI를 경험하고, 사용자가 알고 싶어서 마케팅을 복수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감성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다른 회사에서 UX멤버십을 하며 (당연히 입사할 것이라는 생각 했지만) 입사 실패를 경험하고 들어온 지금의 회사.


입사한지도 2012년이니, 10년을 UX 디자이너로 한 회사에서 근무했다. 

입사해서는 SI 컨설팅을 하는 UI/UX 디자인 기획자로,
때로는 신사업 조직에서의 신규 사업에 대한 UI/UX를 분석하는 전략가로,
때로는 Research 조직에서의 리서쳐로, 다시 솔루션 상품의 UI/UX기획자로,
Agile 조직의 UX 디자이너로, 다시 솔루션 상품의 UI/UX 중간 리더(후배들이 중간 리더라고 생각할진 모르겠지만...)로, 다양한 역할자로 회사에서 살아왔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양한 '역할자'로서 경험을 했다는 것은 굉장히 복 받은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았다는 것은 그리고 다양한 서비스나 솔루션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는 것은

늘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 하는 나의 성향과 어쩌면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아직까지 Specialist가 아니 Generalist로 살아가는 중간 리딩을 하는 디자이너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간중간 많은 후배들이 들어와 나의 멘티들이 되기도 했고, 팀 내 신입사원을 위한 교육들도 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 즐거웠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계속 공부하면서 새로운 것들에 대한 지식을 넓혀 나가야 하는 UX 디자이너임에도 그러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뭐라고 얄팍한 경험과 지식으로 그들의 멘토로 그런 말들과 행동들을 했었는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나의 회사는 나름 큰 회사이다.
큰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은 디자인 인력이 적을 때는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디자인 인력이 늘어나면서 어느 정도의 역할이 정해진 업무를 주로 하게 된다는 면도 존재했다. 그리고 초반에는 디자인에 대한 다른 사업부나 개발의 이해가 적다 보니 굉장히 많은 허들들이 생겼고 많은 논쟁과 굉장히 설득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겨우 제안할 수 있고,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는 모두가 나도 UX 좀 아는데 생각하며, 서로 사용성을 운운하며 또 다른 논쟁을 벌이는 곳이기도 한 것 같다.




큰 회사의 특성상, 아니 회사라는 특성상 그러한 경우에는 사용자 리서치라던가 검증을 통해 이 UX가 맞아라고 이야기해야 하지만 Persona 조차 명확하기 않거나 리서치의 시간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디자이너의 직관에 의해 어떤 디자이너가 해당 솔루션을 전담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수준을 갖고 있는 디자인이 나오기도 한다.


B2B 솔루션을 하고 있는 경우, 우리 솔루션을 사용하는 회사가 일명 '갑'이 되어 버리기에 그 회사의 VoC에 휘둘려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새로운 버전이나 Renewal을 하자고 하면서도 과감하게 기존의 것을 버리기 힘든 경우가 많이 발생하여 디자이너로서 안타까움을 느낄 때도 많다.


큰 회사이기에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돈을 쥐고 있는 사업, 상품의 큰 그림을 그리는 상품, 그것들을 현실화하는 디자이너, 그것을 구현해주는 개발자와 테스터들 사이에 미묘한 자신 역할에서의 날카로운 신경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업과는 리서치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던가 우리 인력이 부족해 업체를 쓰고 싶거나 번역 업체가 필요한데 금전적인 이유로 그러지 못해 당황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중간 리더가 되는 시점(중간 리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메신저 리더 방에 자꾸 불려 가는 걸 보니 중간 리더 같지만...)부터는

실무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점차 후배들이 업무를 잘할 수 있도록 보고나 협업 부서와의 협의의 전면에서 때로는 방패가 되어야 하기도 하고, 늘 멋진 선배 그리고 잘하는 선배와 일하고 싶고 하나라도 배우고자 하는 후배 디자이너에게 실무적으로 무언가 알려줄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하며(내가 그런 선배인지 아닌지는..)
그들이 진급 대상자일 때, 리더에게 지속적으로 그런 것들을 어필하고 지금 어떤 것을 잘하고 있으니 신경 써달라는 이야기를 꾸준히 하는 것 또한 나의 일이다.


나는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이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지만 사람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충돌과 갈등은 늘 있게 되고 그것이 리더와 일 수도 있고 협업 부서 사람들 일 수도, 때로는 동료 혹은 후배와 일 수도 있다.


큰 회사일 수록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기도 하고 Role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어떤 프로젝트 혹은 어떤 협업 부서와 일하느냐에 따라 프로세스와 롤이 상이한 순간도 존재한다. 어느 정도 업계에 이런 일은 이런 역할자가 해야 한다는 것이 정해져 있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아니기에 늘 이견은 있기 마련이고, 특히 회사 업무다 보니 책임 회피성이 필요한 순간도, 혹은 이 일이 네 일이니, 내 일이니 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순간도 더러 생긴다. 또한 어떤 디자인 툴, 혹은 협업 툴을 사용할 것이냐에 따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늘 존재하고 큰 회사일 수록 보안이 어떠하니 안된다는 둥, 방화벽 이슈가 있다는 둥 다양한 이유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 좀 더 편하게 업무 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 말했던 이런 상황들 속에서 나름 치열하게(?) 버티며 디자이너로 살아가고 있다.
겪고 있는 상황들을 말하고, 어떻게 해결하며 살고 있는지는 말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같은 상황이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사람들과 일하느냐에 따라서 해결 방법은 서로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리고 내가 해결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더 좋은 해결 방안도 어딘가에는 있기 마련이니, '나는 그냥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끝으로 내가 어떤 디자이너이냐 묻는다면 어느 정도 큰 기업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제한된 환경 속에서 나름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자 몸으로 부딪히고 논쟁하며 나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저 그런 디자이너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저 그런 디자이너가 아니라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디자이너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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