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블리 Nov 04. 2021

엄마,
UX디자이너는 이런 일을 해요.


Sally






회사 연구회 활동 마무리로 브런치에 디자이너의 글을 한 편씩 싣자는 제안을 듣고

도대체 무슨 글을 써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최근에 엄마에게 제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돈을 받는지에 대해 설명했던 것이 떠올라

그걸 끄집어내어 UX 디자인이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께 설명을 좀 드려볼까 합니다.

물론 그걸론 조금 아쉬우니, 굳이 엄마는 몰라도 되는 이 일의 고통과

UX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을 덤으로 적어보기로 합니다.




사람들은 집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게.. 집이라니..!라고 매 순간 떠올리진 않죠.

UX가 그렇습니다. 삶의 일부가 된 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부지불식간에 공기처럼 함께 하고 있어요.


UX가 뭔데요 라고 물어보실 수 있겠네요. 그럼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어떤 집이 있는데 그 집을 들여다보니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합니다.


- 화장실이 베란다에 있습니다.
- 거실에서 싱크대로 향하는 길이 미로처럼 구불구불합니다.
- 현관문이 안쪽으로 열려 신발을 현관 바닥에 놓을 수 없습니다.
- 이중 창의 바깥문을 열었더니 안쪽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 안방 빌트인 수납을 열었더니 화장품 진열대 옆에 신발장이 있습니다.


이런 집을 보신 적이 있나요? 설명을 하기 위해 좀 어그로를 끌어보았습니다 ㅎㅎ

이런 문제들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전문가들에 의해 이미 배제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제품 업데이트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UX디자인은 집을 짓고 인테리어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큰 틀을 칸칸이 채워가면서 정답이 있는 것은 따르고 정답이 없다면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 나가는 거예요.



비밀번호 입력창에서 비밀번호는 늘 검은 동그라미로 가려 있었습니다.

잘 쳤는지 알 방법은 로그인을 해보는 것뿐.

그런데 어느 서비스에서 Caps Lock이 켜져 있다고 알려주기 시작했어요. 

적어도 대문자 소문자를 바꿔 치지는 않게 됐습니다.

언젠가부터는 비밀번호 입력창에서 눈알 모양의 버튼을 눌러 입력한 값을 슬쩍 확인할 수 있게 되었죠.

로그인 화면에서 고통받던 사람들이 제법 많이 해방되었을 겁니다.



엄마한테는 여기까지만 알려드렸습니다. 그게 좋을 것 같았어요.. 


이렇게 보면 UX 디자인이란 뭐 그럭저럭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처럼 보입니다.

대충 맞긴 합니다. 동료들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멋진 해결책을 찾았을 땐 꽤나 희열이 느껴지거든요.

지구를 구한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몇 초 정도 고통받던 사용자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잖아요.

그럼 이 좋아 보이는 일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인테리어 이야기 10초만 더 할게요. 인테리어를 전문가만 할까요? 아닙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자가는 아닐지언정 내 몸하나 뉘일 작은 공간은 갖고 있습니다.

동선을 생각해서 가구를 어떻게 배치하고, 구획을 나누고.. 

저마다 수준은 달라도 안목을 갖고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아 물론, 그 안목은 꽤나 상대적이고 개인적입니다...




UX 또한 인테리어와 비슷합니다. 

같은 서비스를 만드는, UX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은 때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A리스트랑 B리스트 한 번에 보여주면 안 돼요?"

(화장품 수납장 옆에 신발이 들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걸까?)


"그 뱃지 너무 작아요. 좀 더 크게 보여주면 안 되나요?"

(우드 톤의 아늑한 집에 새빨간 시계 밖에 보이지 않을 텐데...)


물론 개중 마음의 눈이 트였거나 디자인 이면의 사정을 생각해줄 수 있는 속 깊은 분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로 사람들은 디자이너를 괴롭힙니다. 물론, 진짜 괴롭히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과연..)


그들과 제가 각자 고민하며 파내려간 땅굴의 깊이가 서로 다름을 이해하지 못했던 때엔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예민함을 한껏 뽐내기도 했습니다.

허나 이제는 어떤 괴상한 말을 들어도 숨을 한번 고르고 침도 한번 삼킨 다음

왜 그렇게 할 수 없는지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그 요구사항을 대신할 근사한 대안을 가져다주는 것은 덤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필요했던 덕목들이 있습니다.



자아비판(!)을 해야 합니다. 

내 디자인 너무 소중해서 아껴주고 싶지만, 비판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나 한 번에 최적의 방안을 찾을 순 없기 때문이에요.

(물론 아주 드물게 UX신이 강림해서 정말 완벽한 디자인이 나오기도 합니다만...)

요구사항대로 빠른 시간 안에 디자인 다 나왔다고, 

또는 너무 고민해서 힘들게 뽑아냈다고 덮고 돌아서지 말고

커피 한잔 마시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이럴 땐? 저럴 땐? 생각하면서 고칠 것을 찾아봅니다.

때로는 너무 중대한 실수를 발견해서 디자인 전체를 뒤엎고 새로 그리게 될 수도 있는데

그게 남의 눈으로 발견되는 것보단 "기분상" 낫습니다 ㅎㅎ



나도 내 디자인을 비판하듯 남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디자이너들과 또는 유관부서 담당자들과 리뷰를 하면서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일단 한 발짝 물러서는 거예요.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라는 건 아니지만, 유연하게 생각할 여유를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내가 며칠 동안 고민한 걸 단 몇 분 동안 본 사람들이 다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정답은 항상 내 손 끝에서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 봅시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밀고 나갈 수 있는 뚝심도 필요합니다.

자아비판과 유연함에 가려져 주장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내가 파내려 간 땅굴의 깊이가 헛되지 않았음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할 필요도 있습니다.



사실 너무 기본적인 것이라 써놓고 나니 이렇게 풀어쓸만한 것인가 싶기도 한 동시에

스스로는 잘하고 있나 반성하게 되네요 (  ' ') 

뭐 어쨌든, 오늘도 만들고 설명하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UX신이 강림하기를 바라면서

어제보다 나은 디자이너가 되려고 노력하는 샐리였습니다!

이런 글 처음 써보는데, 재밌네요 히히 XD

매거진의 이전글 B2B 업계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