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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숑숑 Jun 01. 2024

20대 비혼주의에서 10년 연애 후 결혼에 이르기까지.

20대 때의 나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사실 결혼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 스무살의 다짐은 크게 의미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그 다짐은 꽤나 오래 가서 20대 중-후반까지도 갔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건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굳이 따지자면 결혼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가 첫번째였다. 일단 내가 갖고 있는 로망 중 하나는 독립을 하게 되면 그 당시 만나고 있는 애인이 있다면 그 애인과 윗집과 아랫집에서 살고 싶었다. 각각의 개인공간은 충분히 보장하되 보고 싶거나 뭔가 서로를 챙겨야 하는 순간에는 바로바로 챙겨줄 수 있는-! 그 로망을 실현한다고 생각하면 굳이 결혼을 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아이 생각이 없었던 것도 결혼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에 이어졌던 것 같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더 어마무시한 일이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걸 할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엄마가 된다면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나 자신보다 아이가 더 중요한 삶을 살아가야 할텐데 나는 그럴 만한 깜냥의 인간이 아니었다. 


배려심이 많은 애인과의 연애 기간 내내, 그에게 고마워하면서도 나는 늘 내가 먼저였던 사람이었다. 하다못해 음식점을 고르러 가도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을 때가 그가 먹고 싶은 걸 먹을 때보다 많았다. 그게 고맙기는 했고 그래서 나도 몇번씩 그에게 맞춰주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밖으로 나다니고 누군가를 만나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인 내가 육아를 시작해서 아이와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일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대부분의 현대인이라면 놀수 있으면 노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ㅎ) 일에서 오는 성취감과 그로인해 성장하는 것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인간인지라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고 경제적으로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만큼 금수저 집안도 아니었기에 나는 아이에 대한 욕심 자체가 크게 없었다. 


아이에 대한 니즈도 없고, 애인과는 윗집-아랫집으로 지내면서 각각의 공간을 확보한채로 따로 또 같이 지내는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에 결혼 생각은 없다고 입버릇 처럼 말하고 다녔다. 


결혼생각이 없었던 것에 비해서 그래도 연애는 곧잘하고 있었다. 스무살 때 같은과 선배와 만나 CC로 제대로 된 첫 연애를 시작했다. 사실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그는 군대에 입대 예정이었기에 나는 그 때만해도 우리의 연애가 길어질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바람이 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도 맞고. 


그러나 생각보다 나는 힘들어하면서도 고무신생활에 적응을 해냈고, 그도 힘들었을 시간을 보내면서 휴가, 외박, 외출 모든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면서 나는 기대치않던(?) 꽃신을 신고야 말았다.  


순탄하게 연애생활을 하던중에 애인은 외국 교환학생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겨우 군대생활을 마치고 이제야 좀 남들이 하는 연애처럼 자주 보는 평범한 데이트를 할 생각에 설렜던 나는 몹시 분노했지만 결혼할것도 아니고, 내가 이 사람 인생을 책임질 것도 아닌데 이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만한 사건에 대해 반대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서운한 마음도 들었고, 그래서 다투기도 다퉜지만 어쨌든 애인은 제대한지 1년이 좀 지나서 6개월 정도 교환학생을 갔다. 


그 무렵 나는 집에서 부모님의 권장하에 공무원시험을 준비했고, 시험 준비를 위해 본가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외로움과 압박감. 주변 친구들의 취업 소리가 들려올때마다 나는 시험에 떨어질까봐 불안해했고, 불안해하는 마음을 공부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아가며 애인과도 참 치열하게도 싸웠다. 


하지만 또 헤어지잔 말은 하지 않는 우리였기에 다투고 화해하고의 반복이 되다가 그는 학기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평범한 연인으로써의 생활을 시작했다. 


1년도 준비하지 않은 시험이었지만, 그렇게 멘탈을 관리하며 시험준비를 해야 하는 직종과 난 맞지 않음을 깨닫고 재시험은 도전하지 않은 채 바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취업을 먼저했고, 군대에 다녀온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이 되었다. 다들 그 무렵쯤 헤어진다는 커플이 많았지만 우리는 그게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연 10년의 연애를 한 우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 결혼에 대해서 종종 애인과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 때까지만해도 굳이 '결혼'을 우리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애인은 결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 나를 흔든 것은 단 하나였다. 아이를 낳아야 해서가 아니다. 


"네 말대로 하면 서로 좋을 때만 좋고, 힘들 때는 책임지지 않겠다는데.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뼈를 때리는 말이었다. 즉, 나는 그와 행복한 시간은 함께 누리면서 '결혼'을 하면 내가 무언가 책임져야 할게 생기는게 두려워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었다. 책임까지 지는게 사랑아니냐는 말과 더불어 무슨 문제가 있을 때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주는게 좋지 않겠냐는 애인의 말에 그대로 설득당했던 나는 연애 10년차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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