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또 다른 사랑
너무 진부한 말이라서 사실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것말고는 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여태까지 알았던 사랑이라는 또 다른 사랑을 배우게 되는게 육아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 연인을 사랑하는 것, 친구를 사랑하는 것과는 확실히 또 다른 세계의 문이 열렸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쌍방향이 기본 전제였다. 부모님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부모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시작했던 것도 크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은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겠지만.
연인과의 사랑은 늘 당연히 쌍방향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짝사랑이라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금방 변하는 타입이었던 편이라.. 내가 연인을 사랑하면, 연인도 나를 사랑하고 그래야 그 사랑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친구와의 사랑 역시 쌍방향이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를 애정한다면 그 사람도 나를 애정해주길 원했고- 만약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의 양이 다르다면 서운한 마음이 들면서 내 마음의 양을 조절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기와의 사랑이란- 쌍방향이라는 전제가 아예 사라졌다.
저 아기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저 아기를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았다. 잠자고 있는 서연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몰래 미소가 지어지게 되고, 서연이가 나를 보고 웃어줄 땐 정말 지금까지 알았던 즐거움이랑은 또 다른 행복감이 차올랐다.
누군가는 주는 사랑도 있다고 했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받는 사랑을 훨씬 더 좋아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늘 받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3개월째 서연이를 키우면서 주는 사랑이 뭔지,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서연이가 없었다면 평생 몰랐을 주는 사랑의 행복.
이 작은 손을 잡고 있을 때면 정말 다른 것들은 잊게 되고 조그마한 아이를 품 안에 꽉 안고 있으면 그 따뜻함이 주는 행복감은 설명하기 어렵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이해되는 감정이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사랑하는만큼 많아지는 걱정
사랑과 비례해서 같이 올라가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걱정인것 같다. 서연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건강한지에 대한 걱정이 요즘 내 걱정의 90%를 차지하는 것 같다.
서연이의 몸무게가 5.7kg인데 약 열흘 정도 몸무게가 정체되고 있다. 괜찮은건가 싶어서 챗gpt에게 물어보니 이 시기의 아기들은 하루에 몸무게가 20-30g 정도씩 늘어나는 것이 맞으며 2주 이상 정체되면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서연이가 태어났을 때 체중이 3.4kg였고 보통 100일 무렵에는 태어났을 때 체중의 2배가 되어야 한다고 하니 그렇게 되면 서연이는 6.8kg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6kg도 되지 않았다. 서연이 개월의 평균 체중도 6kg인데 평균 체중보다도 미세하지만 더 적게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On-demand라고 해서 아기가 원할때만 수유를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대략적으로 아기가 언제쯤 먹겠다고 할지에 대한 패턴은 잡혔지만 그 시간이 되더라도 아기가 밥을 달라는 모션을 취하지 않으면 주지 않고 기다렸다. 우유의 양도 아기가 그만먹고 싶어하면 그냥 바로 중단. 나중에 배고프면 또 달라고 할테고, 그러면 그 때 좀 주면 되지 뭐-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서연이는 애초에 많이 먹는 타입의 아기도 아니었다. 산후조리원에서도 올라는 깨워서 먹여야 한다고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그러셨고, 집에 와서도 서연이가 깨서 새벽수유를 하는게 아니라 신생아때는 알람을 맞춰서 서연이를 깨워서 먹였다.
이후 한달이 넘어가면서 병원에서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때부터는 깨우지 않고 먹였는데 보통 수유랑이 600-700ml정도였다. 아기의 평균 수유량에 대한건 워낙 여러군데서 말이 많다. 누군가는 몸무게x150-180ml로 계산해서 주라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개월별로 정해져있다고도 했다. 또 혹자는 그냥 아기가 원할때마다 주면 아기가 스스로 조절한다고도 했다.
나는 아기가 조절하는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서연이의 수유량은 평균보다 작은 편이었지만 아기들마다 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서 굳이 수유량을 늘려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하루 먹은 수유량이 600ml가 안되면 너무 작은거 같으니 꿈수라고 해서 서연이가 잘 때 살짝 깨워서 더 챙겨주기는 했었다.
그런데 서연이 몸무게가 정체되고 있다보니 내가 너무 규칙적으로 식사를 챙겨주지 않아서 그런건가. 내가 나 편하려고 그렇게 한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바심이 났다. 최소한 6kg가 될때까지는 조금 더 밥을 집요하게(?) 챙겨줘보자고 남편이랑 얘기했고 지금은 밥 달라는 신호가 없어도 일단 4-5시간 간격으로 우유를 물려보고 있고 다만 서연이가 거부할 때는 그냥 그만 먹이는 방식으로 먹여보고 있다.
'나의' 엄마는 아기가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고 잘 자면 걱정할필요 없을 것 같다고 하지만, 또 나는 그것과는 별개로 평균만큼은 몸무게가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몸무게를 가지고만도 이렇게 걱정을 하는데 이것말고도 걱정할 일은 무궁무진했다. 서연이의 목 뒤에 있는 연어반이 있는데 거기에 각질이 있는데 그건 괜찮은건지, 아기가 마른 기침을 하면 기침을 하는게 괜찮은건지. 평소보다 분유수유량이 많은 날에는 혹시 게우다가 기도가 막힐까봐..! 게다가 영아돌연사는 원인도 모른다는데 혹시 그럴까봐 침대옆에 캠을 바로볼 수 있게 탭을 켜두고 자고, 자다가 깨면 그 캠속에 서연이가 잘 자는지 꼭 쳐다봤다. 캠에서 티가 안나면 몸에 딱 맞는 스와들업의 배 부분이 올라오나 확대해서 지켜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자는 서연이 배 위에 가만 손을 얹어보기도 했다.
물론, 내가 유독 걱정이 많은 타입이기는 하지만..! 모든이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나에게만 안 벌어질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늘 걱정이다. 보통 3개월까지가 위험하다고 하니 아마 이번달까지는 내내 걱정을 할테고, 이번달이 지나고 뒤집기를 시작하면 또 뒤집어서 자느라고 애기가 숨을 못 쉴까 걱정하겠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행복해질 일도 많아진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걱정할 일도 많아진다는 것이고 불행해질 확률도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 사랑하는 사람 중 누구 하나라도 아프거나 힘들면 나는 걱정이 되고 불행해질수도 있으니까.
서연이가 태어나고 나는 행복해질 일이 많아졌고, 실제로 더 많이 웃게 되지만- 동시에 혹시나 이 아이가 아플까봐 걱정이 많이 되고, 아마도 더 커서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 괴롭히는 사람은 없을지, 혹시 나쁜일에 연루되면 어떡할지 걱정도 많아지겠지.
하지만 걱정이 많아지는 힘듦보다 행복함이 더 크기에, 걱정에 대비는 하되 현재의 행복감을 더 느끼려고 노력중이다.
선택의 무게가 무거워졌다.
누군가 그랬던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Birth부터 Death까지 인간은 참 많은 Choice를 하고 산다고.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아주 사소한 선택부터 인생을 결정지을 큰 선택까지.
내가 지금까지 고민해왔던 모든 순간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모여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결정지었다.
내 선택이 내 인생을 만든다는 것도 참 무거운 책임감이었지만 서연이를 키우면서 그 선택의 무게가 더 무거워졌다.
서연이의 인생 초반은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서연이의 첫 출발 자체가 내 선택이었다.
내가 낳겠다는 선택을 했으므로 서연이는 세상에 태어났고, 서연이가 모유를 먹을지 분유를 먹을지, 기저귀는 어느 브랜드를 사용할지, 잠을 잘 떄 어느 침대에서 어떤 방식으로 잘지-
지금 서연이의 일상에 걸친 거의 모든 것들은 나와 남편의 선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선택한것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지는 것도 선택의 무게가 무겁지만
내 선택으로 인해 서연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선택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오히려 내 것을 선택할때보다 더 오랫동안 더 신중하게 고민하게 된다.
또한, 그 선택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이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
나중에 서연이의 선택이 내 희망사항과 달라지는 순간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 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엄마가 되어야지. 그것이 진짜 아이를 위한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