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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Jul 23. 2020

나의 세 번째 엄마

도쿄에서 만난 인연

  그녀는 남편이 퇴근길에 가끔씩 들르던 집 근처 술집 주인이었습니다. 요리는 물론 청소, 재료 구입, 손님 뒤치다꺼리까지 고령의 할머니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나가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음 문제로 옆집 할아버지와 문제가 생겼을 때, 할머니는 그 집에 찾아가 저희를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 친하지도 않은 일본 사람이… ’

감사는 했지만 의혹의 눈길로 할머니를 바라봤습니다. 한국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진심을 담아 감사드렸을 상황이었지만 겉과 속을 달리하는 일본의 문화를 몇 번이고 경험한 저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사람의 진심을 그렇게 헐값에 매겨 놓고 당시 느낀 고마움조차도 금세 잊었습니다. 


  그녀가 제 인생으로 들어오게 된 건 유난히 더웠던 어느 해 여름입니다. 새벽녘 아기의 거친 숨결에 놀라 잠을 깨 보니 5개월 된 아기는 39도의 갑작스러운 열과 함께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고, 언어도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저는 인터넷을 열었다가, 소아과에서 나눠준 가이드북을 봤다가... 우왕좌왕 하다 결국 앰뷸런스를 탔습니다. 아기의 작고 보드라운 팔에는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꽂히고 남편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회사로 향해야 했습니다. 긴급 입원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엄마와 떨어져야 하는 공포, 오전 오후로 나누어 행해지는 각종 검사, 처음 대하는 낯선 환경.


  자지러지는 아기의 울음 속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입을 틀어막고 소리 나지 않게 아기를 따라 우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입원 삼 일째가 되는 그날도 검사 후 지쳐 잠든 아기의 손을 잡고 숨죽여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홀연히 할머니가 나타났습니다.


  당황했습니다. 친하지 않다고 생각한 관계 때문에 그랬고, 버스 한 번 전철 한 번을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에 그랬고, 새벽 늦게까지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의 피곤함 때문에 그랬습니다. 1시간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던 할머니는 잠에서 깬 아기를 한 번 안아주시더니 왔던 길을 되짚어가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면회가 시작되는 12시가 되면 병원에 오셨습니다. 습기가 많아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도쿄의 찜통더위... 이 날씨에 힘드시다고, 여긴 아무 걱정 없다고 말씀드리니 할머니는 웃으셨습니다. 


  “내가 오는 건 누굴 위해서도 아니에요. 아기 생각에 그러는 거니 신경 쓰지 마요.” 


  할머니는 딸아이가 퇴원할 때까지 오셨습니다.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저를 대신해 의사에게 세세한 사항들을 모두 물어 주시고, 링거를 꽂고 있는 아가를 살피느라 움직일 수 없는 제 도시락을 사다 나르시고, 정밀 검사실 문 앞에서 까무러 치도록 우는 아가의 울음을 들으며 저와 함께 우셨습니다. 


  지금은 아이의 학교 문제로 할머니와 이웃해 살던 동네를 떠나온 지 오래입니다. 자주 뵐 수는 없지만 제 맘 속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무더위에 땀을 닦으시며 병원에 들어오시는 할머니를 뵐 때마다 맘 속으로 조용히 흘렸던 눈물.

너무 반가워서, 너무 고마워서. 


  제겐 어머니가 세 분 계십니다. 한 분은 저를 낳아주신 우리 엄마, 한 분은 사랑하는 남편을 길러주신 시어머니, 마지막 한 분은 아픈 추억을 너무 아프지 않게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신 마음 따뜻한 엄마, 후지타 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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