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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Aug 11. 2021

인어 공주

인어의 눈물

내가 태어났다는 것은 비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어족은 바다 종족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종족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상반신, 물고기의 하반신, 이것은 육지와 바다의 완벽한 조화였습니다. 우리의 표정은 섬세했으며, 꼬리 비늘은 얇게 저민 보석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들과 달랐습니다. 물고기의 얼굴, 인간의 다리. 내가 태어나던 날, 눈꺼풀이 없는 나는 자지러지게 울어대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무표정이었습니다. 막대기 같은 다리는 매가리 없이 허우적대었지요. 그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볼품없었습니다. 내 위로 언니가 셋이었는데, 셋 모두 예뻤습니다. 그런데 예쁘기는커녕 정상이 아닌 것이 태어났으니. 나는 우리 인어족 왕가의 수치였습니다.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기절을 했고, 아빠는 저주가 내렸다며 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 아빠를 할머니가 말렸습니다. 아빠는 살면서 단 한 번도 할머니 말씀을 거역해본 적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잘 들어라. 오늘 넷째 공주는 태어나지 않은 것이다. 백성들에게는 죽어서 태어난 것으로 공표해야 할 것이니라. 이 괴물은 동쪽 구석 탑으로 보내도록 하라. 살아서는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나는 세상에서 비밀이 되었습니다. 나는 괴물이었습니다. 미소? 눈물? 물고기를 닮은 얼굴은 늘 표정이 없었고, 물살을 가르는 두 다리는 기괴했지요. 어째서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어째서 그들은 당연하게 가지고 태어난 것을, 나는 단 하나도 갖지 못한 것일까요? 매우 슬펐지만, 내가 누구를 미워해야 할까요? 돌연변이는 내 잘못도, 엄마 아빠의 잘못도 아닌데.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보다 더 슬픈 건, 슬픈데, 무지하게 슬픈데 도무지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내 슬픔을 몰라준다는 것이, 나는 미치도록 외로웠습니다. “할머니,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할머니마저 가버리시면 나는 어떻게요? 나는 너무 불행해요.” “아리아, 가여운 우리 아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은 그런 데서 오지 않는단다... 불행은... 끔찍한 불행은, 네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데서 온단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 말을 끝으로 할머니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나한테는 할머니뿐이었는데, 나는 철저하게 혼자가 된 것입니다. 믿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다음은 뭐예요? 할머니는 몰라요. 할머니는 내가 아니잖아요.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기분 따위, 알 리가 없잖아요!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역시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를 위해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내가 미웠습니다. 그날, 난생처음 가출이란 것을 했습니다. 여기엔 내가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십오 년 동안 갇혀있던 동쪽 탑을 몰래 빠져나와 무작정 두 다리를 휘저었습니다. 어디까지 왔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꽤 멀리 나온 듯했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자기로 하고, 바위 틈새에 몸을 웅크렸습니다. 나는 정말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지?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보니, 내 또래로 보이는 네 명의 인어족 남자애들. 딱 봐도 셋이서 하나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온통 하얬습니다. 하얗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한 번도 자른 적이 없는지 눈까지 가린 모양새였고요. “야, 야, 아무 말이나 해 보라니까?” “마알- 말 몰라? 너 원래 말할 줄 안다며? 우리 무시하냐?” “니가 그러니까 니네 엄마가 너를 버린 거야. 너, 아빠도 누군지 모른다며?” “정체불명의 새끼. 이거 진짜 인어족 아닌 거 아니야? 뭐랑 섞이지 않고서야 이렇게 생길 리가 없지. 늬들 얘 눈 봤냐? 이 새끼 눈, 눈도 하얗다던데? 눈동자가 없데.” “진짜? 완전 괴물이잖아. 야, 너 앞머리 까봐.” 까보라니까! 덩치 큰 애가 그 애의 앞머리카락을 움켜쥐었습니다. “까긴 뭘 까! 너네야말로 발로 확 까버릴까 보다!” 나는 비밀이었고 괴물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은 나 같은 생물은 난생처음 봤겠지요. 아니나 다를까, 그저 내가 두 다리를 휘적대며 걷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징그럽다는 얼굴을 했습니다. “저... 저게 뭐야!” “괴, 괴물이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그들은 도망쳐버렸습니다. 단 한 명, 그 하얀 아이만 빼고요. “너는 왜 도망 안 가?” 뜻밖에도 그 아이는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안 가. 너가 나를 구해줬잖아.” 왜인지 모르겠지만, 심술을 부리고 싶었습니다. “누가 누굴 구했다는 거니? 나는 그저 너네가 내 잠을 방해해서 혼쭐을 내주려고 했던 것뿐이야. 그러니까 너도 속으론 내가 무서우면서 괜히 센 척하지 마. 도망가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쉿!” 그 애가 내 말을 막았습니다. 그리고는 저길 보라는 의미를 담아, 하늘 방향으로 검지를 쭉 뻗었습니다. 나는 그 애를 따라서 똑같이 고개를 치켜들었습니다. “우와- 아름답다-” 밤바다를 수 놓은 무수한 빛들. 푸른 기가 도는 하얗고 조그마한 생명체들이 너울너울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은하수, 책에서 얘기했던 은하수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이런 것이겠지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문득, 그 아이도 나와 같을까 궁금해져 고개를 돌렸습니다. 돌렸는데, 눈물! 놀랍게도 그 아인 울고 있었습니다. 눈을 가린 머리카락 밑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왜? 어째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애의 머리채를 들췄습니다. 들추자, 물기에 젖은 눈동자가 드러났습니다. “이상해?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나는 게 이상한 걸까?” 정말이지, 아름다운 눈동자였습니다. 한쪽은 초록빛이고 한쪽은 푸른빛인, 서로 다른 색깔의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너, 눈이 참 예쁘구나.” 마음을 뺏어가는 눈동자, 그렇게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그 애가 고개를 홱 돌렸습니다. 얼굴이 벌게진 채로요. “왜 빨게지는데?” “거, 거짓말하지 마. 다들 이건 저주받은 눈이라고 했어.” 아빠도 내가 왕가의 저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저주란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거구나. 좋은데? 평범하지 않고 특별한 거잖아. 나는 특별한 게 좋아.” 이것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지요. 천천히, 그 애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나는, 씩, 웃고 싶었지만, 그런 표정을 내가 지을 수 있을 리가 없지요. 그때 갑자기 주위가 어두컴컴해졌어요.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치켜들었지요. 바다 전체를 뒤덮을 것만 같은, 큰 고래였어요. 고래는 물살을 가르며 머리 위를 지나갔지요. 고래가 커다란 입을 벌리자 조그마한 생물들이 확 빨려들어 갔습니다. 우리가 봤던 아름다운 광경은 순식간에 고래 입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요. “사라졌어...” 텅 빈, 평범해진 바다를 보며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 애는 슬프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말해주었습니다. “어쩔 수 없어.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거든. 죄다 모두.” 어쩐지 심장이 아려왔습니다. 그때, 소용돌이가 들이닥쳤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이, 소용돌이는 우리를 휘감았습니다. 그 애의 손을 잡았지만 거센 물살에 놓치고 말았지요. 나는 뱅글뱅글 돌았어요. 뱅글뱅글뱅글뱅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어느 해안가에 너부러져 있었습니다. 그 애는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소리쳐 부르고 싶었지만, 나는 그 애의 이름을 몰랐습니다. 살았을까 죽었을까, 일어나려는데, 움직이지 마! 수많은 칼이 나를 에워쌌습니다. 이 나라의 병사들이었어요. “사, 살려주세요!” 애원했지만, 그들은 나를 혐오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칼을 거두지 않았어요. 누군가, “저런 게 나타나다니, 불길하다. 죽여라.” 그렇게 말하자 병사들이 일제히 나를 죽이려 들었어요. 그때였어요. “멈춰라!” 그 한마디에 병사들은 나에게서 떨어졌어요. “이 아이를 성으로 데려가자.” “왕자님. 이것은 괴물입니다. 살려둬선 안 됩니다.” “저 아이 눈에는 네가 괴물이야. 살려달라고 저렇게 빌고 있는데 불쌍하지도 않아?” 이렇게 왕자님은 나를 구해주었습니다. 나는 왕자님 곁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지요. 왕자님은 나를 예뻐해 주었습니다. “아리아, 너의 목소리는 참 아름다워. 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잠이 잘 와.” 왕자님은 불면증이 있었어요. 나는 그런 왕자님을 위해 밤마다 노래를 불렀지요. 내 곁에서 잠이 든 왕자님을 보고 있으면 행복했습니다. 왕자님은 나를 필요로 했고, 나는 이제야 내가 있을 곳을 찾았으니까요. 평생 이렇게 왕자님 곁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부터 성이 떠들썩했어요. 알고 보니 왕자님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몰랐는데 왕자님에게는 정혼자가 있었던 것이지요. 충격이지만 나는 뭐라고 할 자격이 없었어요. 왕자님을 재우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왕자님 곁에는 이제 내가 아닌 아내가 있었고, 나는 멀리서 왕자님을 보는 것이 고작이었지요. “듣자 하니, 네가 그동안 왕자님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지? 왕자님이 잠을 잘 수 있도록 말이야.” 그의 아내가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왕자님이 다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노래를 불러주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목소리는 쇳소리나 마찬가지였지요. 방법은 딱 하나, “인어의 눈물이라고, 너는 바다에서 왔다고 하니 들어는 봤겠지? 바다에는 인어족이라고, 아름다운 종족이 있는데, 그들의 눈물을 섞은 누군가의 피를 마시면 그 누군가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고 해.” 나도 인어족이지만, 아무도 내가 인어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나는 아름답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내 눈은, 눈물은커녕 눈 깜빡임조차 할 수 없는, 생선 눈깔에 불과했습니다. “아리아, 나는 너의 목소리가 필요해. 그래야 내가 너 대신 왕자님을 위해 노래를 부르지. 왕자님을 저렇게 두면 불쌍하잖니. 그렇다고 이제는 내가 아내인데 널 밤마다 우리 침실에 들일 수는 없고. 설마, 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는 바다에서 왔으니, 어떻게든 인어의 눈물을 구해 올게요.” “착하구나. 아리아, 이것은 너와 나의 비밀이야. 이런 주술을 쓰려고 한다는 게 알려지면 곤란하거든.” 나는 해안가로 달려갔습니다. 풍덩,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뭐든 해 볼 작정이었습니다. 하다못해 지나가는 인어족에게 꿀밤이라도 먹여서 눈물을 쏙 빼더라도요. 그런데, 바닷속에서 난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나는 이제 인어족이 아니게 된 것일까요? 그렇다고 육지 생물도 아닌데. 숨 쉬는 법도, 헤엄치는 법도 잃어버린 나는 바다 밑으로 점점 가라앉았습니다. 죽는구나, 생각하는 순간 몸이 바다 밖으로 쑥 올라왔어요. “너, 괜찮아?” 그 애였어요! 하얗고, 눈이 예쁜 그 애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소용돌이에 휩쓸리던 날, 그 애 또한 나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 이름을 몰랐기에 나를 부를 수가 없었다며, 그저 주변을 맴돌며 나를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내 이름은 아리아야.” “나는 센, 센이야.” 센은 나를 만난 것이 정말 기쁜 듯 활짝 웃었습니다. 나는 센에게 내게 일어난 일들을 전부 얘기해줬습니다. “센, 너도 인어잖아. 나한테 눈물 줄 수 있지? 응?” “아리아, 너는? 너는 목소리를 빼앗겨도 괜찮아?” “상관없어. 왕자님을 위해서라면 심장도 아깝지 않아. 센, 줄 거지?” 잠시 말이 없던 센이 내게 물었습니다. “아리아, 행복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응. 행복해.” 불행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데서 온다는, 할머니가 했던 그 말을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센이 씩 웃었습니다. “너가 그렇다면 나도 좋아.” “그럼 주는 거지?” “응. 줄게.” 나는 이 모든 일을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센이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거라고요. 그런데 센은, “아리아, 내 눈을 가져가.” “무슨 소리야? 눈을 주겠다니. 주기 싫어서 장난치는 거니?” 센은 진지했습니다. “아리아, 평범한 인어족은 눈물을 흘리지 않아. 아주 특별한 인어만이 눈물을 흘릴 수 있지.” 센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그토록 눈물에 집착했던 것은 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나는 눈물을 흘리는 인어를 딱 한 명 보았지요. 그것은 바로 센이었고요. 센은 그때 내게 물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이상하냐고요. “아리아, 너에게 내 눈을 줄게. 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그럼 너는? 눈이 없는데 어떡해?” “나는 끄떡없어. 어차피 이 눈이 싫어서 늘 가리고 다녔는걸. 나는 필요 없어.” 정말이냐고 확인하니, 센은 정말이라며 씩 웃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모습에, 나는 미안해하지 않고 안심했습니다. 순간, 별안간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번쩍, 온 세상이 하얗게 눈이 부셨습니다. 천천히 시력이 돌아왔을 땐, 센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물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푸른빛의 눈, 초록빛의 눈, 센의 눈이었습니다. 그길로 나는 그녀에게 갔습니다. “보세요! 인어의 눈이에요!” 왕자님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서는 말이에요. 이제 눈물만 흘리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할머니의 죽음, 외로웠던 나날, 나를 죽이려 했던 아빠, 분명 눈물이 날 일인데... 센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지요. 나는 그때 보았던 아름다운 밤바다를 떠올렸어요,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어요. “너, 대체 뭐 하는 거지? 어디서 그런 흉측한 눈을 하고 와서는 누굴 속이려고? 어리석긴. 인어의 눈물이 다 뭐라고. 너 머리가 어떻게 됐구나. 왕자님과 내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별짓을 다 하는구나.” “하지만... 분명 인어의 눈물이 있으면, 주술로 제 목소리를...” “닥쳐라! 주술이라니, 어디서 그런 해괴망측한 소리를 지껄이니! 왕자님이 알면 큰일 나겠구나. 여봐라, 저 요물을 당장 끌어내라!” 결국 나는 성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나면서 왕자님을 수없이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습니다. 이제 바다에서 숨을 쉴 수도 없게 되었으니, 바다로도 돌아갈 수 없었지요. 나는 정처 없이 해안가를 걸었습니다. 걷는데, 저만치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앉아있는 센이 보였습니다. “센!” 살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기쁨에 울컥했습니다. “센! 여기 있었구...” 그러나 가까이서 본 센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휘잉- 바닷바람이 불었습니다. 늘 눈을 가리고 있던 머리칼이 날렸고, 드러난 두 눈은 텅 빈 구멍이었습니다. 지나가던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인어에게 눈은 심장이니, 눈을 잃은 인어는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 나는 가만히 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의 가슴에 귀를 대었습니다. 서늘한 기운,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센... 센...” 센, 내 목소리가 들리니? 왜 그랬니? 왜 필요 없다고 거짓말을 했니? 심장이 아팠습니다. 눈물이, 눈물이 가득 차올랐습니다. 눈을 감자, 눈물이 뭉개져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눈물이란 것은 참 따뜻했습니다. 나는 깨달았습니다. 눈물은, 심장이 흘리는 피라는 것을요. 나는 센을 위해 울기로 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위해 울었던 센을 대신해서 영원히 말이에요. 밤, 바다, 센, 그리고 나. 정말이지, 나는 행복한 인어공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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