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못 보는 퇴마사가 내게 집착할 때

프롤로그

by 해파링

“죽으려면 너나 죽어!”

나, 이제 갓 귀신 보게 된 사람치고는 좀 제법이다. 이렇게 귀신 머리채도 잡아챌 줄도 알고 말이다. 휘리릭 손목 스냅 한번 끝내주시고~ 난 년일세 난 년이야. 계단에서 민다고 나 혼자 골로 갈 수는 없지. 요망한 귀신 년! 머리채를 죄다 뽑아 돌돌 말아서 후루룩 씹어 먹어버릴 테다. 허리가 활처럼 뒤로 꺾인다. 나는 줄다리기를 하듯 귀신 머리칼을 더 세게, 확, 잡아당겼다. 어? 어라? 그대로 계단에서 뒤로 나자빠질 거라 했던 예상과 달리, 나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었다. 로비? 로비가 왜? 여기서 나하고 로비 빼고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째깍, 째깍, 째깍, 깜빡깜빡 두 눈을 땡그랗게 뜨고 상황 정리에 들어간다. 정신 차려! 김순지 로비가 아니야. 귀신이야!

“네 이년! 썩 꺼지지 못할까!”

처음엔 로비였다가, 귀신이었다가, 또 로비였다가. 누굴 바보 똥구멍으로 아나. 내가 또 속을 줄 알고? 자동차 핸들을 잡듯 양손으로 눈앞의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앞으로~ 뒤로~ 마구 흔들고, 왼쪽으로 확 꺾었다가 급브레이크! 오른쪽으로 확 꺾었다가 급브레이크!

“아아아! 순지 씨, 이거 좀 놓고... 아아아!”

“순지...? 내가 니 친구니? 새파랗게 어린노무 귀신노무 시키가!”

라스트 마지막 하이라이트 어퍼컷을 날리려는데...! 어? 로비가 맞네? 내가 그토록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알라님이시여 제발 내 남자가 되게 하소서, 라고 애가 닳고 손이 닳도록 빌었던 그 남자가 아닌가? 왜냐하면 귀신은 바로 요기, 요기에 있으니까. 요기 떡하니 서서는 나를 신기한 생물 보듯 하고 있다. 턱 다물고 눈 깔아 이년아, 나도 내가 쪽팔리니까. 리본 프릴이 잔뜩 달린 메이드 차림에, 머리는 귀신보다 더 산발이지, 아까 로비 머리통을 쥐고 흔들면서 온몸으로 흥분했더니 살짝 침도 흘려서 좀 더럽게 됐다. 슬금슬금 나는 쥐고 있던 로비의 머리통을 놓았다. 나도 모르게 자동 차렷 자세가 되고 만다. 그나저나 뭐라고 하지? 뭐라고 변명해야 로비가 “아, 그랬던 거군요. 난 또.”라며 내 망나니짓을 해맑게 웃으며 넘어가 주려나? 이런 고민을 하며 눈알이며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에라이, 그냥 도망갈까? 귀신 새끼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눈깔이 튀어나올 정도로 귀신 년을 보고 눈을 부릅뜨는데 아까와 달리 귀신 얼굴이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뭐라 비명 지를 새도 없이 그 상태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있다. 그리고 바사삭 재가 되어 사라진다.

“이런 조무래기 하나 감당하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로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웠지만 전혀 따스하지가 않았다. 목소리가 차갑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는 매우 낯설었다. 마치 내가 알던 로비가 아닌 것만 같았다. 아까 그거... 로비가 한 거야? 로비도 보이는 거야? 나는 웃으려고 했다. 하지만 전혀 입꼬리가 올라가지질 않았다. 로비가 말했다.

“이제야 찾았군요. 내 신부. 나는 이제 당신이 없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