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못 보는 퇴마사가 내게 집착할 때

아빠 취향은 내가 제일 잘 알거든요?

by 해파링

여기 라테 참 맛있다. 후후. 아침이면 출근길에 늘 들르는 커피집이 하나 생겼다. 출근길에서 벗어나는 방향이라서 30분 일찍 일어나는 수고를 치러야 하지만, 이 커피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후후후. 후후후. 커피라... 후후후. 자꾸 웃음이 나온다. 후후후. 그렇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

"안녕하세요? 라테?"

나는 대답대신 배시시 웃는다. 웃자, 그쪽은 싱긋 웃어보이고는 내 라테를 준비하러 간다. '로비 커피'가 여기 가게 이름이다. 내 주문을 받은 남자는 여기 사장이고, 여기 사장이 만들어주는 라테에 나는 푹 빠졌다. 그러니까... 그가 만들어 주는 라테가 아니면 안 되고, 그를 아침마다 보는 게 어느새 삶의 낙이 돼버렸달까? 후후. 후후후. 어쩜 저렇게 뒤통수마저 잘 생겼을까? 저 머리카락에서는 분명 커피향이 날 거야. 쓰다듬으면 부드럽겠지? 그렇겠지? 물어볼까?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볼까? 나도 안다. 내가 완전 맛이 갔다는 거. 라테가 나왔다. 나는 라테를 받았고, 내가 지어낼 수 있는 가장 선생님다운 표정을 지었다. 절대 티를 내면 안 되는 까닭이었다. 나는 세라 담임 선생님이다. 나는 세라 담임 선생님이다. 그는 세라 아빠다. 그는 세라 아빠다. 부인과 사별했지만 학부모는 안 된다. 학부모는 안 된다. 안 된다. 안 돼. 안 돼. 이렇게 속으로 안 돼, 최면을 거는데,

"안 돼요."

진짜로 귓속말이 들렸다. 정신을 못차리고, 왜 안 돼는데! 나도 모르게 반항심을 드러냈다가, 응? 얼른 정신을 차리고 정체를 확인하니 세라가 딱 붙어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엄마얏!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앗 뜨거!"

멍청하게도 놀라면서 라테를 공중에 뿌렸다. 흰 색 패딩 점퍼에 라테를 쏟고, 바닥도... 어떡해 망했다. 황급히 카운터에 있는 냅킨을 손에 잡히는대로 잡아다가 바닥을 문질렀다. 그런 나를 보고, 세라 아빠가 더 당황했다. 제가 할 게요, 언제 카운터를 돌아나왔는지 걸레질을 했다. 어쩐지 민망해져 바닥을 닦던 냅킨으로 내 점퍼나 슥슥 문질러댔다. 아... 도망갈까? 농담이 아니다.

"안 돼요. 선생님. 패딩? 기모 후드티? 팔은 굽혀져요? 그렇게 추우면 그냥 결석하고 집에서 뜨개질이나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라테보다는 보약이 필요할 거 같은데요."

뜨, 뜨개질? 보약? 나를 무슨 할머니 취급을 하다니. 그래 넌, 젊어서 좋겠다. 이년아. 너도 앞에 3자 붙어봐. 오늘은 구름이 많은데다가 아침부터 영하 10도다. 그리고 나는 추위를 무지 잘 탄다. 장갑은 물론 휴대용 손난로도 주머니에 있다.

"안 돼요. 그 '안 돼요'였구나."

놀리든 말든 무시하기로 한다. 그랬더니 얘가 하는 말이 당돌하게도,

"네. 안 돼요. 옷 못 입는 여자, 우리 아빤 정말 싫어하거든요."

정말이지 무지하게 눈치 빠른 아이다. 그날, 학부모 상담한 날 이후로 무엇을 어떻게 보고 들었는 지 눈치를 다 챘다. 세라는 혼혈아이다. 돌아가신 엄마가 한국인, 아빠가 미국인. 얘가 피부도 희고 머리카락색도 노란 게 그날 아빠 얼굴을 보니 아빠를 더 많이 닮았다. 상담한 날 이래저래 얘기하면서 알게 된 게, 얘를 일찍 낳았구나, 짐작컨대 적어도 열아홉, 스무 살쯤 정도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날 어떻게 됐냐면, 뭐, 세라는 아빠를 닮아 예쁘고, 보통 예쁜 얘들이 그렇듯 세라도 그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는거구나, 이것은 유전자 자연의 섭리인가 정도? 나, 받아들여야해?

"안 돼."

"그렇지? 안 되는 거지? 선생님한테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그래서 내가 매일 거기를 가는 거 아니니. 라테는 다 핑계고. 가서 적당한 타이밍을 봐가지고 아이 교육 상담을 좀..."

"그게 안 된다고. 교육 상담을 카페서 하니? 너, 그건 아니다. 학부모야."

"알아. 학부모인 거."

아침에 있었던 일을 빵순이한테 얘기했더니 빵순이도 안 된다고 한다. 미술실, 내가 직접 구운 과자는 청크 초코칩이 듬뿍, 이것을 나와 빵순이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곁들여 먹는다.

"부도덕이니 체면이니, 부적절한 관계, 그런 소리하는 거야?"

자유로운 영혼인줄 알았는데 실망이네. 라고 말했더니, 아니라며 빵순이가 허세 아닌 허세를 부린다. 그래도 그건 아니라며, 스스로도 헷갈리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가 자꾸 다들 아니고 안 된다는 건지. 나 원 참. 머리 아프네.

"아, 몰라. 그냥 막 살래."

마음이 있다. 이상한 말 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학생의 아버지에게 마음이 생겨버렸다. 분명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청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짝사랑 정도는 괜찮잖아?

"아침 잠 많은 얘가 꼬박꼬박 출근 도장찍을 정도면 진심인가 보네."

"전 세계 인류의 종착지는 사랑이니라."

"똥 싸네."

"똥은 너가 싸는 거고. 나같은 공주는 똥 같은 거 안 싸."

어린애 빵순이는 사랑을 모른다. 정말이지 수준이 영 맞질 않는단 말이야. 역시 초코칩 쿠키는 아메리카노랑 먹어야 한다. 누가 만들었는지 여기 쿠키 참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