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글리베티와 다마고치 응가
정신을 딴 데로 돌리는 방법 가운데 가장 좋은 방법은 드라마 보기가 제일이다. 나는 지금 내 복잡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어글리 베티 시리즈, 레몬 탄산수 1L, 버터맛 팝콘, 나는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 빵순이는 피스타치오, 해영이는 치즈케이크와 초콜릿이 반반 섞인, 파인트 사이즈를 각자 한 통씩 가지고 있다. 아까 저녁으로 샤브샤브를 먹었다. 고기보다 야채가 많아 다들 배가 금방 꺼졌다고 징징댔었다. 치킨 시킬까? 빵순이가 제안했지만, 고기 말고 다른 거, 말하며 해영이가 아이스크림을 쏘겠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으로 정했다. 12월. 빵순이는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타령이다.
"좀 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 뭐 할까?"
"글쎄."
"순지 넌? 로비하고는 잘 돼가? 데이트 할 거야? 야, 듣고 있어?"
"말 시키지마."
지금 중요한 장면이라고. 헉! 베티가 임신? 진짜? (우리집에는 빔프로젝트가 있고, 나는 OTT를 종류별로 가입했다.)
"야!"
내가 드라마에 푹 빠져서 쳐다도 안 봤더니 빵순이가 심술을 부렸다. 나는 베티가 진짜로 임신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권리가 있었다. 빵순이한테서 리모컨을 뺏으려고 했지만 그게 쉽게 될리가 없었다. 포기하고 팩 토라져서는 키티캣 타마고치에 집중했다. 요새 통 신경을 안 썼더니 잔뜩 뿔이 나 있다. 이런 응가가 한무더기 잖아? 응가를 치워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밥도 배불리 먹여줘야지, 하는데 빵순이가 나를 가만두질 않는다. 진짜 나한테 왜 그러는데? 내 다마고치 내 놔!
"무슨 일 있지?"
"없어. 그런 거."
"뻥! 박장미가 김순지를 몰라? 딱 사이즈 나오는데 뭐. 너, 고민 있으면 이러잖아. 어글리 베티? 지금 네 친구는 베티가 아니라 우리라고."
"다마고치 이리 줘어어어! 밥 줘야 한단말이야아아아!"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팔다리를 마구 허우적댔다. 땡깡을 부리는 어린애마냥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빵순이는 엄한 목소리를 낸다.
"어허! 순순히 털어놓으시지."
리셋버튼! 안 돼! 내가 어떻게 쌓은 키티캣 레벨인데. 협박이라니, 악취미야! 결국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친다.
"고백 받았어!"
"로비한테? 꺄악- 왠일이야!"
"아니!"
"뭐?"
"마마보이!"
"뭐라고!"
미친놈. 이라고 해영이가 말했다. 미친 새끼야. 또 말하며 아이스크림을 퍼 먹는 손길이 우아하다. 옆에서 내내 말 없이 있더니 이제야 한마디 한다. 빵순이는 잔뜩 흥분했다. 뜬금없이 제 두 손을 내 뺨에 철썩, 딱 붙이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붕어처럼 뻐끔뻐금 해댄다. 뾰족한 입술 까닭에 발음이 구리다.
"안 돼. 김순지. 그 자식은 안 돼."
"아라. 이치노이야.(알아. 미친놈이야.)"
나도 안다. 나한테는 이제 로비가 있고, 마마보이하고는 진작에 끝났다. 또 마마보이 한테는 여자친구가 있다. 비록 그 여자친구가 못되쳐먹었고, 마마보이를 심심풀이 땅콩으로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고 있고, 그걸 마마보이는 모르고 나는 알고 있다는 사실은... 나, 지금 제 정신 아닌 거 맞지? 내가 알긴 뭘 안다는 거야?
"둘이 헤어졌데?"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해영이가 옆에서 육두문자를 신나게 날렸다. 벌써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비운 해영이는 이제 내 바닐라까지 마구마구 퍼 먹었다. 내 바닐라 이리 줘. 나는 내 것을 도로 빼앗아왔다.
"아니면 아니지. 아닌 것 같아는 또 뭐야."
"나이 어린 사람은 역시 안 통한다나 뭐라나. 헤어지자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구미호가 도통 놔주질 않아서 자기도 곤란하데. 그냥 구미호 혼자서 난리라고 하던데?"
"그걸 믿어? 설마 너... 김순지, 언니는 너 그렇게 안 키웠다. 한 놈만 찍어라. 한 놈만. 알갔디 모르갔디?"
"누가 뭐래! 그 자식 입만 살아가지고 뻥긋하면 사기치는 거 누가 몰라?"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녀석이다. 그 현란한 말 솜씨에 홀딱 넘어갔더랬지. 재밌다며 깔깔깔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사랑에 눈 먼 시절이여. 그땐 그랬지. 하- 내가 또 속겠어? 절대! 절대! 나는 내가 지난번 화장실에서 구미호하고 패션모델과 쌤이 쑥덕쑥덕했던 얘기를 했다. 물론 응가 싸고 물 안 내렸단 건 빼고.
"둘이 똑같네. 넌 절대 끼어들지 마라."
빵순이는 거의 협박 수준이었다. 그렇게 협박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라고. 나는 다시 빔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후우- 베티는 임신이 아니었다. 사실 어글리 베티는 몇 번을 봤던 드라마이다. 몇 번을 봐도 내용을 까먹고 또 까먹고, 이상하게도 기억상실증이다. 꼬르륵,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치킨 시킬 건데 먹을 사아~람.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