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못보는 퇴마사가 나에게 집착할 때

커피 쏟기 신공과 찹찹찹 도넛대작전

by 해파링

무엇이든 신은 쉽게 주지 않는다. 나 원 참. 딱 하나만. 이것저것 달라는 것도 아니다. 더도 말고 딱 하나만 주세요. 네? 플리즈~


"보이지? 저기, 저기."


그렇게만 해준다면 이런 짓은 절대 하지 않을 텐데. 그러니까, 친구한테 데이트 상대 보여주고 싶어서 몰래 훔쳐보는 짓따위 말이다. 저 사람이야, 내가 말한 사람. 해영이를 뒤꽁무늬에 달고 나는 창 너머 로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로비 커피, 커피집 사방이 통유리라 밖에서 안이 훤히 보인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하고 모던한 감성, 토요일 오후라 우리가 않을 자리가 없다. 그래서 못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니다. 글쎄, 왜 말을 못하니 김순지. 저 사람이 내 데이트 상대라고 왜 말을 못하니 바보멍청아. 이건 꼭 마치 진짜 나만 좋아서 난리 치는 꼴 같잖아. 나는 내가 스토커 같다고 느낀다.


"스토커니?"


따라와 바보멍청아. 해영이가 나를 질질 끌다시피, 나는 질질 끌려가다시피 카페 안으로 강제 입장했다. 이거 놔, 알았으니까 이거 놓으라고 내가 갈테니... 안녕하세요. 로비. 오늘 많이... 나는 카페를 빙 둘러본다. 정말 동작 하나, 하나, 이렇게 어색할 수가. 이러면 긴장한 티가 확 나잖아.


"많이... 바쁘네요."


"안녕하세요. 토요일이잖아요."


싱긋 웃는 로비, 섹시하기도 해라. 저건 평범한 '싱긋'이 아니다. 여기 줄 서서 커피 주문이나 하는 여자들에게 보내는 '싱긋'이 아니란 말이다. 나를 위한 무언의 메시지가 담긴 싱긋.


"아, 여기는 제 친구예요."


"안녕하세요. 이해영이에요."


해영이를 소개시키자, 로비도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그러고는 라테? 묻고, 나는 수줍게 고개를 두 번 끄덕끄덕한다. 옆에서는 해영이가 저는 모카요. 모카라테, 말한다. 앉을 자리가 없다니, 자세히 둘러보니 죄다 여자다. 훠이~ 훠이~ 거 보니까 마실 것도 없는데 이제 그만 다들 나가지 그래? 죽 치고 앉아있는 꼴들이 영 마음에 안 든다. 여기에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게. 왜 이렇게 신경질나지? 그게 로비 잘못은 아니지만,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로비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다. 적어도, 이렇게 왔는데 자리가 없어서 어쩌죠? 함께 있지 못해 안타깝다는 얼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하... 뭔가 서운하네.


"로비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닥쳐! 이해영. 무슨 말 하려고 그래? 하지마! 절대 하지마! 이런 의미를 담아 해영이를 째려본다. 나는 얼른 끼어들었다.


"오늘 날씨 참 좋죠? 이런 날은 도넛이 최곤데. 도넛을 라테에 적셔서 말이죠. 이렇게 촵촵촵!"


아직 라테를 받은 건 아니지만, 나는 라테에 도넛을 촵촵촵 담갔다 빼는 시늉을 했다. 우르르쾅! 깜짝이야.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소나기가 내린다. 이상하다. 아깐 날씨가 진짜 좋았는데. 정말이지 이런 거 하나 딱딱 맞추질 못한다니깐. 신이란 녀석은 참.


"도넛, 좋죠. 매장 메뉴로 생각해봐야겠네요."


아, 다정하기도 해라. 마이 라테♡. 로비가 나를 '도넛'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 이런 달달한 기분도 잠시 잠깐,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음료를 제조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음료 나왔습니다, 주위를 끌어서 이때다 싶어 얼른 자리를 빠져나가려는데,


"맞죠? 순지 남자친구."


아아아악! 아악! 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이렇게 진짜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귀를 막고 있는 힘껏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내가 정신 나간 여자가 될테니,


"꺄악!"


커피 쏟기 신공! 카페모카를 쥔 해영이의 손을 아래서 위로 퍽, 쳤다. 해영인 겉옷 지퍼를 잠그지 않아 안에 스웨터가 심하게 젖었다. 김순지! 이름을 부르고 뒤에 말은 눈으로 욕을 해댄다.

"어떡해! 그러니까 수전증은 초기에 확 잡아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니. 안 되겠다. 병원 가자. 고! 고! 렛츠 고!"


옷 한 벌 쏜다. 이렇게 해영이 귀에다 속삭였다. 그러니까 일단 나가자고. 제발- 응?


"괜찮아요? 많이 뜨거울텐데."


"괜찮아요. 하나도 안 뜨거워요."


해영이 대신 대답했다. 바닥에는 커피색 얼룩무늬가 흥건했다. 미안해요, 검지를 빙글빙글 돌리며 가리키니까 로비가 자신이 닦겠다며 걱정말라고 했다. 이게 뭐야 얼굴 한번 보러왔다가 이게 뭐야! 짜증나! 이렇게 폐만 끼치고 퇴장하게 생겼다, 생각했는데!


"로비, 우산있어요?"


"하나있는데."


"충분하죠."


반가운 비. 시원하게도 좍좍 내리친다. 오늘 빌린 우산은 내일 반드시 갚을 것. 후후. 신은 모든 것을 쉽게 주지 않는다지만, 이번 만큼은 내 편이 돼줘야 할 것이다. 왜?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후후.


"운명이야."


나는 운명론자다. 그래서 타로군이 저렇게 '운명의 수레바퀴' 카드를 보여주며, 운명이야, 말하면,


"정말?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런 식으로 타로군하고 나하고는 어쩐지 쿵짝이 잘 맞는다. 해영이는 아직도 커피 얼룩을 달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보상으로 새로 옷을 사주겠다고 꼬시고는 여기로 데려온 까닭이다. 여기서 '여기'란 우리의 비밀 아지트 미술실. 토요일이라 학교에는 있을 사람들만 있고 없을 사람은 없다. 여기 오니까 타로군하고 빵순이가 저들끼리 티타임을 하고 있었다. 뭐야, 둘이서, 오늘 수업 없잖아. 토요일에 애인 없는 거 학교에 와서 티 내는 거야? 하긴, 빵순이가 아지트 하나는 정말 잘 꾸몄지. 여기서 살라면 난 살 수 있을 것 같다. 해영이랑 뭐하다 왔는지 여차저차 떠들었더니, 타로군이 타로를 봐주겠다고 타다다닥, 타로 카드를 섞었다. 로비, 그의 속마음이 궁금해요. 그래서 나온 결론이 운명의 수레바퀴다.


"끝까지 들어라."


타로군은 카드 리딩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 한다. 그래서 한다는 말이, 그는 나를 운명이라 좋게 생각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신중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한 거란다. 차근차근, 천천히, 장인의 정신으로... 그러면서 유난히 여러 장 보이는 펜타클 카드를 가리킨다. 장인의 정신은 개뿔. 좋아하면 팍팍팍 진도를 빼면 좀 좋아. 애인 하나 만드는데 뭐 얼마나 잘 만들어 보겠다고 장인의 정신까지 발휘해? 어처구니가 없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다른 제 3의 문제가 있다."


"뭐! 뭔데 그게? 다른 여자?"


"그것은 모른다. 일, 돈, 다른 제 3의 문제가 이 관계에 방해가 된다. 너 말대로 삼각 관계일 수도."


"집어 치워! 돌팔이."


나는 가방에서 포카칩 한 봉지를 꺼내 타로군에게 던졌다. 먹어, 복비야. 공짜는 재수가 없다잖아. 포카칩이 가방에서 왜 나와? 말하며 빵순이는 또 다른 거 먹을 게 있나 내 가방을 뒤진다. 없어. 그게 다 야.


"도대체 매니큐어가 왜 있는 거야?"


...글쎄? 진짜로 잘 모르겠다. 해영이가 옆에서 색깔 예쁘다며 손을 내밀자, 자연스럽게도 빵순이가 해영이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준다. 희고 가느다랗고 길쭉한 해영이의 손가락. 되게 곱네. 나는 똑같은 매니큐어를 바른 내 손을 쫙 펴 보았다. 얼른 다시 주먹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화장실."


아까까지만 해도 기분 꽤 좋았는데 어쩐지 착 가라앉아버렸다. 손수건을 가방에 두고와서 페이퍼 타올로 닦았더니 어정쩡하게 닦였다. 이것도 마음에 안 들어. 핸드 드라이어는 왜 없는 거야? 돈도 많으면서. 휴지 쪼가리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나무가 목이 잘리는지 생각은 하나도 안 한다니까. 차례대로 처형당하는 불쌍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상상했다. 눈물이 다 난다. 그러면서 모퉁이를 도는데,


"씨베리아!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마마보이가 여기서 왜 나와?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토해버렸다. 진짜로 놀래서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놀라기는 마마보이도 마찬가지였는지 귀신이라도 본 얼굴을 하고 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가 여기서 뭘 하든 정말 궁금해서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는 보충수업이 있다고 성실하게 대답했다. 아, 네, 그러세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그대로 지나쳐 가는데, 그가 날 확 끌어당겼다. 그 힘에 이끌려 그대로 품에 안기고 말았다.


"사랑해. 순지야."


"미친!"


아, 신이시여. 정녕 이러기 입니까?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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