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X)와 썸남 사이, 지옥의 초대장을 날리다
남녀 사이에 사랑도 중요하지만 의리가 있어야지. 이건 뭐 같이 할 건 다하고 너는 내 여자다, 확신을 안 주니 빡이 친다. 빡이 쳐. 가만 있다가도 하루에 몇 번이고 울컥울컥 올라오는 기분. 돌아버리겠다. 그렇다고 나, 여자 친구 맞아요? 내가 먼저 물어보기는 싫다. 흥. 이 와중에 더럽게 헤어진 마마보이는 다시 만나자고 더럽게 치근댄다. 구미호랑 뭐가 잘 안 되는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건 아니잖아? 해도 해도 다들 내게 너무한다. 서른 다섯.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 언니는 당시 나이 서른이었다. 서른 살 노처녀 아이콘 삼순 언니. 나는 그런 삼순 언니한테 열광하면서도 서른 살이 무지 크게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내가 삼순 언니보다 언니가 돼버렸다. 난 내가 서른 즈음 되면 다 있을 줄 알았다. 남편 있고. 애도 하나 쯤은 있고, 살 집도 있어서 집 걱정 같은 건 아예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개뿔, 있긴 뭐가 있어. 나 원 참.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어쩌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제대로 된 남자 하나 없이 말이다. 그래도 아침에 크루아상에 카페라테를 마시는 할머니가 되겠다는 허세는 있어서 카페 이곳저곳 전전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객사하면 어쩌지? 나는 갑자기 불행해진다. 아아- 누군가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라테 마시지?”
라며 라테를 건네는 마마보이의 본명은 '김민기'이다. 월요일 교무실, 늘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일상인 이곳에서 날 차버린 전남친, 그리고 그 원흉인 구미호와 한 공간에 있다는 건... 썩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제발~ 김민기, 이런 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내 라테를 왜 너가 챙기는데? 당장 갖고 썩 꺼져! 라고 지랄을 하고 싶은 걸 참았다. 다른 선생님들 눈이 있는 까닭이다. 안 그래도 저들끼리 우리 셋 가지고 뒤에서 쑥덕쑥덕 말이 많다. 눈동자만 돌려서 구미호 쪽을 힐끔 보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티라미수 하나가 가지런히 그녀의 책상에 놓여있다. 사다 줄 거면 공평하게 하지, 나는 라테 하나가 끝이다. 치사하네.
“고마워.”
일부러 싱긋 웃기까지 했다. 그러다 문득, 용서는 어떻게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티라미수 안 사줬다고 삐친 거야? 이럴 수가! 이미 다 끝난 마당에 뒤끝 있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로비가 있다. 이성은 아니라고 하면서 나도 모르는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의리 없는 짓이다. 용서하자, 김민기랑 구미호를 보고도 평온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용서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냐면... 민기가 준 라테를 호로록하고는 어제 일을 회상한다. 어제 우리집에서 빵순이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장난해? 돌았니?”
돌았냐라, 후후.
“안 돌았어.”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초대하기'였다. 우리집에서 파티를 여는 것이다. 나, 빵순이, 타로군, 해영이, 김민기, 구미호, 이렇게 같이 말이다. 같이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고~ 그러는 거다. 여기서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다보면 속마음도 술술 나올 것이다. 속마음을 타 털고 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지저분한 삼각 감정도 정리가 되겠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나는 어쩜 이렇게 마음이 넓을까? 후후.
“하고 싶은대로 해. 너가 말린다고 들을 얘도 아니고. 하지만 난 빼줘.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데? 미친 짓이야.”
장난해? 돌았니? 미친 짓이야. 빵순이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러쿵저러쿵 어쩌고저쩌고 내가 아무리 까닭을 설명해도, 그게 쉽게 될 것 같니? 되려 이상한 오해만 더 깊어지면 어쩔 거냐고 반대한다. 정말이지 매사가 부정적이다. 그러니까 이상한 오해 받지 않게 셋이 아닌, 빵순이 너, 타로군, 해영이도 부르는 거 잖아. 보기 그럴 듯하게 다른 선생님들도 부르면 선생님 친목 도모회 쯤으로 보지 않겠어? 라고 했더니 왜? 교무실을 통째로 초대하지 그랬어? 흥. 비꼰다.
“부루마블 게임도 있어. 너, 이거 좋아하잖아.”
슬슬 달래본다.
“내가 아니라 해영이지.”
어쩔 수 없이 빵순이 다리를 잡고 엉엉 우는 시늉을 한다. 초대장을 수락하지 않으면 인스타 팔로우를 취소하겠다고 협박했지만, 흥 그러시던가, 나는 뭐 할 줄 몰라서 못 하니? 얄미운 말만 골라 한다. 나는 결국 빵순이에게 내 '라라걸 컬렉션' 하나를 하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손도 안 댄 이것은 이번 크리스마스 한정판 아이섀도우 6구 팔레트였다. 파워퍼걸하고 컬래버이션 하면서 펑키라고 비비드한 케이스가 꺄악♡ 이건 내 거야! 로비하고 데이트 때 쓰려던 건데... 자, 옛다! 먹고 꺼져라! 옆에서는 해영이가, 이거 주사위 하나가 없는데, 라며 언제 늘어놨는지 하나뿐인 부루마블 주사위를 보고 시무룩해 한다.
“그러지 말고 로비도 오라 하지 그래?”
빵순이는 천재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로비가 같이 있으면, 내 마음이 두 사람을 두고 어떤지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확신. 무엇이 됐든 내게는 확신이 필요하다.
“글쎄, 올까? 되게 바쁜 것 같은데...”
왔으면 좋겠다.
“바빠도 시간 내서 와야지. 알바생은 뒀다 뭐 하니?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방금 카톡 보냈어.”
나는 말로는, 너는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니? 지랄을 떨었다. 과장된 몸짓으로 내 스마트폰을 빵순이 손에서 홱 낚아챘다. 채자마자 나는 없어지지 않은 숫자 ‘1’부터 확인한다. 나도 참 나지. 성격 한번 어이없을 정도로 급하다.
“올까?”
올까, 물었지만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빵순이는 “나야 모르지. 아직 그쪽에서 확인도 안 했는데.” 무지 성실하게 대답해준다. 치. 누가 너보고 안다고 했니? 나는 다시 “오려나?” 해영이 쪽을 봤다. 그런데 해영이는 이쪽은 쳐다도 안 보고 주사위 진짜 없어? 징그럽게 주사위에 집착한다. 갑자기 외롭고 불안하고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차라리 신경을 끄자, 스마트폰을 침대 저쪽으로 던져버렸다.
“빵순이 너, 그거 한정판이야. 꼭 와야 해!”
아우, 짜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