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못 보는 퇴마사가 나에게 집착할 때

실연은 '읽씹'으로, 위로는 '임신으로

by 해파링

어쩌다 이꼴이 돼버렸을까? 아침, 출근하려고 눈을 떴더니 폐타이어 하나가 보였다. 우리집 현관에 타이어라니, 심지어 난 차가 없는데! 어쩐지 소름이 끼친다. 다시 자자, 5분만 더 자고 일어나면 타이어는 사라지고 없을 거야.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다. 죽을 때가 되었나 헛 게 다 보이네. 월화수목금토일, 요해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있다. 내 나이 앞에 '2'자 붙었을 때만해도 밤새 부어라~ 마셔라~해도 다음날 쌩쌩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다음날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 했는데 속은 쓰리지, 울렁울렁 아직도 배를 탄 기분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타이어?! 내가 하다하다 별짓을 다 하는 구나. 오 마이 갓. 생각났다. 동네를 오며가며 '타이어뱅크'란 간판을 여러번 본 적이 있다. 새타이어, 폐타이어, 무지하게 쌓여있어서, 보기만해도 냄새가 지독할 것 같아 근처 가까이도 안 갔던 데다. 그런데 어제 진창 마셔대고 머리가 제대로 고장났던 게 분명하다. 거기서 우리집까지 내가 타이어를 어쩌자고 왜? 하... 이것은 절도다. 반성하며, 세로 세운 타이어를 신나게 굴리는 나를 떠올린다. 잘 떠올려보니, 냐하하하, 웃다가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보니, 무릎이랑 손바닥이 까져있다. 옷도 그대로고, 화장도 그대로다. 진짜 어쩌다 이꼴이 되었을까? 진절머리가 난다.

"가자, 가.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로비랑 끝났다. 나는 우리가 그렇고 그런 사이이길 바랐다. 그래서 그렇게 확 질러버리듯 내 남자친구예요, 소개했다. 나름 당당하기까지 했다. 구미호나 마마보이가 교장한테 일러바친다 해도, 짜르시든가, 나는 내 마음이 더 중요했다. 그만큼 나는 진심이었고 순진했다. 그런데 로비는 아니었다. 내 남자친구예요, 이를 로비는 받아주지 않았다. 혹시 나를 생각해주는 건가? 내가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라도 받을까봐 관계를 숨기려는 걸까? 잠시 잠깐 말이 없는 로비를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정말로 곤란해 하는 얼굴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창문을 깨고서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이대로 영영 사라져버리기를.

"썩을 놈. 몸 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줬더니, 이대로 남이 되어 떠나가느냐!“


타이어를 씩씩하게 굴리며, 그래도 나는 출근을 한다. 선생님은 숙취 때문에 수업을 빼먹을 수 없다. 그리고 훔친 물건은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돌려주고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 이것이 도덕이지.

"그럼 난 뭔데? 뭐였는데!“


타이어가 말을 안 듣는다. 방향 조절하기가 내 마음같지 않아 이리 가고 저리 가고, 가다 말고 쓰러진다. 목장갑을 낄 걸 왜 안 꼈을까? 타이어에서 까만 뭐가 묻어 손바닥이 더럽다. 날이 추운데 땀이 다 난다. 굴리면 굴릴수록 점점 신경질만 난다. 고작 타이어 하나 가지고 낑낑대는 꼴이라니. 진짜 가지가지한다.

"아우씨. 더는 못 해 먹겠네.“


몰라. 몰라몰라. 버려. 에라이, 하고 타이어를 저 멀리 보내버렸다. 놔주니까 잘도 가네, 데굴데굴 타이어는 신나게 굴러갔다. 어쩐지 얄밉다. 눈으로 욕하고 있는데, 방향을 틀더니 앞에 가던 사람 하나를 치고 말았다. 홱 뒤돌아보는 피해자 얼굴이 무지 무서워서 나는 얼른 딴청을 피운다.


"응, 거의 다 왔어. 바로 앞이야.“


통화하는 척, 빠른 걸음으로 피해자를 앞질러 갔다. 미안, 미안, 빨리 갈게, 그럴 필요 없는데 짐짓 큰소리를 내기까지 한다. 이런 내가 정말 싫어지려고 하는 순간이다.


"정말 싫다.“


내가 빵순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점이다. 가식보다는 솔직이 낫다. 미술실 우리 아지트, 해장은 라테 두 잔 째.


"있지. 나는 마마보이한테 차였지, 로비한테 차였지, 지금 자존감이 완전 밑바닥에 밑바닥이거든? 그런 나를 좀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니?"


"아니.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은 드네. 장사 못하게 가서 엎어버릴까?"


"절대 끼어들지마. 아무것도. 아아~무것도 안 할 거야."


"열 받잖아! 할 거 다 했다며. 근데 왜 사귀는 사이가 아닌데!"


"됐어. 뭐, 그런다고 꼭 사귀어야하나. 몰라. 몰라몰라몰라몰라.“

땡깡부리는 어린애마냥 팔다리를 마구 허우적댄다. 사랑? 연애? 다 필요없어! 꺼져!

"연락은?"


"읽씹."


"개새끼네."


"읽씹도 대답이지 뭐."


"그래서 그 대답이 뭔데?“

할말이 없다.


"나는 심심풀이 땅콩이었던 걸까?“


심심풀이 땅콩. 낯설지 않은 단어다. 나는 마마보이 처지를 불쌍하게 여길 주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나, 마마보이나, 거기서 거기. 도대체 로비는 왜 그랬을까?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을까? 그래, 딸내미가 있기도 하고, 우리 관계가 진지하기에는 좀 부담이 될수도 있고, 그때 내가 막 나가서 막 당황해가지고 그래서 또 막, 남자는 문제가 있으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다는데, 기다려야할까?


"나 임신했어.“


응? 갑자기? 누가? 너가? 빵순이 너가? 뭐! 오, 마이, 가아앗!!

작가의 이전글귀신 못 보는 퇴마사가 나에게 집착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