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컵 메이드복 입고, 코피 팡! (로비, 너 왜 거기서 나와!)
내가 학교에서 띵가띵가 노는 줄만 알지, 나도 내 일 말고도 일을 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타로군의 축제 준비를 돕는다든지 말이다. 봄, 개나리는 색깔이 진하고 풍성하고, 다음주면 우리 고등학교 축제이다. 의무는 아니고 각 학급은 신청하여 장사나 전시 같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단다. 학생이 아니더라도 참여가 가능하다니까, 타로군은 남는 교실을 배정 받아 일일 타로 카페를 하겠다고 신나있다. 타로 질문 하나에 3천원, 타로를 보면 마들렌 하나가 공짜, 음료는 싼 것이 500원에서부터 제일 비싼 것이 1500원인데, 메뉴는 학생답게 우유, 코코아, 밀크티, 유자차이다. 마들렌을 라테나 아메리카노와 먹을 수 없다니, 가여워라. 나는 마들렌을 구워가기로 약속했다. 타로군이 교실을 오리엔탈 판타지 분위기로 연출하겠다며 이렇게 저렇게 만들기 지시를 했다. 오리엔탈 소스는 먹어봤어도, 그게 뭔지 모르는 나는 시키는대로 말을 듣는다. 내가 이렇게 빵도 구워주기로 하고, 교실 꾸미기도 도와주는데는 다 까닭이 있다.
“지겹지도 않습니까? 또 봐봤자 딱히 다를 게 없을 것 같습니다만.”
“선생님이 그랬잖아요. 에너지의 흐름은 항상 변한다고. 하루에도 좋았다, 나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기분인데. 어제 마음, 오늘 마음은 어쩌겠어?”
로비가 도대체 나랑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가 내게 연락할까? 이런 주제로 타로를 봐달라고 나는 드러눕기 일보직전이었다. 늘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알고 있다. 징글징글하네, 스스로도 혀를 내두르고 있으니까.
“그러지 말고 카페로 찾아가지 그래?”
항상 느끼는 건데 빵순이는 미술실 아지트에서 늘 빈둥대는 거 같다. 뱃속의 아기 때문에 식욕이 왕성하다고 한다. 맛있는 먹거리가 잔뜩 있는 냉장고는 세련된 장미색이다.
“그건 싫어.”
딱 잘라 말했다. 그랬다가 최악의 상황에서 얼굴을 보고 있다면 무지 자존심이 상할 뿐만 아니라, 아니라... 생각만해도 눈물이 난다.
“아야, 또 찔렸네.”
부직포를 오리고 바느질을 하다가 바늘에 또 찔렸다. 손톱이 길어서 작업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 네일을 하러 샵에 가기를 매우 좋아한다. 손질하고 틈만나면 예쁜 내 손톱을 보고 만진다. 거스러미 하나 없이 매끈하고, 컬러에 어울리는 큐빅으로 꾸며 주면 내가 섹시하다고 자신만만해진다. 여기 봐, 여기 또 찔렸어. 과장해서 엄살을 부렸다. 부리자, 타로군이 에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 카드를 뽑는다.
“이렇게 생각만 하지 행동하지 않는데, 저라면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누가 기다린데요? 잘 먹고 잘 살라지. 나를 좋아하기나 했데요?”
“희망고문하기 싫습니다만, 그 사람은 선생님하고 미래까지 생각했어요. 다만, 그러기에는 현실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그것은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현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후회는 해요?”
“합니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이성적인 분이네요. 그리고 바쁘십니다. 할 일이 많아 보이세요.”
“뭐가 그렇게 바쁘데? 자기만 바빠? 나도 바빠!”
안 그러려고 했는데 뭔가 잔뜩 흥분해서는 욱 해버렸다. 엄한 타로군한테 눈을 부라리며 성질을 내고 말았다. 타로군은 그런 나를 흘깃 보더니 카드 몇 장을 뽑아 쪼로록 늘어놓는다.
“운명의 수레바퀴. 그분은, 그분만이 해결할 수 있는 사명이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것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원한다면 순지 쌤에게 새로운 인연이 있는지 볼까요?”
“됐어요.”
또 모르잖아. 어느 날 갑자기 술 먹고 불쑥 나한테 연락하고 싶어서 해 버릴지도.
“또 모르지요.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할 수도요.”
타로군은 가끔 저렇게 무서운 짓을 한다. 남의 속 마음을 귀신같이 잘도 읽어 낸다.
“하지만 그게 오늘일지, 한 달 뒤일지, 내년일지, 모릅니다.”
타로군은 타로점으로 언제인지 시기를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자신은 믿지 않는다고 이상한 소릴 전부터 해왔다.
“안 기다린다고요. 나도 다른 남자 만나고 다 할 거라고요.”
도무지 서운해서 이해가 안 간다. 사정이 무엇이든, 그렇게 힘들면 내가 곁에 있어 줄 수 있는데 왜 그걸 몰라주는 걸까? 자존심 부리기는. 고집불통도 그런 고집불통이 없다.
“선생님 너무한 거 아니에요?”
세라가 내게 말했다. 끝을 올린 질문같지만 질문이 아니다. 오늘은 축제날이고 나는 우리반이 아닌 타로군 부스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타로군네 일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반에 가기 싫어서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꼴통반 아니랄까봐 별 희한한 장사를 한다. 분명 기획서는 별거 없었는데 오늘 보니까 영- 나는 안 되겠다. 몰래 타로군네 숨어서 빠져있었더니 어떻게 알고 찾아와서는, 이제 선생님이 다 해요, 학생 주제에 선생님한테 벌을 준다.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 싫어! 싫어어어-”
체면 다 버리고 꽤액 악을 썼지만, 우릴 버렸잖아요, 자기 반을 버린 죄가 더 컸다. 결국 메이드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품위 있는 공주 옷도 아닌 것이 프릴이 왕창 달리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 내 보기에 하나도 귀엽지가 않다. 이런 건 어디서 구하는 거야? 셀피 감성의 카페를 할 것이라고 했었다. 카페는 감성, 사진은 셀피라나 뭐라나. 이미 다 준비해 뒀다며 카페 소품 하나, 하나, 사진을 보여줬었다. 컵, 디저트 접시, 스푼, 포크, 심지어 테이블마다 거울이 손바닥만한 손거울을 둘 거라고 했다. 모두 소녀소녀하고, 공주공주했다. 교실 전체가 미국 드라마에서 본 하이틴 소녀 방같은 사진이었다. 이렇게 교실을 꾸밀 것이라며, 세상 모든 왕따들에게도 감성 카페를 즐길 권리를 주고 싶다는 소릴 했는데 그게 진심인지 별 시덥잖은 소린지는 관심없다. 그래서 허락했고 거기서 끝인 줄 알았더니 직원 옷이라며 옷을 보여줬는데 할 말이 없었다. 하지 말라고 안 할 우리 꼴통반이 아니지. 괜한 입씨름은 나도 힘들다, 힘들어. 시원하게 속았다고 인정하자. 그나저나 메이드 코스프레, 이거 쫙 빼입고 보니 제법 나쁘지 않은데? 통통한 몸매에 비해 원래도 지나치지만, 이게 또 내 큰 가슴을 더 돋보이게 한다. 나는 씁, 하고 숨을 들이켰다. 들이킨 만큼 볼록했던 배가 쏙하고 들어갔다. 딱 요만큼만 뱃살 좀 빼주면 완벽한데...
“어머! 선생니임- 카페 하신다더니 이런 거였어요?”
구미호의 하이톤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나는 엄마 몰래 빵점 짜리 시험지를 버리려다 걸린 딸년마냥 뭔가 뜨끔했다. 바짝 힘줬던 뱃살이 다시 흐물흐물 늘어진다. 뒤 돌아 눈으로 구미호에게 온갖 욕을 퍼부었다. 구미호는 되게 할 일이 없어 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제 노동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복장이다. 하늘하늘 흰 블라우스에 하이웨스트 초록 스커트는 무릎에서 딱 떨어진다. 참 여리여리 가녀리기도 하지. 세상 삐쩍 마른 것들은 죄다 화성으로 가버려라. 퉤퉤퉤!
“네~ 이런 거예요. 보시다시피. 호호.”
“역시 선생님 반다워요. 이게 뭐라더라? 하녀? 시녀 복장?”
“시녀라니요. 선생님도 참, 큐트 메이드요. 큐트.”
큐트, 나는 큐트를 강조하며 입술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었다. 립스틱도 진한 빨강이겠다. 딱 좋네. 여기서 구미호는 못 볼 걸 봤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태연한 표정으로 되돌렸다. 절대 내 페이스에 말리지 않겠다는 심산이 분명했다.
“그 선생님에 그 얘들인가봐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데요? 선생님이랑 정말 잘 어울려요.”
“딱이죠? 제가 뭘 입어도 좀 받쳐주거든요.”
받쳐주거든요, 말하면서 나는 내 가슴을 받쳐 올렸다. 보라, 구미호야. 나의 F컵을. A컵인 니가 아무리 뽕을 엠보싱 따따블로 넣어봤자 절대 흉내도 못 낼 가슴이니라.
“어떻게? 좀 빌려드려요? 입어 보실래요? 이게 또 입으면 커지는 매직 효과가 있거든요.”
말하면서 구미호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으헤으헤으헤 그래, 나 변태다. 변태. 어디 신고하려면 해 보시던가. 볼 것도 없는 가슴 이렇게라도 쳐다봐 주니 영광인 줄 알아. 빨딱 꺼지지 못해 꼬리 아홉 개 몽땅 뽑아버리기 전에 확!
“할 말 더 없죠? 내가 좀 바빠서요. 이게 꽤 인기인 거든요.”
나는 빙글빙글 빙그레 웃었다. 이런 나같은 여자를 두고 세상은 아마 ‘빙그레 썅년’이라고 하던가? 구미호는 귀까지 시뻘게져서는 뭐라 말도 못했다. 그저 아랫입술만 질끈 깨물더니 팩 뒤돌아 가버렸다. 흥! 그러니까 왜 와서 건들긴 건드려? 할 일 없으면 교무실에서 쳐 잠이나 잘 것이지. 메롱.
“심심하다.”
의외로 나 없어도 장사가 잘 된다. 우리 반 얘들도 재미있어하는 눈치고. 참 열심히네. 얘들이 궂은일까지 척척 다 하니까 맡기기로 하고 나는 카운터에 턱을 괴고는 구경이나 했다. 살짝 졸리려고 한다. 졸린데, 잘까? 말까? 잘까? 잘까? 그러다 쿵, 턱에서 손이 미끄러져 얼굴을 제대로 박고 만다.
"아우씨, 확, 씨, 진짜.“
"괜찮아요?“
"아, 네, 주문... 로비?“
"코피가 나는데.“
코피가 문제냐 지금. 코피가. 내 꼬라지가 문제지. 아우씨. 이 옷, F컵이고 나발이고 나는 더더더더 격렬하게 저항해야 했다. 뒤로 나자빠지는 한이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