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앞에서 기절! 축구공이 부숴버린 운명의 수레바퀴
너무 울어서 눈두덩이 소세지가 되었다. 꼬였다. 인생이 꼬여도 제대로 꼬였다. 무진장 억울한 기분이다. 그래서 울고 울고 또 울기만 했다. 그리고 참 어이가 없다. 신은 축구공 하나만으로도 인간의 인생을 꽈배기처럼 꼬아버릴 수가 있다는 사실에. 그래도 꽈배기는 맛있기라도 하지, 꼬인 인생은 먹을 수도 없다. 로비가 내 눈앞에 있었다. 그렇게 연락 한번 없더니만 말이다. 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기 딸 학교 축제에 얼굴이나 비추러 온 것인지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제야 그와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코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창피하기 짝이없었다. 하지만 나는 둘 다 무시했다. 로비 우리 할 얘기가... 여기서 블랙아웃. 그랬다. 난 기절하고 말았다. 우리 반 놈 한 명이 찬 축구공이 문제였다. 축구공으로 당구를 쳐서 쓰리쿠션이라도 했나? 어떻게 하면 복도에서 찬 축구공이 교실로 들어올 수가 있지? 이것은 신의 개입이다. 미스테리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신은 "안 돼! 너희는 안 돼!"라며 축구공으로 수레바퀴를 부숴버리셨다. 깨어나니 보건실 침대였다. 깨어나자마자 로비 생각에 눈물이 점점 차올랐다. 눈을 꾹 감았다. 감으니, 눈물이 뭉개져 두 볼을 타고 흘렀다. 으앙- 누운 채로 한바탕 펑펑 울고는 꺼이꺼이 꺽꺽대며 보건실을 나왔다. 보건실에 나만 있었기에 망정이지 누가 들으면 세상 망한 줄. 통곡도 그런 통곡이 없었다. 나는 무진장 슬퍼서 혼자 있고 싶은데 학교 전체는 축제라고 다들 신나서는 띵가띵가다. 도망갈까?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 몰골을 하고 다시 축제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었다. 갈 곳이 없었다. 그나마 텅 비어있겠다, 싶은 장소가 도서실이었다. 그래서 휘청휘청 도서실로 직행했다. 으에에엥- 축구공 쉬키, 딱 걸렸어. 가만 안 둘 거야. 팽! 세게 콧바람 한방으로 콧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솜을 저 멀리 날려버린다. 우리 학교 도서실에는 무시무시한 괴담 하나가 있다. 그게 뭐냐면, 도서실 출입문에 청동 흉상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미스테리다. 흉상은, 유관순이 모델인가? 내 보기에는 그런 느낌인데, 소문에 의하면 골동품 모으기가 취미였던 옛날, 옛날 이사장이 어느 날 부인하고 대판 싸웠는데, 왜냐하면 미친 부인이, 이년이 감히 누굴 노려봐! 흉상을 이사장 첩이라고 박박 우겼단다. 그래서 흉상을 망치로 박살내려는 걸 가까스로 이사장이 구해가지고는 여기 도서실에 피신시켜 놓은 거란다. 얼마나 바람을 뻑뻑 피워댔으면 부인이 머리가 고장이 났을까? 쯧쯧. 그런데 문제는 깜깜한 밤, 아무도 없는 도서실에서 흉상이, 자기야 집에 데려다 줘~ 집에 데려다 줘~ 자기야~ 라며 우는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피눈물을 흘린다는... 그런 무시무시한 괴담이 있다.
“흥. 그런 거 안 믿어.”
그랬다가 흉상하고 눈이 마주쳤다. 뭘 봐? 호기롭게 눈싸움을 걸었다가, 조그만 있다가겠습니다, 얼른 눈을 깔았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 마들렌 하나를 뇌물로 바친다. 타로군 카페에서 몰래 몇 개 챙겨두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나는 흉상 아래 쪼그리고 앉았다. 쭈글쭈글해져서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또 울었다. 로비도 로비지만 내가 딱해서 울었다. 사랑 받지 못했던 주제에 사랑 받고 있었다고 착각이나 하다니. 일이 이렇게 됐으면 쿨하게 잘라낼 것이지 그러지도 못하다니. 얼씨구나 이제는 질질 짜기까지. 직장에서 별 추태를 다 부리네. 자~알 한다, 아주 잘해. 한심해 죽겠다. 으앙-
“선생님? 괜찮으세요?”
뚝, 누구세요? 눈이 땡땡 부어서 이게 사람인지, 귀신인지, 학생인지, 동료 선생인지 잘 모르겠다. 옷차림을 보니 교복을 입고 있어서, 괜찮아, 너는 왜 여기 있니? 나는 하나도 안 괜찮으면서 괜찮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시잖아요. 저 왕따인 거. 어디 낄 데가 없잖아요.”
아, 그래. 내가 알았던가? 뭐,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아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반 얘는 아니고 다른 반 누구겠거니, 왕따로 유명하겠거니, 얘도 딱하네. 대충 추리해 본다. 나는 얘가 갔으면 좋겠는데 가지 않고 내 옆에 털푸덕 앉았다. 거 참 되게 불편하네. 나 낯가리는데.
“있잖아요. 선생님.”
역시 불편해. 나는 상담에는 영 소질이 없는데.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하지만 연애 상담이라면 또 얘기가 다르지. 누군데? 누군데? 흥분한 기색을 감추고, 그래? 목소리를 깐다. 김순지이이-. 진정하고, 차분하게, 고급스럽게, 알았지?
“그런데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이사장님이거든요.”
저런, 저런, 가여워라...응? 누구? 사장님이라고? 나이가 많아? 내가 못알아 듣고 눈만 꿈뻑꿈뻑하니까, 아이가 또박또박 다시 얘기한다.
“학교 이사장님이요.”
아아아아아아- 안 들려. 안 들려. 두 검지로 귓구멍을 막았다 뺐다 막았다 뺏다, 이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품위 있는 선생님이니까.
“마들렌 먹을래?”
어른스럽게 말을 돌린다. 아뇨.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쳇. 똘똘하네. 나는 체념하고 마들렌을 내 입속에 구겨넣었다. 라테가 있어야 하는데 없네.
“이상한 소리한다고 하시겠지만, 이사장님과 저는 정말 진지해요. 이사장님이 그랬어요. 저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지금의 부인은 저일 거라고요. 우린 그저 타이밍이 나빴던 것뿐이에요.”
타이밍이라... 로비와 나도 그저 타이밍이 나빴던 것뿐일까? 나도, 그는 내게 진심이에요, 타이밍 타령을 한다면 아무도 나를 미련 철철 한심한 여자로 안 보지 않을까?
“너, 이거 누가 또 아니?”
“아마... 와이프가 이제 알 거예요. 왜냐면...”
“왜냐면?”
“왜냐면 제가 알려줬거든요. 킥킥.”
웃어?
“자기 남편하고 잔 여자가 새파랗게 어린 미성년자라니. 이거 감옥에 쳐넣자니, 그간 들어왔던 사모님 소리며, 쌓아왔던 체면, 재산, 어떻게 해야 하나? 선생님, 있잖아요. 그 여자가 나를 보더니 눈이 시뻘게지면서 막 눈이 돌아가는데, 선생님 사람 눈 돌아가는 거 본 적 있어요? 막 이렇게 돌아가요. 뱅글뱅글. 뱅그르르.”
아니, 사람이 돌변해도 너무 확 변하는 거 아니야? 자기 얘기에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되려 자기가 돌아버리네.
“또 모르죠. 제가 왕따인 이유, 소문이 났나? 다들 우리 사이를 질투하고 있어. 시끄러워. 쫑알쫑알. 그러니까 그이가 날 버리려고 하잖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날 사랑하잖아. 사랑하면서 왜 날 버리는데?”
“날 놀리는 거니? 그럼, 못 써.”
누가 예술 고등학교 학생 아니랄까봐. 설마 지금 나를 상대로 연기 연습을 하는 건 아니겠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빨리 여기를 뜨자.
“이게 장난 같아 보여요?”
“그래. 잠깐 쉬러 왔는데 다 쉬었으니 그만 가 봐야겠다. 연극 잘 봤어. 훌륭한 연기자가 되길 바랄게.”
일어나 뒤돌아서 나가려는데... 여기서 블랙아웃. 기절? 진짜 이러기야? 아, 제발, 진짜, 확, 씨, 축구공 다음으로 이번엔 또 왜 그러는데? 신은 왜 나만 갖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