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아 죽으려면 너나 죽어! 내 얼굴은 소중하니까
귀신이라니 풋, 말도 안 된다. 그 아이, 도서실에서 나를 겁 준 그 아이, 잡히면 응징을 가하겠다고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짜증나 죽는 줄. 거기서 기절만 안 했으면, 아우-”
“아닙니다. 분명 잔 겁니다.”
그런데 타로군은 그런 얘는 우리 학교에 없을뿐더러 나는 기절한 게 아니라 꿈 꾼 거란다.
“꿈? 나, 그렇게 아무데서나 퍼질러 자는 사람 아니거든? 내가 얼마나 예민예민한 사람인데.”
“아닌데에- 아무데서나 퍼질러 자는데에- 아우, 아우, 거 봐라. 우리 아가도 그렇다고 하잖아.”
빵순이 뱃속의 아가는 태명이 '아가'다. 빵순이 말로는 발로 뻥뻥 차대는 솜씨마저도 자기를 닮아서 예술적이라나 뭐라나. 저게, 편들어주지는 못할망정 더 하네. 말하는 본새가 얄밉다. 욕을 좀 해주고 싶지만, 임산부니까 소리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나만 아는 욕을 퍼부었다.
“그런 얘가 없는지, 있는지, 쌤이 어떻게 알아요?”
이제는 제법 친해져서 우리는 쌤, 쌤, 부른다.
“기억력이 꽤 좋거든요.”
타로군은 매년 신입생들이 입학할 때마다 출석부를 보고 얼굴과 이름을 외운다고 한다. 나한테 도서실에서 만난 아이가 어떻게 생겼냐고 물었고, 그걸 빵순이가 몽타주로 만들었는데, 그래! 이 얼굴이야! 빵순이가 진짜 미술 선생님이긴 하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걸 왜 외워요?”
“취미입니다. 후후.”
“악취미.”
정황은 이렇다. 나는 분명 도서실 안까지 들어갔고 그곳에서 그 여자애를 만났다. 둘이서 얘기를 좀 나눴는데, 여자애 혼자 흥분해버려서는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이사장과 자기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 어쩌면 나를 놀리는 짓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더는 듣고 싶지도 얽히고 싶지도 않았다. 없었던 일로 하고 싶어서 자리를 빠져나오려는데, 거기까지였다. 나는 내가 거기서 왜 기절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이게 나의 주장이고, 나를 발견한 일곱명의 아이들 얘기는 달랐다. 죄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정하기 싫은 것은, 당시 도서실은 내가 봤던 평범한 도서실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귀신의 집이었다. 진짜진짜 인정하기 싫은데, 진짜였다. 아닌데... 분명 '귀신의 집'이 아니라 평소 도서실이었는데... 또 얘들이 하는 말이, 내가 하는 행동이,
“처음 들어갈 때부터 좀 이상하긴 했어요. 뭐랄까... 멍-했다고나 할까...”
“맞아, 내가 인사했는데 쳐다보지도 않으셨어.”
“그런데 도통 나오질 않으셔서 입구 담당 얘들이 찾으러 들어간 거예요.”
“우리 때문에 기절이라도 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저희가 더 놀랐다니깐요. 무슨 시체인 줄. 나, 하마터면 밟을 뻔했잖아.”
“나도나도. 맞다! 저는 못 들었는데 무슨 뭐라뭐라 잠꼬대도 했데요.”
“되게 잘 주무시던데.”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시니까, 얘가 이럴 때 뺨을 막 때리면 일어난다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했던 것뿐이에요.”
“내 말이 맞았잖아. 그래서 깼으면 됐지.”
내가 이랬다는 거다. 그래, 깨워줘서 고오오맙다. 고오오마워. 내가 나 말고 다른 여자애는 없었냐고 물으니까, 나 혼자 자고 있었다는 대답이 돌어왔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으스스한데?”
이런 걸 한기라고 하나? 늘 온기가 있고 푸근한 우리 미술실 아지트지만 지금은 썰렁한 기운이 도는 것 같다. 나, 진짜 자버린 건가? 라테를 한 모금, 두 모금 연달아 마신다.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고, 내가 이렇게 멍청하다니. 웃기는 짜파게티군. 꼬르륵, 배가 고프다. 그러고보니 제대로 된 식사를 하나도 못 했다.
“그 옷, 마음에 드는 건가요?”
축제가 끝나고 하교가 꽤 지났는데도 메이드 차림을 하고 있었더니 타로군이 놀린다.
“귀찮아. 이따가, 이따가.”
“취미라면 악취미네요.”
참 뒤끝 있네. 슬슬 가야겠다. 해영이 불러서 막걸리 한잔 하자 해야지. 빵순이는 금주 중이라 재미가 없다. 복도는 곧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차가운 이 기다란 공간이, 아까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다.
“진짜 그 옷이 마음에 들었나요?”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타로군, 징그럽게도 구네.
“지금 가잖아요. 갈아입으러 간다니까! 가! 가!”
뒤 돌며, 나는 한 대 칠 기세였다. 치고 실수였다고, 귀신인 줄 알고, 무서워서 그랬다고 뻥이라도 칠까,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쨌든 지금 내 얼굴은 웬만한 괴물은 저리가라 얼굴이리라.
“장난이었는데 기분 상했나요? 그랬다면 미안해요.”
로비? 아, 이 주먹은... 그러니까, 그거 아세요? 주먹을 쥐고 씩씩하게 걷는 게 건강에 그렇게 좋데요. 수명이 팍팍 늘어난다 하더라고요. 이렇게 주먹 쥐고 앞뒤로 흔들면서 이렇게, 하하하...하하. 알아요. 저, 이상하죠?
“언제봐도 밝군요. 순지씨는. 그래서 좋아요.”
내가 좋다는 건지, 그냥 단순한 자기 감정 표현인지, 사람 참 헷갈리게 한다. 여태까지 나를 피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러면 불만을 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된다.
“로비가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어요? 세라? 설마, 아까 갔을텐데...”
교무실로 가려던 방향을 틀었다. 위층 우리 반이 있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로비가 나를 덥석 잡았다. 손목을 휘감은 로비의 손가락. 희고, 길쭉하고, 가느다랗다.
“거짓말쟁이...나를 속였...”
“로비?”
방금이랑 분위기가 다르다. 거짓말? 누가? 속여? 내가? 하! 속이긴 내가 뭘 속여? 속였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겠지. 대체 나한테 뭘 속이려고 그렇게 연락 한 번 안 하고 피하기만 하는데! 진짜, 확, 씨, 진짜 뒤통수를 한 대 팍!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왜!”
아, 로비가 아니다. 그 아이다. 내가 도서실에서 봤던, 보고 기절했던 그 여자애. 나는 이제야 이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귀신에 홀렸구나. 손목이 아파왔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 드는 느낌이 점점 세지고 있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못 가져. 니 마누라도 똑같아. 차라리 죽어버려!”
홱 잡아끄는 손힘은 무척이나 셋다. 나는 방어할 틈도 없이 계단에서 발을 헛딛고 말았다. 여기서 머리가 깨져 더 나빠지는 건 그렇다 쳐도 코라도 부러지면 큰일이다. 어어어! 안 돼! 얼굴만은! 얼굴만은! 에잇, 재수 없는 년. 나는 여자애 머리채를 홱 잡아 손목에 감았다.
“죽으려면 너나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