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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Oct 21. 2024

집을  찾아서

기억 소환 1 등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세 아이들의 인사는 별로 유쾌하지 않았어.

일 학년, 삼 학년, 오 학년 삼 남매는 서둘러 버스정류장을 향해갔지. 어떤 이유일까 서둘러 먼저 뛰어가 버린 언니 오빠를 잡지도 않아.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오십 원짜리 동전 하나와 십 원짜리 동전 한 개를 재차 확인하고 버스를 기다려. 아이 눈앞엔 활기찬 아이들이 친구들과 재잘대며 지나가고 있어. 그들의 세상과 자신의 세상은 애초에 다른가보다 얼핏 느껴져.

버스에 올라타며 아이는 생각해. '잘 내릴 수 있을까?' 어른들 다리사이에 서 있는 아이는 특별히 의자손잡이를 잡을 생각도 안 해. 유난히 작고 마른 아이는 어깨에 자신 등보다 큰 가방 어깨끈만 꽈악 붙잡아. 다행히 흔들릴 때마다 이 사람다리 저 사람 다리에 기대 져서 넘어지지는않아.

'여기는 어딜까?' 내려야 할 정류장 차례를 하나, 둘 세다가 오늘도 놓쳐버려.

  '다시 셀 수도 없고...'

몇 번의 상하차가 반복되고 버스에 몇 안 되는 국민학생들이 내리자 껌을 짝짝 씹으며 안내양 언니가 정 없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얘, 너는 안 내리니? 학교잖아!"

오늘도 아슬아슬 학교를 지나치지 않고 내린 아이는  행이다 생각해.

  학교 정문, 커다란 건물 앞에서 아이는 또 잠시 멈춰.

  '교실은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라는 걸 인식도 못한 아이는 표현 못하는 켜켜이 쌓인 걱정을 조그만 몸에 가득 지고 숙제처럼 하나씩 헤쳐 나가. 그게 두려움인지 외로움인지도 모르고.

아이는 아이들이 바글대는 학교건물의  4층까지는 구분할 수 있었어. 그 이상의 층은 머릿속에 넣을 공간이 없어. 일 학년이니까 일층 어딘가를 기웃기웃하다가 우연히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안심이 돼.

'오늘은 종 치기 전에 교실을 찾았어.'

'내 자리는.. 음...'

자신의 자리에 앉았을 때야 긴장이 조금 편안해진 아이는 벌써부터 배가 고파 와.

아이는 교실 안을 둘러봐.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깔깔대는 모습이 에 들어와. 부럽다는 감정도 모르기에 그냥 고개를 돌려버려. 단지

 '쟤는 키가 크네? 예쁜 옷을 입었네? 선생님 옆에서 말도 잘하네?'신기하기만 해. 그리고 그 친구들이 선생님만큼이나 먼 거리라고 느껴.


  아이는 감수성이 남달랐어. 아주 아기적의  기억, 냄새, 뭉클한 감정, 불안한 감정... 정체가 뭔지도 모를 시절부터의 것들을 가슴 깊은 곳에 차곡히 쌓아놓고 있었지. 그것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때까지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처럼. 그것이 판도라의 상자일지 보물상자일지 모르는 데도  그 작은 몸에 자신만의 동굴을 워가고 있어그래서 등굣길, 교실의 위치 같은 것들도 직감만을 가지고 찾는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단 한 가지는 명확히 알 수 있었지.

'가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무엇인가의 부재에 대해서 만큼은 끔찍할 정도로 알고 있었어.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부재, 돈을 벌어야 아이 셋을 키울 수 있는 홀엄마의 부재, 아이가 충분히 귀찮았을 언니, 오빠의 부재 ㅡ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이는 일찍 기대하지 않는 것, 기다리지 않는 것, 요구하지 않는 것을 배워버렸어.

그래도 아이에겐 이상한 희망이 있었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꼬물거림. 그것은 사랑이었지. 살뜰히 챙겨주진 못해도  새벽마다 머리맡에서 눈물을 흘려 기도해 주시던 엄마의 사랑.

그래서 아이는 괜찮았어.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 엄마를 더 믿었기에 뭐든 참아낼 수 있었던 거야.

' 엄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이런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교실을 찾고, 꾸역꾸역 그러나 담담히 학교생활을 살아내었지. 그렇지만 생존에 에너지를 다 쏟은 탓인지 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없다는 게 아파와.


  '와아!' 수백 명의 아이들이 학교가 끝났다고 앞다투어 몰려나와. 아이는 알림장을 끝까지 쓰고 오늘도 맨 끝에 천천히 나가.

낯익은 버스가 오고 아침과 반대주머니에 동전 두 개를 찾아 작은 주먹에 꼭 쥐고 확인을 해.

 ' 집에 잘 갈 수 있을까?'표정 없는 생각이 살짝 스쳐 지나가.

낯설고 낯익은 차창 너머 풍경이 반복되다 본능적으로 여긴가 싶은 느낌이 들 때, 아이는 허둥허둥 버스에서 내려. 빵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하늘색 유니폼의 안내양 언니가 한심하다는 듯 작은 한숨을 쉬며. 제 다리 길이만 한 버스 계단을 다 내려갈 때까지 '오라이'를 참고 기다려 주었어.

'조금만 가면 집이다.'

사력을 다해 등교를 하고  미아가 위기를 피해 집에 도착한 아이를 팔 벌려 맞이한 건,

'가난'이 익숙하게 웃고 있는 단칸방이야.

아이는 그게 가난일지라도 반겨주는 익숙함에 잠시 울컥 ~. 그리고 가난의 냄새가 가득한 이부자리 안겨 짧은 잠에 꼬르륵 빠져들어.

더 긴 하루가 남아있었지만 아이  마음은 서둘러 내일의 등교를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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