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세상에 나가보니
여기저기 날들이 세워져 있다.
예전 보다 더 많이
예전보다 더 날카로운.
어떤 이는 눈에서
어떤 이는 입에서
어떤 이는 주머니에서 날을 꺼내든다.
이런,
날에는 손잡이가 없어
그걸 휘두른 날 주인도
날에 베인 타인도
피투성이가 된다.
어떤 이는 상처를 잡고
어딘가로 숨어들어 울고
어떤 이는 더 큰 날을 꺼내 들고
상대를 찾는다.
그런데,
저 이...
저 사람...
날에 베인 이들의 피를 닦아준다.
그러더니
타인의 날로 입은 자신의 상처도
쓱쓱 싸매안는다.
이 날 선 세상에서
날 없이도 자신을 지키는 사람.
그리고 남의 상처를 돌보는 사람.
내가 그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건가?
부끄러움과 주머니 가득한 겉옷을 벗어
길가 화단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린다.
어둠이 내린 차창 밖,
반짝 샛별이 갈 길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