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 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아

2. 고무줄놀이

by 은정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깊고도 넓고도 깊고 넓은 샘물 흐르네..."


노래는 끝이 없다. 아이들은 땡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이었다가 끊어져서 숱하게 연결한 검은색 고무줄 하나로 신나게 뛰어논다. 거기에 내가 있다. 어떤 아이는 맨발로 고무줄을 사뿐사뿐 넘는다. 자기 옆구리까지 높아진 고무줄을 점프와 날쌘 발놀림으로 훌떡 훌떡 넘는 걸 성공한 아이는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고무줄이 발에 걸려 상대팀 친구에게 순서를 내어주는 아이들도 아쉬워하면서도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하면서 서로 격려도 잊지 않는다.


어린 시절, 바깥에서 즐긴 제일 재밌는 놀이를 꼽는다면, 나는 단연코 고무줄놀이를 선택한다. 숫기없는 내가 언니, 오빠 없이 오롯이 내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던 유일한 놀이이기도 하다.

놀이의 시작은 이러하다. 발목에서부터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에 닿지 않게 일정한 약속된 발놀림을 하고, 성공하면 다음 단계인 종아리, 무릎, 허벅지, 엉덩이, 허리, 옆구리... 등등 점점 높아진다. 고무줄을 밟거나 걸리면 상대팀 아이들이 자신들의 순서대로 고무줄을 뛴다. 아이들은 누구나 여러 개를 연결한 기다란 검정고무줄이 있다. 아마 그중에 많이 긴 고무줄을 가진 아이는 인기가 좋았다. 뚤뚤 뭉친 고무줄 덩어리는 발에 밟혀서 끊어지고 다시 묶은 매듭이 많았고, 놀기 위해 뭉쳐진걸 아이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풀어냈다. 그리고 짓궂은 남자애들이 장난으로 끊어지기도 한다. 끊고 도망가는 남자아이를 기필코 따라잡아 등짝 한 대 때리고 다시 시작한다. 화를 내도 누구 하나 진심이 아니고 장난은 장난으로 넘겨주는 여유도 있다.(물론, 드물게 진짜 싸울 수도 있다.)

고무줄놀이는 기본적으로 최소 세명의 사람이 있어야 재미가 있다. 만약 둘 뿐이라면, 한쪽은 나무나 의자에 고무줄을 걸어 술래 한 명을 대신시키곤 했다.

먼저 아이들이 모이면, 한 줄, 두줄, 또는 삼각형 어떤 걸로 할지를 정해야 한다. 나는 주로 두줄 고무줄놀이를 했다. 시작은 발목에서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노래로 1절부터 4절 노래가 끝나면 무릎, 그리고 더 끝나면 허벅지. 엉덩이, 허리를, 옆구리, 목, 머리끝까지 끊이지 않고 도전을 한다. 두셋이 가위바위보로 한 팀을 이루어 팀대항일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잘하는 아이는 팀을 짜는데도 인기가 많았고, 홀수일 때 못하는 아이는 은근 깍두기 같은 걸로 빼서 양쪽팀을 돕게도 했다. 나는 아주 못하지도 아주 잘하지도 못했지만, 고무줄을 하루 종일 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좋아했다. 에너지가 넘치고 폴짝폴짝 뛰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힘들다 덥다 불평하지 않고 재밌게 놀았던 기억만 가득하다. 지금도 고무줄놀이를 보급하면 아마도 이 땅에서 비만이라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어질 텐데, 무거워진 내 몸을 내려다보며 웃음이 난다. 뛰고 또 뛰고, 노래 부르고, 환호하고 실망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던 그 시절... 그렇게 뛰다 보면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생각이 많던 아이였던 나도 아무 걱정 근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저녁거리를 사러 나온 엄마들이 아이들을 하나 둘 불러간다. 결핍이 많은 시절이었지만, 많은 친구들과 질리지 않는 재밌는 놀이를 원 없이 하던 시절, 행복했고 너무 그립다. 그리고 그렇게 불러주던 엄마의 목소리도 너무나도 사무치게 그립다.


오늘은 학원 아이들에게 고무줄놀이를 알려줄까? 분명 오늘의 아이들도 행복하게 소리 지르면서 뛰어놀 것만 같은 생각은 내 착각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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