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공원이 아름답다는건 무슨 말일까
나는 지금 공원을 걷는다.
마음속에 응어리 몇덩어리 놓여있다.
슬픈 사연들이 혈관속으로 흘러 심장 옆 내 마음에 고인다.
이런 상태에서, 아름다운 어떤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나 자신도 나 자신의 감정에 따라 공간과 대상을 달리 판단한다.
동일한 풍경도 내가 우울할땐 우울하고, 내가 기쁠땐 기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그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일까? 그저 아름다운 것을 제대로 꾸준히 기록하면 되는걸까? 누군가를 선동하고 설득해서 특정 풍경이 왜 아름다운지 홍보해야 하는 걸까?
칸트는 50세가 훌쩍 넘어 이 질문에 대해 판단력비판이라는 책으로 대답한다. 미는 판단하는 주체에 의해 형성된다. 그대신 그 판단은 절대적이지 않고 늘 반성적이다.
주관주의, 상대주의로 아름다움이 정해진다면, 그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수 있다.
아름다움이 취향의 범주에 편입되면 아름다움은 특정 세력, 지식과정치와 경제 카트텔에 종속되고 만다.
나는 지금 공원을 떠난다. 공원의 아름다운 것들은 보편적인 것인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인가.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예찬한 프레임 아래에서 우리의 판단력은 지극히 수동적인 것이 되어버리는 걸까.
공원은 야생적인 제1자연이 아니다. 그렇다고 농경지나 약초원처럼 제2자연도 아니다. 그러니 자연미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원을 어떻게 읽는게 좋을까? 아름답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공원을 읽으면 읽을수록 뿌연 안개가 조금씩 걷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