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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라퍼'는 불치?

멈춤 없는 오지라퍼, 그 후유증

by yo Lee

우리 어머니로부터

2대째 내려온 생활신조 중 하나,

'패션의 시작과 완성,

양끝에 헤어스타일링이 있다'


예전

직장인이었을 때,

화장은 안 해도

머리손질 안 한 출근은 없었던 듯싶다.


그러나

요즘

머리칼 상태는 폭삭 삭은 수준.

게으른 손질에 유전이 합해진 결과다.

자연히 미용실 드나듦이 줄었다.


그래도

오늘은

미루고 미루던 커트 하러

미용실에 왔다.

운 좋게,

대기 없이 바로 시작이다.

의자에 앉아 cutting clothes 두르고

막 가위질 시작되려는데,

급히 들어서는 남자 손님이 있다.

한발 늦었다며 애통해하는 모습이

시간에 쫓기는 직종 종사자인가 싶다.


"샴푸만 할 건데" 하면서 몹시 애석해한다.

'시간' 밖에 없는 내가 양보키로 한다.

따라 들어온 또 한 사람이 친구라니, 자동 추가!


남자 손님들 샴푸 끝날 즈음,

이번엔 여자 손님이 들어선다.

자기는 전화예약을 했었다며, 시간이 없다고 징징댄다.

자발적 끼워주기 3명째.


5분 걸린다던 두 남성들의 샴푸는

두피 마사지를 포함한 것이었고,

커트만 하겠다던 여자 손님은 염색 추가와 스타일링 문제로 상담이 길어진다.


여전히 어깨에 cutting clothes을 두른 나는, '스타트 자세'의 단거리 육상선수 모양새다.

늘어지는 대기시간 따라 무료도 깊어진다.


미용실 투명 문으로 밖을 바라보노라니, 오가는 사람들 표정이 다양하기도 하다.

문득 십수 년에 걸쳐 있는

사연이 머리를 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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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숱 많고 건강했던 모발 덕분에

펌 웨이브 잘 나온다는,

미용사들 칭찬?에 익숙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갑자기 펌 웨이브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통상 소요시간의 2배 이상으로 연장해 봐도,

머리칼만 상할 뿐 효과가 없었다.


결국 미용실 주인과 상의 끝에 당분간은 모발 건강 회복을 위해 펌 횟수를 줄이기로 했다.


그래서 십수 년 전 그날도,

아주 오랜만에 날 잡아

펌 하려미용실을 찾았다.


머리에 펌약 도포를 다 마쳤는데,

젊은 2명의 아가씨들이 들어섰다.

인근 주민이 아니고 큰길 건너 동네에서 왔다며,

이 미용실은 초행이라고 한다.

그러나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그녀들은 돌아서려는 눈치다.


'지금 이 손님이 나가버리면,

인근 주민도 아니니, 다시 올 가능성은 없는데...'

손님 놓치는 주인 조바심이 내게 빙의되고 말았다.

결국 오늘처럼 자발적 양보를 함으로써,

가려던 손님을 붙잡아 앉혔다.


펌 약을 이미 발랐던지라,

나는

비닐캡을 쓰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내 순서를 양보받은 긴 머리 아가씨가 스트레이트 펌을 할 거란다. 그 펌은 내가 하려던 일반 펌보다 1.5배 이상 더 소요된다.

거기다가 동행까지 두 명,

모두 그 펌을 할 거란다.


'아이고!'

가뜩이나 망가진 모발상태 때문에

펌도 횟수 줄여가며 하는데,

펌약 바르고

3시간여를 기다리라고?


자발적 양보다 보니

번복은 못하겠고,

'한 명 끝나면, 내 순서 회복시켜주겠지.

독한 펌약 바른 지가 2시간여 돼가는데'

아주 나빠진 모발상태를

나보다 더 잘 알고 미용실 주인인지라,

설마 두 명을 다 내 앞에 끼워 넣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기대는 물거품 되고,

곧이어 두 번째 아가씨의 매직 펌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창문 밖은 어둠이 짙어지고,

흠뻑 도포한 펌 약은 말라붙어서,

머리칼이 퍼석거린다.


점차 참을 수 없어진 나는,

벌떡 일어나

'펌 약값은 주겠으나 그만 돌아가겠다'며 가운을 벗고 미용실을 나왔었다.


그날로부터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동네 지인이 뜬금없이

오늘 미용실에서 들었다는 얘기를 전한다.

'예전에 어느 진상 손님 하나가...'


그날의 나를 묘사하는 얘기였다.

물론 그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모른 채로.


'벌컥 화를 내면서 나간 것'이

내가 수년동안 그 미용실에서 진상고객으로 회자되고 있는 이유였다.


상한 모발에다 펌약 잔뜩 도포한채

2시간 넘게 기다리게 된 원인은 고려되지 않고,

단지 내 불쾌한 표현만이 그녀에게 앙금 되었던 모양이다.

맘에 깊은 생채기가 나기는 나도 마찬가지.

수년 전 일을 여전히 다른 손님들에게 되풀이하며 나를 비난한다는 그녀가 너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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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후, 그 미용실 문에 폐업 안내문이 내걸렸다.

주인이 '가볍지 않은 암'에 걸려서 치료차 외국에 갔다는 소문이 따라왔다.

내 맘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 원망도 한몫했으려나?


그러자니

닫힌 미용실 문 앞을 오갈 때면

절로 기도를 하게 되었다.

내 원망은 빼주시라고.


'누구나

자기 입장만 생각하다 보면

온전치 못한 사고의 늪에 침잠하기 쉽습니다.

나 또한 흐린 판단으로 누군가에게 원망과 상처를 주었던 적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내가 느꼈던 원망을 지울 테니, 이 미용실 주인의 병이 낫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원망, 분노도

상대를 죽음 가까운 병으로 몰아넣는 악한 기운으로 작동해선 안된다'는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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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너 해 후에

그녀가 다시 개업을 했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미용실에.


반가웠다!


우리 집 길목에 자리한 이 미용실은 집에 들며 날 때 거쳐가게 된다.

비록 손님으로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오가는 중에

일하는 그녀 모습을 문 밖에서 곁눈질하며,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작년쯤에

다시 그녀는 이 미용실을 떠났다.

지금 이곳의 주인은

그녀로부터 가게를 인수한 사람이다.


그녀의 근황을 물어보니,

미용실 운영은 접었지만

이 동네 인근 살림집에서

가족들과 별일 없이 지내고 있단다.


수년에 걸쳐

동네 두 곳의 미용실 문 앞을 서성이며

드린 나의 기도는,

아주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닌듯하다.



그나저나

'오지라퍼'인 나는

언제쯤

'자발적 양보를 멈출 수 있느냐'는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재확인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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