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베트남 여성 박물관과 세계가 지켜 본 베트남 역사의 현장 통일궁
‘남베트남 여성 박물관은 베트남 여성 연합에 의해 1987년에 설립되었고, 1995년에 개관했다. 그 후 정부와 베트남 여성 연합, (영) 포드재단의 지원을 받아 박물관 리모델링을 2006년에 시작해 2010년 전시관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전시관 구성은 남베트남 여성 복장을 포함하는 각기 다른 10가지의 화랑이 있고 31,369개의 물품이 전시되어있다. 전시품들은 소재별로 나누어져 24개의 컬렉션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그중 6개의 컬렉션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진귀하고 독특한 소재와 디자인이 포함된다. 또한 gender박물관으로 남녀평등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11,000권의 다양한 여성 관련 서적이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현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박물관 홈페이지 안내글이다.
‘1858년 프랑스는 다낭을 공격하기 위해 불을 지피고 베트남에 대한 침략 전쟁을 시작했다. 1867년 프랑스 인은 코친차이나 (Bien Hoa, Gia Dinh, Dinh Tuong, Vinh Long, An Giang 및 Ha Tien) 대륙을 점령했다. 1868년 프랑스 정부는 사이공 중앙에 코친차이나 주지사의 저택을 설계하고 건축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1868년 2월 23일 시작되어 1871년 베트남 남부 라그 라디 에르 (Lagradìere) 프랑스 총독에 의해 완성되었다.’ 통일궁 홈페이지의 설명글이다.
마담 누: Diệm 대통령은 신부가 되려던 신앙심으로 독신이었다. 의전상 등의 이유로 정보부장이던 동생 응오딘 누의 부인이던 마담 누가 퍼스트레이디로 결정되었다. 이후 그녀는 공산주의자에게 친정 오빠 두 명이 살해당한 원망으로 극단적인 반공주의자가 되면서 반불교, 반공산주의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축재, 공무원 인사, 미국의 원조 물자 배분 등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용녀'(Dragon Lady)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불교활동 저지에 대한 반감으로 스님들의 항거가 이어지고 틱꽝득스님의 분신으로 촉발된 항거는 결국 남편과 대통령의 처형으로 끝났다. 딸과 외국 순회 중이던 그녀는 영구 귀국 불가 통보를 받고 유럽을 전전하다 로마에 정착해 2011년 4월에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