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나해 파도가 빚는 냐짱 해변 풍경과 프랑스 학자 YERSIN
16박 17일 여정으로 베트남 냐짱을 시작으로 무이네, 호찌민을 거쳐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와 말레카를 여행했다. 그 첫 방문지, 나짱이다.
1시 50분에 이륙, 5시간 반 정도 날아왔는데 도착한 현지시간은 새벽 5시 35분이다.
인도네시아계의 참족이 세운 참파 왕국의 8세기 수도였고,
아시아 해상교역의 요지였으며,
프랑스 식민시절 휴양지로 개발될 만큼, 남중국해에 면한 6km 해변이 아름다운 곳,
나짱이다!
깜란은, 국제공항이라기보다는, 2004년까지 쓰였다던 공군 비행장 쪽에 가까운 느낌이다.
훅 끼쳐오는 더운 공기와 키 큰 야자수의 도열이 남국임을 알린다.
아열대 더위를 예측, 미리 여름옷을 안에 받쳐 입고 온 터라, 겉옷 벗어 가방에 넣는다.
이전 다낭 여행에서 남은 잔돈이 용케 찾아져서, 환전소는 통과하고 버스 타러 직진한다.
공항 문 나서자마자 바로 눈앞에 나타난 버스 승차장에 도리어 어리둥절해진다.
출발 전 꼼꼼하게 남의 블로그들 찾고 또 찾아가며 공항에서 시내 이동 정보를 사진과 메모로 자세히 폰에 저장해 왔는데 생각보다 작은 공항은 찾는 수고가 전혀 필요치 않다.
그렇다고 여러 정보를 올려준 블로거에 대한 감사는 생략하지 않겠다.
작은 정보도 첫 방문지에 대한 부담감 감소에 충분히 기능하기 때문이다.
시내 방면 버스 행선지 표시는 ‘YERSIN’이다.
프랑스인 의사이자 세균학자 알렉상드르 예르생(Alexandre Yersin)의 이름을 딴 도로명이다.
프랑스의 베트남 통치 시절, 그는 이곳에서 은둔 생활을 하면서도 의학, 세균학, 지리학, 천문학 그리고 예술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쌓았다.
후에 '인도 치나 의과대학'의 최초 총장이 되었고, 그의 영향으로 프랑스 총독부는 지리소, 지질소, 기상소, 천문대와 해양학 연구소를 건립하였다.
1943년 3월 1일, 나짱에서 그가 사망하자, 20km 떨어진 곳에 그의 묘가 만들어지며, "베트남인들이 숭배 한 은인이자, 인도주의자"라는 비문으로 추모, 사당도 지었다.
1990년에
그의 묘지와 냐짱 파스퇴르 (Pasteur) 연구소에 위치한 예르생 박물관은, 베트남 문화역사 유적지로 등재되었다.
베트남 정부가 외국인에 대하여 국가 문화역사 유적지를 인증한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그는
주변 어촌 주민들에게 무료로 의술을 베풀고, 어려운 어민들을 많이 도왔다. 19세기 유럽 열강의 인도차이나 경영기, 프랑스 植民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 매일 그의 집에서 독서, 영화, 그림 혹은 망원경을 보게 해 주었고, 주민들에게도 영화 상영으로, 서구 문명을 접하게 해 주었다.
이런 인간애로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기에,
사후에도 여전히 많은 베트남 사람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진다고.
그가 살던 해안가 집에 꾸며진
YERSIN MUSIUM으로부터,
냐짱 시내 중심가를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명이 Yersin街이다.
이 도로를 경유하는 노선버스가 우리를 기다린다.
티켓박스에서 요금을 지불하고 작은 표를 받아 미니 버스에 올랐다.
차창 너머, 일단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여행가방을 끌며 각 팀의 가이드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저마다 신경 쓴 입성과
가벼운 걸음걸이, 풍부한 얼굴 표정에 여행의 기대감이 배어난다.
대기해 있던 관광버스들의 일제히 켜지는 시동소리로,
여명 속 깜란 공항이 화들짝 깨어난다.
공항의 입국 승객들이 다 흩어진 뒤에야, 로컬버스는 출발한다.
손님들 모두가 한국인이다.
6명의 승객 중, 나를 제외한 5명 모두가 젊은이들로, 친구끼리인 여성 2명, 남성 2명 그리고 나와 내 옆에 앉은 청년이
홀로 여행자이다.
청년들과 나는 이 도시의 방문지 정보를 교환하느라 흔들리는 버스 의자를 움켜잡고 머리를 맞댄다.
'홀로' 청년은 깜란이 스탑 오버 공항이라, 오늘 저녁 비행기 출발 전까지의 시간을 떼우러 나섰단다. 그러나 자신의 서툰 영어가 걱정이라고 털어놓는다.
시내로 들어오는데 걸리는 소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36km 이동에 약 1시간 여가 소요되고 있다.
처음에는 완만한 벌판 길인가 싶더니,
높은 바닷가 벼랑 위를 뒤뚱거리며 감돈다.
버스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는, 흐린 하늘 아래 청회색으로 우리를 맞는다.
멀리 남중국해(남지나해)까지 펼쳐진 광활한 바다를 보니, 여행 임이 실감 난다.
커브를 한참 돌아들다가, 버스는 해변가를 끼고 달리는 도로로 내려선다.
6km에 이른다는 냐짱의 해안선 따라, 힘차게 뻗어 나는 도로 옆 넓은 모래사장에, 장난기 가득한 파도가 흰 포말을 쏟아내며, 몰려왔다 뒷걸음질 치기를 반복한다.
도로 중간중간에 조성된 공원의 녹음과 어우러진 바다는, 수평선에 둘러쳐진 짙은 회색 하늘을 장막 삼아,
장대하면서 또한 내밀하게,
성큼 이방인의 눈에 안긴다.
시내가 보이자,
혼자 인 청년은 저녁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되돌아갈 버스 정류장과 출발시간을 알고 싶어 하지만 묻기를 망설인다.
대신 버스 안내양에게 물으니
영어를 전혀 못하는지 멀뚱히 쳐다보기만 한다.
이를 지켜보던 청년이
이내 시내 관광을 포기하고 바로 공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며 불안해한다.
아직 아침 7시도 안 된 이른 시간이라
시내를 돌아볼 시간이 충분한데, 정보가 준비 안되니, 비행기 놓칠까 봐 염려가 앞서는 것이다.
관광안내소를 이용하거나 폰을 이용한 정보 검색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
해외여행 두 번째라는 그의 긴장감이 나한테 전해온다.
공항에 돌아갈 정보를 폰에서 찾아주려는데,
안내양이 급하게, 나를 향해 내릴 준비를 하란 사인을 한다.
예약해 둔 숙소가 냐짱 아트센터 근처여서, 시내 들어서자마자 내가 첫 번째로 내리게 된 것이다.
더는 그의 문제 해결을 돕지 못한 채 서둘러 내린다.
버스 창 너머로 손 내밀어 흔드는 그의 작별인사에, 나도 마음으로 맞잡아 준다.
‘몇 번 여행하다 보면, 제대로 즐길 때가 금방 와!’
이 도시의 일정은 1박이지만 2일을 통째로 이용하게 된다.
오늘 아침 6시에 도착했고, 내일 밤 8시 출발하는 야간 버스로 이동 예정이니, 이틀 간의 낮 시간을 오롯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냐짱 거리는 온통 신축건물 공사 중이다.
인도를 점령한 건축자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리고 지금 막 열리는 아침 식당들의
인도에 차려놓는 식탁들도 보행 걸림돌이다.
차도로 내려서야만 여행가방을 끌 수 있다.
조식을, 길거리 작은 상자 크기 좌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먹거나,
혹은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을 사서,
걸어가며 먹는 모습을 처음 본 1991년의 상해 거리 풍경과 오버랩된다.
숙소는 작은 골목 안쪽에 있었지만, 여행자 지역이라 어렵잖게 찾았다.
입구에 지저분하게 쌓여있는 슬리퍼들 숫자로 조금 불안했는데,
살림집과 붙어 있는 구조에,
손자를 어르는 이 집 어르신의 애정 가득한 표정에, 숙소에 대한 낯섦이 누그러진다.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는 여주인은 친절하다.
아직 아침 8시,
이른 시간인데도 흔쾌히 입실을 허락하니, 여정의 첫날 운세로서 나쁘지 않다.
안내받아 올라간 방은, 후덥지근한 외기와 큰 차이 나게 서늘해서,
올라가다 목격한
덜 깨끗한 화장실도 용서될 만했으나...
그때까지는
그날 밤의 곤혹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순조로운 출발에 콧노래를 읊조리며 가방을 정리하고 거리로 다시 나선다.
오는 길에 본 기막힌 해변 풍경!
거칠 것 없이 해변을 향해 몰아쳐오며 야수의 이빨을 드러내는 파도와, 기인 백사장, 그리고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결에 묻어오는 이국의 흥취를 한껏 만끽한다.
16일 3개국 여정의 첫발을 내디딘 도시, 냐짱 과의 정식 대면을 이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