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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ee May 02. 2020

#28.말레카2: 서세동점 교두보 말레카의 상흔

450년 간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일본이 할키고 간 자취들

현지 음식

숙소를 나와서 음식점을 찾았다. 찾아간 맛집은 하필 휴가기간이란 안내가 무심하게 내걸려있다.

할 수 없이 규모 큰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가족단위 중국인들이 커다란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 중이다.

메뉴는 중국어로만 적혀있고 주인 여성은 영어를 못한다. 어찌어찌해서 몇 가지 주문을 마쳤다. 결코 싸지 않은 값이지만 일단은 허기진 상태를 면하기에는 괜찮았다. 유럽이던 어디던 중국음식은 대체로 내게 무난하다.

현지 음식에 관한 얘기를 거의 안 썼지만, 사실 먹는 것을 좋아하니 인터넷 지도에 맛집 표시는 수두룩하게 많이 해간다. 그런데 음식점 방문 시간과 일정 코스가 서로 안 맞거나, 막상 가보니 먹기 어려울듯한 음식일 경우 후퇴한다. 그래서 저장해 간 맛집 대신 대형 쇼핑몰 푸드 코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젊어서는 어떤 음식이던 잘 먹었는데, 나이 드니 음식을 가리는 일이 잦다.

1996년 22일 여정의 동유럽 패키지여행 때 일이다. 당시 동유럽은 보스니아 전쟁 직후라 경제사정이 안 좋아서 호텔 음식이라도 메뉴가 단출했다. 그러자 일행 중 나이 든 분들이 왜 한식집에 안 데려가느냐고 가이드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서유럽과 달리 한국어를 하는 현지 가이드도 구하지 못할 만큼 관광이 수월치 않은 때이니, 한식집은 더구나 쉽게 찾기 어려운 때였다. 그걸 본 우리 젊은 세대?는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도 여행의 일부인데 굳이 한식 고집하는게 이해 안됐었다.

요즘 들어 비로소 그분들이 이해된다. 입맛은 나이와 반비례로 선택 폭이 확연히 줄어든다.

내가 젤 좋아하는 것은 누룽지 끓여먹기다. 캔에 든 장아찌와 곁들이면 마치 푹 우려낸 사골곰탕 먹은 듯한 만족감으로 온몸이 반긴다. 호텔에 비치된 전기주전자와 조금 큰 겁이면 족하다. 장기 보관, 휴대 간편에 냄새 걱정도 없다.

 


카 해협을 바라보며

석양이 아직 남아있으니 시내 구경을 나선다.

스텝의 안내가 아니더라도 거리가 쉽게 파악될 만큼  관광지 규모 작은 도시이다.

변두리부터 살펴보는 습성에 따라 바닷가 쪽을 먼저 보기로 한다.

이 해협은 계절풍을 이용하는 동서의 중계항으로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해주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넘나들 수 있는 항로는 여럿 존재하지만, 말라카 해협은 인도-중동-아프리카 지역과 동북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을 최단거리로 연결할 수 있는 루트다. 때문에 전 세계 해상 운송량의 20%가량이 이 항로를 통과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아시아 국가들의 중동산 석유 운송의 중요한 항로다.

해협 덕분에 일찍이 중계무역 거점 국으로 번성할 수 있었는가 하면 겨우 100여 년의 역사로 말레카 술탄 끝나게 는 배경이기도 하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급속한 사회변화를 겪은 유럽은 아랍과 무슬림 상인들에 의해 이뤄지던 후추, 향료(정향, 육두구. 육두구 껍질을 말린 메이스), 면직물, 비단의 수요가 늘면서 중개상 베네치아 대신 직접 교역로를 개척하는데 포르투칼은 적극적안 투자를 한다. 1488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에, 1497년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 경유 인도양을 횡단한다.

그리고 1510년 인도의 고야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1511년에 말레카를 차지하였다. 이로써 중국 마카오, 일본과의 교역으로 확대하는 중간기지가 되었다.

이어서 네덜란드, 영국이 뺏고 뺏겨가며 이 땅을 차례로 지배하게 된다.


15세기 거대한 동서교역의 중심이 된 이곳으로 몰려든 여러 나라 상선들이 닻을 내렸을 말레카 해협을 보고 싶다.

마코타 대형병원 쪽으로 길을 건너니 멀리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에는 신축 아파트와 리조트 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고급 아파트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니 친절한 표정으로 지나가라며 손짓한다. 가까이 본 아파트는 구시가지의 오래된 건물들과 대조된다.


바다는 예전에는 아파트 단지보다 훨씬 육지 쪽으로 들어와 공원 근처까지 였다고 한다. 그동안 계속된 간척으로 바다가 멀리 후퇴한 것이다.

어느새 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멀리 보이는 바다는 거친 흰 이빨을 드러낸다.

유적들이 몰려있는 광장 쪽으로 길을 건너가려니, 6차선 도로 위로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위협적이다. 그렇다고 건널목을 이용하기에는 좀 멀다. 불법 횡단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저만치서 어떤 남자가 나와 같은 목적으로 서있다가 말을 건네 온다.

오른쪽 기둥은 높이 80m 말레카 타워 전망대. 뒤편 배 마스트는 포르투갈 범선 모양의 해양박물관

“조심하세요. 위험해 보입니다.”

“그러게요.” 내가 응수한다.

그는 미국에 사는데 잠시 휴가차 들렀다면서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동양계 미국인인 모양이다.

‘날씨가 덥다’느니, ‘이 도시의 인상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얘기가 길어진다. 아까 터미널에서 소모한 시간 탓에 곧 일몰이 다가올 거라서 작별 인사로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고  공원으로 들어섰다.    


Taman Bunga Merdeka

원래는 Coronation Park, 즉 대관식 공원이란 이름으로 1953년 6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입성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라고 한다. 공원 한쪽에 전시하고 있는 소달구지나 기차가 보여서 놀이공원인가 싶었지만 실제로 옥외에 설치한 멜라카 교통 박물관이라고 한다. 황소 두 마리가 이끄는 마차는 지붕을 식물로 덮어서 사람을 운반하는 기능을 하는 말레이시아 운송수단, 국립박물관 전시물과 같은 것다.

프로펠러 동력의 스코틀랜드 항공 트윈 파이어니어 CC Mk1 항공기는 'Lang Rajawali'라는 이름으로 1962년 1월에 새로 설립된 로열 말라야 공군이 획득 한 최초의 항공기라고 한다. 디젤 기관차로 Sungai Lukut 21111 (일본에서 1965년 제작)과 오래된 철도 차량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흥미로워하는 아이들 따라 가족들이 함께 기웃거리고 있다.

Taman Bunga Merdeka


교통편 외에도 1545년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 (St. Francis Xavier)가 처음으로 말라카 (Malacca)에 발을 들여놓은 곳을 나타내는 시티 크로스 (City Cross)는 둥근 프레임 위에 철망을 덮어 씌우고 그 가운데 십자가를 세워 표시하고 있다. 당시에는 그 자리가 배가 닿은 해안이었던 것이다.

포르투갈에 의해 지어졌으나 영국인에 의해 파괴된 말라카 (Malacca)의 성벽 요새 기초 석이 드러난 발굴지역도 표시되어 있다. 그 옆으로 사각기둥 위에 사각뿔을 얹은 모양의 돌 기념비는 1875~6년 숭아이 종족 전쟁에서 영국 측을 위해 사망한 사람들을 기념하는 4면의 비문이 있는 탑이다. 영국 식민지 세금에 반항하는 말레이 족장들과의 전쟁에서 영국 측을 위해 싸우다 사망한 사람들을 위한 기념비인 것이다.

식민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현장이다. 우리나라라면 치우고 말았을까?

역사의 교훈을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할 것으로서 남겨 보존할 유적의 선별은 신중을 거듭해얄 것으로 생각된다. 당장의 경제가치에 급급하면 백년대계 교육에 되돌릴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수 있다.  


네덜란드 광장

아까 오는 버스에서  내려다 본 네덜란드 광장이다.

카 관광의 시작점이자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는곳이다. 관광안내소가 눈에 띄는 곳에 자리했고 네덜란드 통치 시절에 지어진 붉은 건물들이 모여 있다. 다리를 건너면 존커 거리가 시작되는 차이나 타운이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강 양안에 늘어선 2층 건물들이 벽면을 디자인화한 그림, 색조눈길을 사로잡는다.  

말라카 강 운행 크루즈

    

< 바스 티온 미들 버그>

네덜란드 광장 바로 앞 강기슭에 바스 티온 미들 버그 요새가 있다. 시내를 관통하는 강줄기가 바다와 연결되는 포구 초입이다. 바다쪽으로 나아가면 인도양으로 연결하는 말레카 해협이다. 정박한 배들 중에는 2시간 거리, 수마트라에서 온 배들도 있다고 한다.

겨우 이렇게 폭 좁은 강이 동서양의 중요한 무역 거점이 되고 이로 인해 유럽 열강이 각축을 벌이, 결국 아시아 그들의 먹잇감으로 분해되는 역사의 발판이 된 강줄기라는  선뜻 납되지 않는다.

바스 티온 미들 버그 요새는,

1511년 포르투갈이 말레카를 점령하면서 술탄이 지은 요새를 파괴하고 1.4km에 달하는 요새에 8곳의 방어용 성벽을 쌓았.

이후 1641년 포르투갈을 몰아낸 네덜란드는 이 8개의 방어용 성벽에 이름을 붙인 후, 1660년~ 1678년 사이 Middleburg라는 성벽을 구축해 도시 방어를 더욱 강화했다.

이것은 파괴되었었으나, 2006년 말레이시아 문화재청 발굴을 통해 포트 유적이 드러났고 2008년 재건한 것이다.

관광객들은 요새 위로 올라가 대포를 보기도 하고 아직 발굴 중인 요새터의 초석들을 살펴보기도 한다.

바스 티온 미들 버그


말라카 강 크루즈와 야경

바다에서 들어오는 물줄기는 기어가는 구불구불한 뱀 형상으로 말라카 시내를 향해 흘러든다. 이 강따라 운행하는 크루즈는 이 도시의 중요한 관광상품이다. 노을 지는 말라카의 모습을 볼지, 야경을 덧입은 도시의 오랜 숨결을 느껴볼지 잠시 생각하다가 야경 쪽으로 결정한다.

요새를 기웃거리고 있노라니 좁은 강을 오가는 크루즈 승선 관광객들이 보내는 환성이 잦다. 덕분에 즐거워진다.

강가 따라 지어진  2층 살림집들이 연극의 세트처럼 알록달록한 칠을 덧입고 마주보며 도열해 있는데, 집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더하여 잘 짜인 구도의 영상미 가득한 활동사진이 된다.


크루즈 승선 시간은 한참 남아있다. 다시 다리 건너 존커 스트리트를 좀 더 구경하다가, 까사 델리오 인근, 해양박물관 근처 선착장에서 승선한다. 강 상류의 스파이스 가든에서도 탈 수 있다고 한다. 워낙 강폭이 좁다 보니 보트도 작다.

어둠으로 더러 감추고 조명발로 말쑥하게 변신한 야경은 충분히 멋지다. 기대 이상이다.

크루즈는 왕복 약 9km를 40분가량 운행한다. 평일에는 30분 간격이지만, 관광객들이 몰리는 금토일에는 운행 간격이 10~20분 내외로 짧아진다고 한다. 우리나라 한강은 우람하고 장대하지만 이 작은 강폭의 말라카 강은 나름대로 아기자기하게 강 양안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게 특색이다. 어둠이 내린 마을은  조명으로 꼬까옷을 입는다. 인공의 세트가 아니고 현지인의 삶이 영위되는 집들은 배가 이동함에 따라 다양한 파노라마 화면으로 기꺼이 볼거리의 피사체가 되어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는 말하지 않고 포옹만으로 서로의 전부를 읽히우는 연인인 듯,  자신에게 녹아든 긴 역사를 내밀하고 농밀하게 전해준다.

드디어 신시가지의 높은 빌딩이 보이고 배는 유턴한다.

강변 길을 자전거로 이동하는 젊은이들을 보니 부럽다. 어떤 방식으로든 도시를 감상할 방법은 많지만 특히 밤거리는 특별한 이국의 풍취를 맛보기에 좋다고 생각하니 나도 저들처럼 자전거로 여러 마을과 골목길을 두루 돌아보고 싶다.


세인트 프란시스 사비에르 성당도 흰색 조명을 받으며 도열해 있다. 시끄러운 크루즈 운항 소리에 성당의 성스러운 분위기가 깨질까 살짝 미안해진다.

<크루즈에서 본 말레카 강 양안 야경>

아쉬운 점은 워낙 강이 좁아서 반대방향 크주들이 교행 하며 일으키는 물보라가 관광객들 위로 쏟아지는데

물의 악취가 여간 한게 아니다.

낮에도 보았지만 강이란 이름으로 연상되는 푸른색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흙탕물로, 생활하수가 섞였음직다.


어쨌건 낭만적인 밤 풍경을 감상하고 선착장에 이르니 기다리던 대기자들이 배를 타려고 모여든다. 마침 한국인 엄마가 어린 딸들과 함께 배에 오.

강물 뒤집어쓰지 않도록 안쪽 의자에 앉으란 말을 해줄까 하다 그냥 지나친다.

모처럼 멋진 야경을 보게 될 텐데,

더러운 물 뒤집어쓸 걱정 안겨 

방해 싶지 않아서다.

산티아고 성채와 대포

숙소 돌아가는 길, 약 1km 

1511년 포르투갈 침략 함께 들어 온 카톨릭 세인트폴 성당,

1641년 네덜란드가 포르투칼을 몰아내고 점령지 총독의 공관 사용 건물 스타다이스,

다시 1795년 영국네덜란드를 몰아내면서 벌어진 전투의 상흔을 여전히 보여주는 파모사 요새 등

말레카 짓밟 열강들의 교체 역사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적들 거리다.

더하여 근세 일본침략의 자취로,

말레카 근교에 일본 주둔군을 위해 만들어진 위안부 건물이 몇 군데 남아있었다고 한다.


지나는 길, 조명 아래  네덜란드 광장에서부터 도열해 있는 유적들이,

지난한 말레카 500년 역사 속에 명멸해간 이 땅의 사람들을, 깊은 침묵으로 애도하고 있는 듯하여,

자못 비감함마저 몰려오는데....


갑자기 엄청난 볼륨의 음악이 다가온다.

 Trishaw에 실려오는 익숙한 K-pop.


이 도시의 명물인 장식 이동카들이

밤이 되자 전등장식으로  더 현란하게 변신했다.

아까 낮에 어디선가 들리는 한국 아이돌들 노래로 깜짝 놀랐는데, 이동카 장착 음향이었다.

 K-Pop의 위력에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어둔 밤길이 한결 편안해진다. 꽃장식으로 아름다워진 트라이쇼들이 돌면서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우리 말, 우리 노래로 호위 받으며 걷자니,

잠시 전의 무거운 감상은 금새 휘발!


스치는 밤공기, 부드럽기 그지없 

고도의 밤거리 정취, 낭만 가득하니,

베트남, 싱가폴, 말레이지아를 지나는 이번 여정 

마지막 도시 말레카 첫밤은

만점짜리 여행지가 되간다.

밤의 말레카를 누비는 트라이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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