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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ee May 15. 2020

#32.말레카 6: 중국인과 말레카의 오랜 교유

여정의 마지마 일정 차이나 타운의 캄풍 클링 모스크와 쳉 훈 텡 사원

2018년 2월 8일:

말레카를 떠나는 날이자, 16박 17일 여정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가방 정리는 어젯밤에 거의 마쳤다.

오후 7시 인근 마코타 병원에서 출발하는 공항행 버스를 탈 예정이다.


밤 늦도록 야경 보러 돌아다니다 들어와, 짐 정리까지 하고 나니 취침이 늦어졌다.

느지막이 기상을 하고 창밖을 내다본다.

하늘은 맑고 쾌청하다.

호텔 옆으로 한산한 주택가 낮은 집들이 일렬로 줄지어 서있고 그 끝에 넓은 잔디 운동장이 있다.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체육활동 중이다.

마침 옆집 주부가 나와 물뿌리개로 정성스럽게 마당의 화분에 물을 주고 들어간다.

건너편 집 담장 밖에 선 키 큰 나무에서는 관공서 로고 붙은 트럭를 몰고 온 인부들이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따서 차에 싣고 있다.

거대한 나무는 집 안 마당으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데, 뿌리 위치로 담장 안팎 경계가,

소유의 엄연한 근거인 추측케 한다.

고즈넉한 이 호텔 주변의 말레카 동네 엿보기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호텔은 리뷰가 말해주듯 조용하고 깔끔하고 작은 요구 사항에도 빠른 대처 등이 만족스럽다.

소리들이 완벽히 차단되어서 다른 숙박객이 있나 없나 모를 정도인데 층마다 설치된 음수대에 나가보면 다른 이들도 나와서 물을 받아가긴 한다.

이제는 그새 냉장고에 쌓여있는 음식물들을 없애야 한다.

두리안을 살랬더니 큰 걸로만 판다기에 포기하고 산 것이 두리안 아이스크림.

근데 이게 유지방도 높고 꽤나 먹을만해서 근처 쇼핑몰에서 2번째 사다 먹고 조금 남았다.

한 개 더 살려고 갔더니 그새 품절!

과일 몇 가지와 케이크를 아침 대용으로 먹고 나선다.

 

가방을 리셉션에 맡기고 길을 나선다.

호텔 앞 동네 고샅길로 계속 가보고 싶지만

오늘은 존커 스트리트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첫날 야경 본 이후로 가보지 않은 쪽이다.

말레카 일정을 총정리하듯 그새 하루에도 몇 번 오갔던 거리, 잘란 코타를 죽 훑으며 네덜란드 광장으로 가서 다리 건너 존커 워크에 들어선다.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

말레카 강을 사이에 두고, 네덜란드 광장 반대편에 형성된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는 말레카의 차이나타운이다. 네덜란드 지배 동안, 네덜란드 인의 하인 및 부하 직원은 가까운 히런 거리(Heeren Street)에 주로 살았다. 네덜란드 인이 떠나자, 그곳은 부유층의 거리가 되었다.

페라나칸이 존커 워크에서 사업하거나 거주하면서 그들 특유의 문화를 형성하였다.

메인 도로 쪽 양옆으로 17세기로 거슬러가는 오래된 건물들이 이어진다.

바바뇨냐 전통 박물관, 정화 문화 박물관, 쳉 훈 텡 사원, 항 제밧 능묘, 항 카스투리 능묘, 캄풍 훌루 모스크, 캄풍 클링 모스크, 스리 포야타 비나야가르 무르티, 해협 중국 이민자 보석 박물관, 타밀 감리 교회 등의 명소가 있다.

오래된 불교, 이슬람, 힌두교 사원들도 이 거리에 사이좋게 근접해 있다.

골동품, 직물, 음식, 수공예품 및 기념품 상점들이 도열해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로 분주하다.

또한,

존커 스트리트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거리인 하모니 스트리트는 예술가의 다양한 작품이 걸려 있는 갤러리들이 있다.

    

캄풍 클링 모스크(Kampung Kling Mosque)

주택가에 이어진 나지막한 흰색의 벽과 좁은 입구로, 여염집처럼 보이니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모스크 입구에서 주저하며 얼굴만 들이밀어보니 관광을 하다 지친 사람들이 예배실 바깥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모두들 피곤한지, 의자에 기대앉아 마당 안 분수 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히잡 쓴 무슬림 여성들이 많고 유럽인들도 바삐 셔터를 눌러댄다.

유적 방문이라기보다 그늘에서 쉴 요량으로 들린 것 같은 분위기다.

모스크의 바깥 모습: 탑 모양의 흰색 미나레트
모스크 내부 모습
모스크 기도실 입구 몸을 씻는 곳

모스크는 1748년 인도 무슬림 상인들이 지었다. 당시의 사원은 목조 건물로 건축되었으나 1872년 자바풍 삼중 벽돌로 재건축되었다. 1999년에 새 단장하여, 현재는 모스크 박물관 용도로 사용 중이다.

말라카의 전통적인 사원 중 하나이며 최초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첨탑, 좌석, 풀, 입구는 본관과 동시에 건축되었다.

클링 모스크란 이름은 인도 상인들이 살고 있던 클링 빌리지 (Kling Village)에서 따왔다.

사원의 특징은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된 점이다.

녹색지붕은 심한 경사의 각진 사각뿔 모양인데 수마트라 양식으로서의 보존가치를 지닌다.

도로 쪽 흰색 담장에 대비되어 녹색이 두드러진다.

내부에는 특이한 잉글랜드 및 포트투갈식 타일 짙푸른 색을 띠고 있다.

메인 홀에는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주두에 금색의 소용돌이를 만들었고 소용돌이 사이를 아칸서스 잎모양 장식으로 연결하여 코린트 양식을 살짝 가미한 기둥들이 높지 않은 천정을 떠받치고 있다.      

빅토리아 양식이라는 샹들리에가 천정 한가운데 있고, 목조로 만든 힌두 제단과 중국식 나무 조각에 무어인들의 철제 램프 등이 있다.

길가 담벼락 쪽에 붙어있는 흰색의 미나레트는 힌두 양식의 영향을 받아, 기존의 길고 가느다란 형태가 아닌, 굵은 탑 형태인 것도 특징이다.

마당에는 단지 모양 혹은 비석 모양의 무슬림 묘지들이 있다. 마당 중앙에 푸른 타일 수조의 분수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 손발을 씻는 곳인데 여성은 이곳에서 씻을 수 없.

손에 물을 적시며 더위를 다소나마 식히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한낮의 무더위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다른 관광객들처럼 나도 한참 동안 의자에 앉아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를 에어컨의 냉기로 몸을 식히다가 일어섰다.   

모스크 입구와 모스크 안의 묘

  

쳉훈텡 사원(Cheng Hoon Teng Temple), 청운정(靑云亭)

바로 이웃해서 중국인 사원이 나타난다. 규모가 월등히 크고 이슬람 사원과는 건축물의 기조 색감이 정말 다르다.

주로 검은색 바탕에 빨강과 금색으로 치장한 중심 사원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안에서 향을 피우며 제를 지내는 모양이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이 사원은 명나라 대항해를 이끈 정화 장군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원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2003년 유네스코의 보호 건물로 지정된 이 곳의 넓이는 약 4,600㎡(약 1,400평)에 달하며, 중국 사원의 가장 오래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원의 정면


지정학적으로나 산물의 교역 중심지로서 1406년에 이미 말레카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정화 함대는 당초부터 말레카 해협에 건국된 말레카를 인도양 항해를 위한 근거지로서 중시하여 말레카 술탄을 우대하였다. 그리고 명나라 장군 정화의 대원정 때 중요한 기지로 사용하였다.


말레카의 입장에서도 동남아의 해상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해상에서의 안전이 보장될 필요가 있었는데 정화 함대의 보호 하에 성장하여 중국 함대의 항해가 7회 차를 마친 이후 관계가 단절된 뒤에도 동서교역의 중계항으로서 번영을 누렸음을 기리며 세운 사원이다.

명나라에서 자재를 가져와 1646년에 세웠으며, 1704년 중앙 건물을 세웠고 1801년 추가적인 건물들이 들어섰다. 정화 장군을 기념하는 비석도 있다. 도자기와 유리로 장식된 화려한 지붕과 초기 중국양식의 그림이 곳곳에 있고 정교하게 조각된 목조부와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 특징인 1640년대 중국 사원으로 복원을 거쳤다.      

지붕과 기둥에 초기 중국 양식의 그림과 조각이 도자기와 유리로 장식되어 있으며 금색과 붉은색 계열의 채색이 돋보인다.

당시 중요한 중국 사원은 값비싼 도자기를 깨서 모자이크처럼 장식했다. 최근 신축한 절에는 부처상이 있지만 과거 불교의 탄압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불상을 모시지 않았다고 한다. 지붕 위의 용은 절을 지키는 신수인데, 그중 여의주를 물고 있지 않은 하나는 암컷이라고 한다.      

바다 건너온 화교들이 세운 사원답게 뱃사람들이 수호신으로 여기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을 신으로 모시고 있지만 여느 동남아 중국 사원과 마찬가지로 유교(공자), 불교(부처), 도교(관우)가 혼합된 형태이다. 또한 4대 조상을 모시는 곳이기도 하다.

사당에 모시는 위패는 자신의 직계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이룬 조상을 모신다고 한다.

돈 많은 조상, 유명한 조상, 명예로운 조상, 존경하는 조상을 내 방식대로 모시는데, 이들을 모심에 따라 자신들도 그렇게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흔히 하듯, 가짜 돈과 향을 태우면서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정화(1371년~ 1434년) 장군은 :

중국 명나라의 장군(將軍)이다. 영락제의 명에 따라 남해에 일곱 차례 대원정을 했다.

원래 성씨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중국식 한자인 마(馬)씨이고 이름은 삼보(三保)였다. 윈난성 출신으로 마 씨는 이슬람의 후손임을 나타내 주는 성씨이다.그의 선조는 칭기즈칸의 중앙아시아 원정 때 몽골에 귀순, 원나라 세조(世祖) 쿠빌라이 때 윈난성 개발에 공을 세운 색목인 정치가 사이드 아잘 샴스 앗딘의 후손이다. (색목인: 원나라 때 위구르, 탕구트, 사라센인 등 몽골인 이외의 비 중국 문화 민족으로 서방계 제국인, 즉 서역인의 일괄 호칭)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한 후 원나라의 치하의 윈난성을 공격할 때, 소년이었던 정화는 붙잡혀 거세된 뒤 환관으로 당시 연왕(燕王)에게 헌상되었다. 주원장 사후 영락제의 제위 찬탈 시 공을 세워 영락제로부터 정(鄭) 씨란 성을 하사 받고 환관의 최고위직인 태감이 되었다.정화가 이슬람교도 출신이었던 점이 후에 대원정을 대비한 영락제가 지휘관 발탁을 염두에 둔 이유라고 한다.  
정화의 함대는 동남아시아,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까지 항해하였고, 가장 멀리는 아프리카 동해안의 말린디(현재의 케냐 말린디)까지 진출했다. 였다. 그가 지휘한 함대에서 가장 큰 배인 보선(寶船)은 총길이가 약 137미터, 폭 약 56미터에 이르는 대형 선박이었고 동행한 함선은 62척에 승무원은 2만 7,800명이 탑승했다.
무엇보다도 이 대원정은 유럽의 대항해보다 70년이나 앞선 대항해로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다.정화가 머물렀던 여러 港에서도 평판은 높아 자바, 수마트라, 태국에서는 삼보 묘가 건립되어 그에 대한 제사가 치러지기도 한다.
1405년 6월 시작한 대항해는 1433년 7월 귀국한 7차 원정까지였고 귀국한 지 얼마 후 정화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대항해에 관한 정화의 공식 기록은 다시 대항해를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한 관료들이 감추어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화 장군 석상

관광객 가득한 존 커 스트리트


첫날밤에 야시장을 보려고 잠깐 들렀던 존 커 스트리트를 낮에 와보니 거리를 가로 질러 가득히 매단 종이 등이 이채롭다.

신년 맞이 장식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인 거리다운 느낌이 물씬 풍긴다.

여기저기 막 도착한 관광객들이 차량에서 내려 떼 지어 거리로 나서고 나도 그들 속에 섞여 거리를 걸어본다.

이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도 어떤 집은 고요 속에 잠겼는가 하면, 골목 구석구석의 음식점과 카페에는 각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인들이 앉아 여행을 음미하고 있다.

말레카는 이제 술탄국 시절보다도 훨씬 더 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말레카 술탄 국의 이름으로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몇 군데 갤러리와 상점을 기웃거리다 나도 음식점을 찾아보기로 한다.

마땅히 주문할 메뉴가 생각나지 않아서 사람 많이 들어앉은 국숫집으로 향한다.

거리를 향해 만들어진 조리대에서 일하는 분들이 모두 나이 지긋한 세명의 노인(혹은 중년 후반기)들이다.

더운 날이니 일하는 이마 땀 송골송골 맺힌다.

영어가 안 되니 주문은 다른 분을 통해서 받는다.

준비된 끓는 국물 주문 곧바로 음식을 대령다. 더운 국수를 먹으니 시원한 음료도 필요하다. 과일주스를 마저 마시고 가게를 나선다. 한국이나 이곳이나 오로지 한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하며 늙어지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간다.

많은 사람과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늙은 부부는 시종일관 부드럽고 겸손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고 배웅한다. 말은 안 통해도 나가는 손님 뒤로 보내는 시선이 말할 수 없이 온화하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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