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쪽으로 벽면이 나있는 성당 벽은 너무나 평범해서 자칫 지나칠 뻔 했다. 종탑도 단순하다.
유럽의 성당이나 종탑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더 프란체스코 수도원다운 겸허, 엄격, 소박함이 느껴진다.
방금 지나쳐 온 개선문이나 쌍둥이 문들보다는 천 이백여 년 뒤에 지어진 것이라 해도, 칠백년 역사 또한 대단한 연륜이다.
성당은 이전의 문화 유적지에 세워졌으며, 아시시의 성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게 헌정된 성당과 수도원이다.
프란체스코 공동체는 풀라에서 13 세기 초 처음으로 기록되었다.
성당은 1314년에 고딕 양식의 단순한 건축물로 지어졌다.
돌의 걸작이란 평가를 얻는 '잘린 석재 블록 벽'은 건축 장인의 훌륭한 솜씨를 나타낸다.
성당의 폭은 12.50m, 높이는 16m, 길이는 45m이다.
외관은 그리스 대리석으로 만든 입구와 장미 창을 살펴볼 만하다.
내부는 아치가 있는 웅장한 고딕 양식 그리고 가장 잘 알려진 목재 제단화가 있다.
이 걸작은 순수한 고딕 양식으로 15 세기 나무로 만든 것이다.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2 층 건물, 수도원과 붙어있다.
Castropola 원형도로 상의 성당 벽
심플한 성당의 고딕 양식 내부와 석재 벽면
고딕양식의 아치와 15세기 제작된 목재 제단화
성당 문에서 바라 본 앞뜰
성당 입구의 경사 진 골목길
성당 안내 판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
2층으로 된 수도원과 성당의 종탑
수도원 한 방의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
모자이크를 특별 보존하는 모습
수도원 회랑 벽에 걸린 오래된 기둥머리
수도원에는 오래 된 건축물의 일부와 몇 가지 유물들을 복도와 입구에 전시하고 있다.
갈길 바빠 일일이 들여다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구도시의 중심인 요새 성으로 향한다. 길을 빙빙 돌아 올라가노라면 풀라 시가지와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요새성(Fortress castle) 오르는 길
요새에 올라 사방을 돌면서 풀라를 내려다 볼수 있다.
바다 쪽 조선소, 항구가 그 너머에는 기찻길이 있다. 아레나와 그 옆 성 안토니오 교회가 있다.
사진의 중앙에 종탑만 보이는 곳은 성 니콜라스 정교회이다.
풀라의 구시가지는 도보로 모두 둘러볼 수 있는 거리이다.
바다 왼쪽에 조선소가 있다.
오른쪽 선착장 너머 기찻길
아레나와 성 안토니오교회 종탑
종탑만 보이는 성 니콜라스 정교회
성 니콜라스 정교회( Pravoslavna Crkva Sv. Nikole)
6 세기 후반에 지어진이 교회는 성 니콜라스와 성모승천에 봉헌되었다.
1200 년경에 완전히 재건 된 후 1583년 풀라의 그리스 정교회 종교 단체에 배정되었다.
현재는 세르비아 정교회에 속한다.
성 니콜라스 정교회(한벽이 다각형 처리된 라벤나 양식)
Fortress 성
상단 원형 도로로 끝까지 오르면 성곽이 나타난다.
1630년에 지어진 4 개의 요새가 있는 별 모양의 성곽이 풀라 구시가지의 중앙 언덕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
풀라의 가장 높은 언덕, 해발 32.4m에 자리한다.
당시 이곳을 통치하던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에 그들은 풀라가 그들의 다른 도시와 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북 아드리아 해의 해상 무역에 큰 의미가 있는 지역으로 여겼다. 따라서 프랑스군의 도움을 받아 요새를 세웠고 프랑스 군사 건축가 앙투안 드 빌 (Antoine de Ville)에 의해 건축되었다.
이후 합스부르크 지배 당시에는 군사적 요새로 사용되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곳 히스트리안 언덕 요새는 로마 이전과 로마 시대의 초기 요새로 추정한다.
주로 방어 목적으로 지어졌으며 로마 시대에는 작은 군사 수비대가 이곳에 배치되었다.
오늘날 성에는 이스트리아 역사 및 해양 박물관이 있다.
요새 성. 상단 중앙 보라색 화살표가 쌍둥이 문(풀라 관광청사진 )
사진 오른쪽 반원형 터가 있는 곳이 소로마원형극장의 자리이다. 심하게 파손되어서 원형을 짐작하기가 어려운 편이고 커다란 돌더미가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다. 아마 옛터를 복원하는 사업중인 것으로 보인다. 동네 아이들이 돌터를 넘나들며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 상단 오른쪽 건물이 이스트리아 고고학 박물관이다.
이스트리아 고고학 박물관은:
1802년 아우구스투스 사원에서 석재 기념비를 모아서 Marshal Marmont는 풀라에서 박물관 컬렉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Nesactium에서 발견한 석재, 세라믹 및 금속 물체들은 1902년 풀라에서 시립 박물관 (Museo civico)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
1930년에 박물관 홀이 처음으로 방문객들에게 문을 열었다.
1968년에는 1층 객실과 복도에 개축 된 전시실이 개장되었으며,
1973년 1층에는 선사 시대 전시실, 2층에는 골동품, 후기 골동품 및 중세 전시물이 전시되었다.
이스트리아 고고학 박물관의 전시실은 이 지역의 고고학 유적지 (예전 동굴, 언덕길 및 묘지, 고대 상업 단지, 건물 및 묘지, 초기 기독교 및 비잔틴 시대의 성스러운 건물, 바바리아 침략 및 이스트리아의 슬라브 정착지)들이 새로 발견 될 때마다 보완해가고 있다.
소로마 극장의 잔해들
소로마 극장 보수를 위해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모습
극장 보수 공사 중으로 보임
성안으로 들어가는 문. 뜰에는 대포가 있음
아마도 해자?
성 마리아 포모사 예배당
언덕에서 내려와 바닷가쪽으로 가다보면 고풍스런 모습의 작은 성당을 만난다.
16 세기에 철거 된 큰 베네딕토 회 수도원의 일부로 6 세기에 세워진 두 예배당 중 하나이다.
바닥과 벽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었으며, 일부는 현재 Istria의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
라벤나 교회 스타일로 지어졌으며 차이점은 벽돌 대신 돌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크기, 건축 방법 및 보존 상태가 좋기 때문에 채플은 당시의 탁월한 건축 걸작품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 라벤나 양식이란 성당 앞 부분이 다각형으로 튀어 나와있는 형태. 성 니콜라스 성당도 같은 양식)
예배당 옆에는 유적 보존 작업 인듯한 공사 현장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인근 공원에서 쉬면서 여기저기 뒹구는 돌덩이들을 들여다보니 오래 된 건축물의 일부거나 기둥머리의 잘린 석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