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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8. 풀라4: 아우구스투스 신전과 성모승천 대성당

로마 초대 황제를 기리는 신전 그리고 포럼, 성당

by yo Lee

포럼 광장

여행자들이 맨 먼저 들르는 광장이고 관광의 중심이 되는 장소이다. 어젯밤에 이어 두 번째로 왔다. 넓지 않은 풀라의 관광지는 이곳에서 다 연결된다.

BC 1 세기 포럼 광장이 건설될 때 더 넓은 지역 확보를 위해 바닷가 해안이 제방 되었다.

중앙 광장은 도시의 서쪽 해안을 따라 언덕 기슭에 위치하며 바다의 포구와 가깝다.

고대 및 중세 풀라 시절, 항로 따라 몰려든 상인들, 관리, 도시를 오가는 모든 통행인들의 관문이 바로 이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포럼은 도시 생활의 핵심으로서, 종교, 행정, 사법 및 경제의 중심지였다.

포럼의 북쪽에는 두 개의 쌍둥이 사원과 중앙 사원이 있었다.

그중 아우구스투스 사원만이 완전히 보존되었으며, 두 번째 사원은 13 세기에 지어진 공동 궁전의 뒷벽만 보인다.

포럼광장
포럼광장
(왼쪽) 아우구스투스 신전과 시청사(공공궁전)

시청 (공공 궁전)

풀라가 자유 도시 체제였을 때 포럼에는 지방 자치 정부가 자리한 궁전이 세워졌다.

베네치아 통치 기간 동안 공작과 의회들의 집무처였다.

10 ~ 16 세기에 걸쳐 추가로 로마네스크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보수하였다.

16 세기에 복원된 외관 비문을 보면 1296년의 공공건물 건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청 건물의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동쪽 측벽에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얽혀있는 초기 단계의 공동 궁전 양식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 기둥과 바로크식 개구부 창으로 둘러싸인 모서리에 있는 Telamon과 Siren의 조각품은 공동 궁전 외관의 마지막 변경 부분이다.

현재 이 건물은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Charles-Louis Clerisseau 1757년작 그림속 공공 궁전의 모습
현재의 시청 건물
시청 건물의 동쪽 측면
시청 아치 밑에서 바라 본 광장
시청사 주랑

아우구스투스 신전

포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로마시대 영화에서 보던 건축양식, 아우구스투스 신전이다.

원래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신전들
쌍동이던 건축물은 지금 홀로 남아있다.
포화로 피폐해진 신전 정면
2차 대전의 상처로 얼룩진 신전의 옆 모습

이 신전은 풀라의 옛 로마 포럼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로, 기원전 2년에서 서기 14년 사이에 처음 건축되었다. 로마 여신과 아우구스투스 황제(BC 63~ AD 14)에게 헌정되었다.

로마 신전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보여주며, 동시대의 다른 유럽 신전과 유사한 모습이다.

입구 위쪽의 정교한 프리즈에 묘사되어 있는 꼬인 아칸서스 넝쿨 순, 과일과 새들로 로마 신전 건축 양식의 전형적인 코린트식 기둥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성당으로 개조되었다가 나중에는 한동안 곡식 창고로 이용되기도 했다.

신전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공습으로 인해 파괴되었으나 정면 4개, 측면 2개의 코린트식 기둥의 위용은 다행히 전화를 피해 남아있고

뒷부분은 후에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구조물은 세 개의 건물 중 하나였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가장 큰 신전은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뒷벽만 보존된 다른 쌍둥이 사원은 동시대에 같은 양식으로 건축된 것으로 여겨지며 다이애나 사원이라고 불린다. 현재는 고대 석조 및 청동 조각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고고학 박물관의 분관으로 사용된다.

아우구스투스의 성서 속 등장

신전의 주인공 아우구스투스는 예수의 탄생과 함께 성서에 언급된다.

학자들은 예수가 기원전 6~4년에 태어났다고 추정하므로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태어난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호구조사령을 발한 사람이 바로 이 로마 황제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와 로마가 임명한 유대 통치자 헤로데와는 여러 문제로 얽히는 바가 많았다.

또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당시의 화폐, 데나리온에 새겨진 황제의 얼굴은 아우구스투스 혹은 그의 후계자 티베리우스(기원전 42~기원후 37)라고 한다.

그래서 " 가이사르의 것은 가이사르에게" 라던 예수님의 말씀 속 '가이사르'가 아우구스투스이기도 하다.

기원전 18년경에 발행된 데나리우스. 앞면에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CAESAR AVGVSTVS), 뒷면에는 신성한 율리우스(DIVVS IVLIV[S])라고 새겨져 있다.

아무튼 이 신전은 예수 탄생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니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이 자리에서 용케 지켜온 세월의 장구함이 놀랍다.

데나리온에 새겨진 아우구스투스


Pax Romana와 아우구스투스의 제도

Pax Romana는 로마 제국이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을 최소화하면서 오랜 평화를 누렸던, 대략 기원전 27년에서 180년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시기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의 평화(Pax Augusta)’로 불리기도 한다.

레피두스 유배에 이어, 개선문의 사연처럼 악티움 해전 이후 안토니우스 자살로 2차 삼두정치는 끝이 났다.

로마 공화국은 이제 로마제국이 되었고 그는 초대 황제가 되었다. 재임 시절 로마의 영토를 2배나 확장한 위업 외에도 재임 이후 200여 년간 지속된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이끌어냈다.

1987년 처음 갔던 로마에서 현지 가이드가 ‘Pax Romana’가 무슨 내용인지를 묻는 질문에 우리 일행 아무도 답하지 못했던 일이 가끔 떠오른다.

서기 14년 그가 죽은 직후, 원로원과 민회는 아우구스투스를 신으로 선포하여 로마인들의 숭배를 받았다. 이후 로마 황제들은 그의 황제 명인 ‘아우구스투스’와 ‘카이사르’를 따서 이름으로 썼으며 슬라브 인들의 황제 ‘짜르’는 여기서 유래한 명칭이다. 또한 8월(August)은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서 7월(July)은 율리우스(Julius) 카이사르로부터, 그를 기념하기 위해 따온 것이다.

아우구스투스는 특히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중에서 선거부정 단속법과 출산 장려책이 주목을 끈다. 결혼을 의무화했고 부부가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을 법으로 금했으며, 3명 이상의 자식을 낳는 부부들에게 혜택을 줬고 38세 이상 남성으로 비혼 상태인 경우 추가로 세금을 부과했다. 유산 상속도 못하게 했다는 항목이 있다.

역사는 돌고 돌며 아울러 사회현상도 함께 돈다는 것을 체감한다.


성모승천 대성당 ( Katedrala uznesenja Blažene Djevice Marije )

Flavia Street에서 포럼으로 연결되는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Pula 대성당이 있다.

성당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받던 시기에 (4 세기) 모이던 장소에 세워졌고 5 세기에 오늘날의 큰 건물로 세워졌다. 내부는 두 줄의 열로 나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제단은 북쪽에 있었으며 성직자를 위한 의자가 있는 반원형 연단으로 정했다.

제단 앞, 뒤 및 제단 주위에는 5 ~ 6 세기 모자이크 바닥이 현재 보존되어 있다.

성당의 장식 비용을 지불 한 신자들의 기념 비문도 있다.

성당은 1242 년 화재로 인해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본당의 상부 창문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지어졌지만, 측면 창문은 전형적인 고딕 양식이다.

16 세기 초에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의 외관이 세워졌다.

성당 앞 종탑은 1671-1707년에 세워졌다. 아레나의 석재들이 이 종탑 건설에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심지어 개인주택 건설에도 이 석재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풀라를 떠나며

바쁜 걸음으로 제대로 잘 볼 시간이 없이 여기저기 점만 찍은 것 같은 일정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유명하다는 아이스크림 집주인이 한국인임을 알아맞힌다.

Korean을 맞추긴 하는데 South 인지 North 인지를 꼭 같이 묻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여행 오는 북한인이 있나?' 속으로 의아해하는데 그는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다며 이런저런 알은체를 한다.

마지막으로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물건 값 흥정이 조심스러워 해면으로 만든 행주와 액세서리 몇 개를 샀다. 사고 싶은 것은 많지만 여행 초반에 가방을 불리면 안 되니, 자제한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젊은 가게 주인이 아레나 모형품을 집어 들더니 공짜로 드릴 테니 가지란다.

별로 많이 산 것도 아니어서 괜찮다고 돌아서는 우리 뒤를 재빨리 쫓아 나와서 기어이 건넨다.

풀라의 관광 상품 가게엔 거절하는데도 굳이 뒤쫓아와 쥐어주는 주인이 있었다!

햇살에 부서지는 빛을 뿜어내는 원형경기장을 마지막으로 일견하고 부지런히 숙소에 돌아왔다.

마당에 나와 배웅을 해주시는 여주인과 그분의 어머님을 모시고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언젠가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을 셔터에 꾹꾹 눌러 담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밤의 포럼 페스티벌 사진(풀라 관광청)

풀라 조선소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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