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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ee Jul 22. 2020

크로#16.트로기르1:성 로렌스성당, 이바나 파블로광장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트로기르의 다양한 건축양식

트로기르 가는 길의  아드리아 연안 풍경

자다르 버스터미널에서 트로기르를 향해 출발한다.

10시발 '스플리트행' 버스는 약 120km를 3시간 동안 달려 12시 50분, 트로기르에 내려주었다.

오는 도중

아드리아해 곡선라 늘어서 있던 마을은,

붉은 지붕 얹고 다소곳이 늦봄 햇살 아래 엎드려있었다. 

바다와 하늘의 같은 듯 다른 푸르름 한층 깊어 보이게 만드는 어선과 

요트의 흰 선체들,

버스 안에서도 손에 닿을 듯 까이서 출렁이는 맑디맑은 바닷물

트로기르에 대한 기대감 한 높아졌다.


< 아드리아해 연안의 마을들 >

마을 주택은 바덧가에 가까이 지어져있다.
버스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드리아해의 맑은 물결
요트와 어선이 정박된 해안
마을과 바다의 고도차가 거의 없어보인다


드디어 트로기르!

아까 자다르 터미널에서 같은 버스에 탑승한 한국인 홀로 여행자와 내일 스플리트에서 만나기로 거듭 약속하고 헤어진다.

내쳐 스플리트로 향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다 돌아서니,  앞에 트로기르 성이 보인다.

20m 폭 운하 위에 설치된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성안 입성이다.

숙소가 있는 치오보 섬으로 나있는 지름길 미처 몰라서, 성 북문로 들어가서 우회한 것이다.

울툭불툭한 돌이 깔린 보도 위로 끌리는 

여행 가방의 진동과 소리가 

유독 요란하고, 힘도 든다

많은 관광객들과 좁은 골목길에서 부딪치는 것도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쑥 맞닥트린 성안 풍경 가슴 게한다

넘치는 관광객만 아니라면 마치 중세의 어느 시점으로 순간이동한 느낌이다.

망설이다 하루 일정으로  여정 추가하길 참 잘했다.

중앙 섬이 트로기르 (트로기르 관광청 ) 왼쪽이 치오보 섬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트로기르

트로기르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크로아티아 총 여섯 개의 세계문화유산(2016년 4월 당시)중 하나이며, 유일하게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서 1997년에 지정된 곳이다.


기원전 3세기 비스 섬에서 온 그리스인이 건설한 식민도시로서 무역 정착지로 건설된 이 도시는 요새화가 진행되었으며 로마 시민의 도시 시대를 거쳐,

9세기 후반 비잔티움 제국 지배,

12세기 트로기르 로마 가톨릭 교회 교구 설치,

1107년부터는 헝가리 지배,

1420년부터 베네치아 공화국,

그 후 베네치아 공화국 소멸로 1797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군주국 지배,

1806년부터 1814년까지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끌던 프랑스 지배,

다시 오스트리아에 반환되었다가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소멸로 이탈리아에 편입,

1944년  티토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부대가 트로기르를 점령하면서 유고슬라비아에 편입되었다는 지난한 역사를 지녔다.

현재의 모습은 주로  베네치아 공국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15세기 이후 다시 건축한 모습으로 중유럽권에서도 그 보존상태가 우수한 편에 속한다고 한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복합양식으로 지어진 교회, 탑, 궁전, 요새, 주거지 등이 성 안에 밀집되어 있다.     

트로기르 관광청 사이트, http://www.trogir.hr/GradTrogir에서 발췌한 사진들은 (트로기르)로 표기한다.


예약 숙소가 있는 치오보 섬으로

트로기르 성은 버스 정류장이 있는 본토와 예약 숙소가 있는 치오보 섬 사이의 작은 섬에 위치한다.

두 번째 다리를 건너자마자 삼거리에 여행안내소가 있다. 출력해 온 숙소의 지도를 보여주니 작은 골목길을 따라 주욱 올라가라고 알려준다.

이 섬은 좁은 골목길들로 주택들이 연결되어 있다. 낮은 돌담들과 성근 철문으로 지어진 대문들, 그리고 의자가 놓여있는 정원 풍경이 길을 지나는 외부인에게 잘 들여다보인다.

굳이 격리된 담이라기보다 경계선 정도라고 해얄지. 그리고 모르면 지나칠 만큼 작은 출입구에 간판도 없는 베이커리가 골목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외인 출입번한 동네는 아닌 듯하다.

물론 숙소는 사이트에 많이 나와있긴 하다.

특이한 핑크빛 벽을 가진 목적 장소는 경사면에 지어져 있어 동네 골목길에서는 안보였었다.

발코니에 나와 보니, 아래로는 옆집의 텃밭, 청소년들이 공놀이 중인 공터, 건너편 층층이 계단 지어 들어선 현지인들의 집은 물론 건너편 본토까지 두루 둘러볼 수 있는, '전망  트인 집'이다.

크로아티아 본토와 치오보 섬 사이를 흐르는 바다 너머로는 디나르 알프스의 회색빛 거친 석회암 줄기가 웅장하게 옆으로 누워있다.

아드리아해와 평행으로 뻗어있는 산맥의 등줄기, 그 옆 날개가 바다를 향해 가파르게 흘러내린 사이사이로 달마티안 도시들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가방을 한쪽에 밀어 두고 서둘러 트로기르 성을 향한다.     

트로기르에서 치오보 섬으로 건너는 다리
트로기르에서 치오보 섬으로 건너는 다리
치오보에서 본 바다
치오보에서 바라 본 본토 트로기르
숙소에서 바라본 본토
숙소에서 바라본 본토
동네의 집 고치는 인부들
숙소  베란다
숙소 동네 담장
투명한 바닷속에 파래가 가득
숙소 동네
해 저무는 트로기르
숙소 옆 공터

트로기르 성

백색의 석회암으로 지어진 작고 아기자기한 성은 여전히 여러 나라 관광객들로 붐비는 중이다.

좁은 골목을 가로지르는 2층 건물 밑을 뚫어 만든 좁은 통로가 로빈의 골목을 연상시키지만, 경사가 없으니 편안함이 더해진다.     

트로기르는 헬레니즘 양식과 로마 양식의 건물이 있는 도시 배치 계획으로 건축된 중세 도시의 완벽한 사례라고 한다.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많은 건물들이 이례적으로 보완을 최소화하며 옛 도시 모습을 보존해 오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조금이라도 원래 모습 가까운 것을 보려고 인터넷 지도의 오래된 스트리트 뷰를 들여다보는 별난 취미를 가진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보수가 덜한 모습이란 점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무너져 가는 유적에 더 감동하는 것은 나만의 경우만은 아닐 것!

길게는 700년 넘은 역사를 지켜냈을 법한 건물, 요새, 성당들의 돌벽과 검은 이끼 낀 석조물들이 보수가 왕성하게 진행된 말끔한 다른 지역것들과는 깊이가 달라보인다.

트로기르 리바
트로기르 리바
치오보 섬에서 바라본 본토와 중간 왼쪽의 트로기르 섬
치오보 섬에서 바라본 본토
리바에서 바라본 치오보 섬

우리는 남쪽 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석조 문 위에 ‘UNESCO’라고 쓰여 있다.      

성 안 작은 골목에서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중세 풍경을 만난다.

이바나 파블라 광장이라는 중앙광장에 이르니 성 로렌스 성당과 종탑이 한눈에 들어오고 광장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그들의 가이드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가며 설명을 듣느라 부산하다. 여기를 중심으로 트로기르 명소들인 로렌스 대성당과 시청, 시계탑, 로지 그리고 시피코 궁전 등이 4각 광장 변을 형성하 늘어서 있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남문(1593년 건축)
이바나 파블라 광장(트로기르)
 이바나 파블라 광장의 로렌스 성당과 시청 건물(트로기르)
 이바나 파블라 광장의 시청과 시계탑과  로지아(트로기르)

성 로렌스(Crkva Sv. Lovere) 대성당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신전을 사라센(Saracen)이 파괴한 터 위에다 지었다.

성 로브레(225~258년:혹은 로렌스)는 로마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순교한 기독교 성인이다.  

이 성당은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을 자랑하는 최고의 건축물로 크로아티아를 통틀어 가장 정교한 건물로 꼽힌다. 1200년경에 건설되기 시작해서 16세기 말(혹은 17세기)에 완성되는 바람에 종탑은 층별로 건축양식이 다르다.

47m 높이의 종탑 1층은 초기 고딕, 2층은 베네치아식 고딕, 3층은 17세기 초의 후기 르네상스 양식이다. 종탑  꼭대기 4각뿔에는 4대 복음 저자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성인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성당에는 통로가 세 군데에 있는데, 각 통로의 마지막은 애프스(apse)로 끝나며, 서쪽 끝에 있는 출입구를 지나면 세례당이 있다.

사자 조각 위에 몸을 가리고 있는 아담과 이브의 동상은 이름 높은 트로기르 태생 조각가 라도반의 1240년 작품으로 아담과 이브의 조각은 달마티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누드여야 하는 아담과 이브 조각의 공식적 첫 데뷔라고나 할까...

암튼 이것은 미켈란제로보다 무려 300년 앞선 작품이라고.

성당 정문 조각은 라도반과 그의 동료들의 정교함과 섬세함의 절정을 보여다..

맨 첫번째 기둥에는 성인들을, 두번째 기둥에는 계절 풍습을 새겨 넣었고  맨 안쪽에는 일상 생활 모습과 동식물 모양을 새겨놓았다.

성당의 그림과 조각들은 문맹자들에게 성서의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여행 책자를 읽고 온 관광객들이 아담과 이브상을 향해 너도나도 카메라를 들이댄다.

요즘도 이 성당에서는 미사가 거행된다.


< 성당 건축 용어 안내 >

성당 안내문을 볼 때마다 성당 건축 용어에 대한 선행 이해가 필요했던 차에 가톨릭 사이트 '굿뉴스' 자료를 옮긴다.

애프스(apse)는 제실(祭室) 혹은 후진(後陣)이라고도 하며 예배자나 순례객, 관광객이 성당의 중앙 현관으로 들어와 회중석(신랑)에 서서 바라보는 정면의 가장 깊숙이 위치해 있는 반원형 공간이다. 주로 제단이나 유물, 성당의 보물, 석관, 소규모 제단 등이 놓인다.
건축 전문가는 apse를 '제대 반원 공간'으로 표현한다.

성당 평면도 맨 윗부분  반원형 3곳이 apse

성당 평면도 회중석은 nave라고 하며 제대를 향해 신자들 의자가 놓인 공간이다.


성 로렌스 성당 종탑과  광장의 야외식당들
각 층마다 건축 양식이 다른  47m  높이의 로렌스 성당 종탑
반원형의 팀파늄 조각

반원 형태인 팀파늄 맨 위 중앙 조각은 온몸의 가죽이 벗겨진 채 화형으로 순교한 이반 울시니 주교의 모습이고, 그 아래에는 수의 탄생과 경배,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조각해놓았다.

로렌스 성당 입구 '라도반의 문'
트로기르 태생 조각가 라도반의 1240년 작품,  사자 위에서 몸 가리고 서있는 아담과 이브

기둥의 첫 번째 줄은 성인들, 두 번째는 계절과 관련된 풍속 행사, 세 번째는 일상생활 장면과 여러 동식물이 조각되어 있다.

로렌스 성당 입구

1467년 안드레아 야레시(Andrija Aleši) 작품, 세례 성수반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는 예수님'


성 로렌스 성당의 내부(트로기르 관광청 홈페이지 발췌 )

제대 왼쪽으로 성 로렌스, 오른쪽에는 성 울시니의 상이 있다.
성 울시니에게 바쳐진 소 성당으로 1468~1487년 니콜라스 플로렌스의 작품
왼쪽사진은 제대,  오른쪽 사진의  팔각형 설교대와 그 뒤 성가대 의자

시피코(Cipico) 궁전

성당 바로 앞에 있는 시피코(Cipico) 궁전은 15세기 시피코 가문의 저택이다.

크고 작은 2개의 궁전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을 연결하여 만들어졌다.

큰 궁전의 앞면에는 고딕 양식의  Andrija Aleši와 Ivan Duknović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진 문이 있다.

남쪽 문은 Nikola Firentinac에 의해 제작되었다.

작은 궁전에는 외부 계단과 니콜라스 문이 있는 안뜰이 있으며 Alvis Cipicco의 모습이 있다.

알 비즈는 트로기르 최고위원이었으며, Žena라는 이름으로 1571년 레판토 전투에 참여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창문과 베란다를 떠받치고 있는 석조 기둥 장식이 섬세하고 기품 있어서 옆의 그을린 듯한 검은 벽돌과 대조를 이룬다.

현재도 이 궁전들은 여러 용도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고색창연한 건물 돌벽 창문 안에 쳐져있는 커튼을 보니 박제된 유적을 보는 게 아니란 점 호감이 생긴다.

중세와 현대가 생활의 터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크로아티아 여행 중 간간히 확인케 된다.


긴 세월 견딘 건축물이 광장의 야외 식당과

광장을 메운 관광객의 조화로운 배경이 되어주이 건물을 오래도록 볼 수 있도록

이 건축물 보전 방법이 어떻게 고려되고 있는지도 문득 궁금해진다.   

시피코 궁전의 창문  (트로기르)
로렌스 성당 앞의 시피코 궁전 (트로기르)

트로기르 시청

크로아티아 국기가 걸려있는 광장 동쪽에 보이는 아담한 3층 건물 트로기르 시청다.

15세기 니콜라스 플로렌스(Nicholas of Florence)의 작품으로 광장을 향하는 정면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시청 외부 벽면에는 트로기르 문장이 붙어있다.

최초의 시청은 13 세기에 언급되었으며 오늘날의 모습은 19 세기에 복원한 것이다.

통치자는 이곳에 살면서 도시를 다스렸다.

청사의 안뜰은 고딕 양식이며 Matej Gojković가 만든 계단이 있다.

한때는 1층 일부가 극장으로 사용되었는가 하면, 감옥이 있기도 하였다.

20 세기에 건립된 기념명판 중에는

1935년 크로아티아 국가 100 주년 기념,

1986년에는 인민당 승리 100 주년 기념, 그리고 1997년의 기념명판이 만들어져 있다.

유네스코 목록에 등재된 이 건물은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시청사 안쪽에는 과거에 우물로 쓰던 것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벽에는 여러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중앙 발코니와 출입구 중간에 부착된 트로기르 문장과 기념명판
시청사 안쪽
청사 안마당에 있는 예전 사용하던 우물
시청사 벽의 여러 문장들

성 세바스티안 교회 터에 세워진 시계탑

시청 옆에 있는 시계탑은 항해자들의 수호성인인 성 세비스티안(Saint Sebastian)을 위한 작은 르네상스 교회가 있던 자리란다.

시계탑 앞부분에 붙어있는 상(像)은 놓치지 말고 봐 두어야 한다니,

성경을 든 예수님, 그 아래에 선원들의 수호성인인 성 세비스티안 조각상을 올려다본다.  

그는 웃통을 벗은 채 기둥에 묶여있다.

기독교를 박해하여 로빈의 성녀 에우페미아를 순교하게 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근위 장교였던 세바스티안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에,

기독교도들을 돕다가 군중 앞에서 기둥에 묶인 채 화살을 맞는 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나 황제에게 기독교를 전하려다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

이후 중세에서 페스트가 유행하자

사람들은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던 그를 기억해내고

하늘에서 벌로 쏘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세바스티안의 유물을 모시고 행진하며 부적을 몸에 붙였다.

페스트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세바스티안을 전염병으로부터의 수호성인으로 모셨고,

15 세기 중반, 구원에 대한 감사 표시로 성 세바스찬에게 봉헌하는 교회를 세웠다.

르네상스 양식의 탑 정면과 내부의 조각품은 Niccolò Fiorentino의 작품이다.

19 세기 중반 창고로 쓰이다가,

요즘에는 개조하여 1991년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추모공간으로 사용고 있다.

시계탑 출입문 바로 위, 기둥에 묶인 성 세바스티안 조각상
시계탑 (트로기르)

법정이었던 로지아

그 옆에 있는 트인 공간, 기둥으로만 지지된 로지아는 예전에 재판을 하던 법정이었다고 한다. 15세기 ‘니콜라스 플로렌스 (Nicholas of Florence)’가 만든 것으로 6개의 기둥이 있다.

이 곳에서 재판이 열렸던 사례를 한국인 가이드가 옆에서 실감 나게 설명한다. 멀리서나마 더 좀 귀동냥고 싶지만, 가이드비용을 지불한 분들의 우호적이지 않은 눈초리를 보기 전에, 제풀에 청취권 밖으로 물러선다.


오픈된 재판정 앞에 선 피고는 바로 앞 광장에 모여선 사람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죄인일망정 군중심리로 증폭되기도 하는 대중의 반응을 현장에서 감지해야 했을 피고인의 공포심이 상상된다.

재판장이 사용하던 책상 뒤의 벽면 장식 부조 상단 중앙에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상이 새겨져 있다.  

중앙의 텅 빈 사각형 자리에는 원래 베네치아 상징인 사자가 조각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베네치아 이후의 시절에 없앴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정면의 벽에는 성인 반열에 오른 주교 페트루 베리슬리비추의 부조가 있다.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미술가 이반 메슈트로비치(1883~ 1962)의 작품이다.


베네치아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는:
날개 달린 사자가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사용된 배경은 8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 영토 알렉산드리아의 한 교회로부터 베네치아 상인 부오노와 루스티코 디 토르첼로는 안치되어 있던 산마르코의 유해를 훔쳐 베네치아로 가져왔다.
당시는 이런 성유물 도둑질은 성스러운 것으로 용인되던 시기였다고 한다.
날개 달린 사자는 산마르코를 상징하고 보호하는 상징적 동물이었기에 산마르코의 유해가 베네치아로 이전되면서 날개 달린 사자도 함께 들어왔다.
이후 13세기 무렵부터 베네치아 공화국의 번성과 함께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공식 상징물로 부상했고, 베네치아의 화폐, 공식 문서, 인장, 깃발, 다양한 장식물 등에 공화국 상징 문양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베네치아 지배 하에 있던 여러 지역의 건축물 장식 소재로 이 릴리프가 자주 등장한다.
자다르 ‘육지문’에도 날개 달린 사자 부조를 보았다.
로지아 벽의 주교 페트루 베리슬리비추
로지아 안, 벽의 부조 (가운데가 비어있음)
로지 벽의 부조 (트로기르)

바쁜 걸음으로 가이드를 좇는 한국인 단체 여행자들의 등을 눈으로 배웅하고 우리는 광장에서 다시 골목으로 들어선다. 두 사람만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엔 여러 가게들이 가득 들어차서 손님을 기다린다.

예쁜 장식품을 파는 곳도, 각종 선물가게도, 음식점도 많다. 인파에 살짝 떠밀리듯해서, 아까 들어왔던 북쪽 문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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