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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ee Aug 16. 2020

크로#17. 트로기르2: 유구한 역사의 숨결을 야경에서

성 마르코 탑과 카메를랭고 요새, 그리고 세인트 도미니크 성당

성의 북쪽 '도시의 문'

뒤돌아서 바라본 성의 북문은 11세기 후반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꼭대기 도시의 수호성인 ‘성 이반 오르시니(St Ivan Orsini)’의 상(像)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이 문은 성 바바라 교회 출입문이기도 하다고.

북문 앞에

아름다운 하얀색 요트들이 정박되어 있다.

맑고 폭이 20m 정도로 좁아서 개울로 보이지만 엄연히 바닷물이 흐르는 운하가 본토와 트로기르를 가르며 흐른다.

운하를 끼고 섬 서쪽을 향해 걷는다.

20m 폭 운하에 정박된 요트들

성 마르코 탑 (혹은 세인트 마크 타워)

성이 지어지고 나중에 더 확장되면서 사람들이 이주해 와서 살게 되었다는   서쪽 끝에 둥그런 모양의 성 마르코(St. Marko) ’이 보인다.

본토를 바라보고 수로 옆에 세워진 요새로 15세기 터키 침략을 대비해 베니스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1470년 건설이 시작되어 15 세기말에 완공되었다.

외벽의 분할은 2 층의 내부 공간 구성을 반영하며 아치형 개구부를 통해 외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연결되었었다. 돌계단은 Antonio de Canal 백작 (1496-1498)의 르네상스 문장으로 장식된 2 층의 아치형 입구로 이어졌었고 타워의 북쪽에는 또 다른 장식,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성 마르크스 부조가 있었으나 이 둘은 1932년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원형 타워 건축 방식은 당시 요새 건축술에 의거하여 포병에게 적합하도록 만들어 것이다.

원래는 성벽 두 측면, 즉 북쪽 성벽과 서쪽 성벽 카메를랭고 요새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통치시기인 1800년대에 허물어서 지금은 연결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역사 품은 요새 잔디밭에서, 청년들이 축구에 열중하고 있다.  


탑 앞에 게시된 안내글을 읽자니, 

자다르와 마찬가지로

1453년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리며, 승승장구 유럽 전역을 점령기 시작 신생 오스만 제국과,

십자군 전쟁 통에 더욱 강해진 베네치아 세력 다툼에,

식민 도시들 등 터지던 질곡의 역사 한 곳이 추가 알게된다.

현재 마르크 탑은 ‘달마티안 음악의 집’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성 마르크 탑

카메를랭고 요새(Kamerlengo Fortress)

섬 서쪽의 타원 끝점을 돌아드니 카메를랭고 요새의 원기둥형 탑과 성벽이 둔중함 속에 깃든 세월의 무게를 자아내며 우리를 맞는다.

한쪽 귀퉁이에 세워진 원통 모양의 높은 탑은 14세기에 있었던 것을 크게 만든 것이며, 현재의 모습은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성 마르코 탑과 같이 터키의 침략을 대비해 만들었다.

요새 건설은 로렌조 피치노 (Lorenzo Picino) 자문으로 마린 라도제 ( Marin Radoje)에게 맡겨졌으며 1420년~1437년에 지어졌다.

명칭은 당시 베네치아 총 행정관 카메리우스의 이름을 땄, 한 때 도시 성벽(城壁)의 일부였더가, 이후 베네치아군 해군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1941년에는 파시스트들이 트로기르인을 학살한 장소이기도 하다.

20년 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야외극장과 내부 무대 설치로 각종 행사 장소로 활용된다. 문화축제인 The Trogir Summer of Culture가 7월부터 9월까지 열린다.  

( 다음날 오전, 성에서 열리는 행사를 잠깐 구경할 수 있었다. )

카메를랭고 요새 앞 축구장
성 벽
요새로 들어가는 문의 상단
리바에서 바라본 카메를랭고 요새

아래 사진들은 다음날 카메를랭고 요새에서 벌어진 행사 모습이다.

행사장으로 향하는 꽃으로 꾸민 어린이들
행사 식장으로 사용되는 카메들랭고 내부
카메를 랭고 요새 안쪽
요새 안의 행사
요새 안의 장식된 꽃들(경연대회인 듯)
요새 벽에서 내려오는 계단


세인트 도미니크 성당

리바를 따라 걷다 보니 성 도미니크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13 세기 중반에 설립되었고, 14 세기 초에 고딕 양식 종탑이 세워졌다.

목조 천장에 배 바닥 형태의 빔이 특색이라고 한다.

교회 벽에는 팔마 지오바 네 (17 세기), 제이콥 콘스탄티 (16 세기), 조반니 바티스타 아르겐티 (17 세기)가 그린  개인 성도들의 삶을 그린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교회 입구에 선물가게가 있는데 성물만 있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액세서리도 저렴하게 팔고 있어서 몇 개 샀다.

성당에서 연세 많으신 노인 나온다.

우리도 살짝 성당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두컴컴한 성당 안, 여느 성당의 화려한 제대 거리가 먼데, 오래된 석조 벽은 유구한 세월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성당의 이 조촐함이야 말로,

진심을 다해 기도하면 낮은 데로 임하시는 예수님을 꼭 만날 수 있으리 믿음 두텁게 해준다.

도미니크 수도원 종탑
오른쪽 도미니크 성당

성당, 수도원, 식당들이 늘어선 리바의 널찍한 대로는 2천여 년 전에 이미 도시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남문 바로 옆에 있는 붉은 지붕 건물은 Mala Loza라고 하며 늦게 도착해서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임시로 묵는 장소였다.

남문 바로 옆의  Mala Loza (goole 지도 발췌)

리바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고, 야외 식당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리바의 식당들
리바에 늘어선 식당들
리바에 열린 꽃시장
리바 꽃시장
트로기르의 학교

골목길에서 벌 쏘인 동네 아이의 SOS

다시 야경을 보러 저녁 식사 후 되돌아 올 요량으로

치오보 섬으로 건너와 저녁반찬거리사러 슈퍼에 들렀다.

규모에 비해 많은 식재료가 구비되어 있다.

카레 재료 치즈, 고기, 양파, 감자를 사고 요구르트와 과일도 사서 숙소로 향한다.

치오보 섬 골목길에서 직접 기른 야채를 파는 주민

경사진 골목길을 오르는 중에

동네 아낙 몇 이서 집 앞 의자에 모여 앉아 한가하게 얘기를 나누는 삼거리에 당도했다.

그들 앞에서 대여섯 살 됨직한 어린 소년이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있는 벌레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놀라 쳐다보니 그 어린애가 우리한테로 뛰어와서는 자기 귀를 가리키며 계속 비명을 질러댄다.

벌에 쏘인 모양인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리 둘은 어찌해야 ㄹ지 몰라 아이만 바라보고 서있게 된다.

마침내 한 아낙네가 다가와  어린이를 살펴본다. 그래도 아이는 계속 우리를 향해 울부짖는다.

어쩔 것인가?

벌쏘인 것을 처음 보는 데다가 응급처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전혀 아는 바가 없는데...

잠시 후에 아이는 아낙손에 이끌려 가고,

장본 식재료 움켜쥔 채 서있던 우리는, 

무거운 걸음으로 현장을 떠나 왔다.


면식 있을법한 동네 어른들 대신

길 가던 생면부지 이방인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

이유가 너무 궁금하고,

우리를 향해 호소하던 아이의 절박한 눈빛이 자꾸 떠오르면서,

아이의 비명소리만큼 강도 높은 미안함 또한 떨쳐지지 않는다.


트로기르 야경

저녁을 먹고 다시 성으로 나다.

스플리트에 숙소를 정하고 30분 거리인 트로기르에는 잠시 다녀가는 코스가 일반적이라지만,

우리는  트로기르 야경을 보려고 이곳에서 일박을 하게 된 것이다. 

여행 짐 풀었다 다시 싸는 번거로움 무릅쓰고.


그새 깜깜해진 길에는 흐릿한 가로등이 드물게 서있 인적 끊긴 골목은 좁고 구부러져 있다.

여자 둘이서 걷자니 좀 무서워진다.

골목길 그늘 속으로 들어가서 허리에 맨 현금 가방을 더 단단히 묶고 볼륨 드러나지 않도록 목에 맨 스카프를 풀러 몸에 망토처럼 둘러주었다.

(당시) 크로아티아 가게에서 카드 사용이 여의치 않다는 정보에 따라 두 사람 분 여행비를 현금으로 준비한 터라 좀 부피가 있었다.

다행히 날씬한 내 짝꿍의 허리에 묶어놓으니 그나마 표가 덜 난다며, 우리 둘이는 안심 모드로 전환, 비장하게 침침한 치오보 섬 골목길을 계속 걸어 나간다.

숙소에서 본 동네 야경
치오보 섬  스플리트행 선착장
치오보 섬 야경

골목길을 벗어나니,

바다에 투영된 항구 불빛이 물결을 타고 영롱한 빛으로 흔들리고 있다.

스플리트행 선착장은 이미 영업 종료다.


성에 다다르니

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 흡사 중세 거리 밝히던 횃불 색이다.

번들거리는 포석 위에 반사되니 골목은 붉은 황금빛 그득하다.

낮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우리는  역사 영화 속 조연배우가 된다.

한잔 술에 거나해진 갑옷 입은 기사들 길모퉁이에서 마주칠지 모른다!

성으로 들어가는 남문
리바의 야경

이바나 파블라 광장 역시

관광객들로 붐비던  아까와는 달리, 

썰물 밀려나간 뻘처럼 침묵 속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낮에 보았던 로렌스 성당, 시청, 시피코 궁전, 성 세바스티안 릴리프, 로지아 등을

장애물 없이 천천히, 꼼꼼히 둘러본다.


장소에 관련된 역사 속 주인공들이

건물 안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다.

세월 지켜낸 건축물, 나무, 유적들은 사람처럼 나름의 추억 저장 메모리가 있다고 믿는 이 중에 나도 포함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기운 얻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던가!

나이 들면서 드는 생각,

인간이란 (혹은 생물체란)

하나의  큰 생명에너지로부터 탄생의 과정을 거치며 각각의 개체로 분화되는 것이라 믿는 터라, 

내 영혼 한 자락이 여기 살던 중세의 어느 누군가와 나눠진 것 아닐까 하는 가정 자주 빠진.  


물론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태생 따라오는 불평등인 인종, 윤리관, 성품, 신체조건, 질병에의 노출, 유전인자 등을  

이렇게나마 풀어야만 삭힐 수 있기에

내 나름으로 정립한 이론이다.

때론 상상력 윤활유 되기도 한다.


골목에선 이제 가게 문 닫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횃불로 길 밝힌 성안을 누비

역사 속 현지인 코스프레도 이제 막 내릴 시간이다.       


밤이라 서늘해진 밤바람 맞으며

주택들 불빛 받아 한껏 아름다워진 꽃무늬 바다를 끼고 귀소 하는 밤길은 마냥 뿌듯하.

단 하루 머무는 곳이지만

오늘도 많은 풍경이 내 마음의 앨범에 쌓여간다.

트로기르의 밤이여 안녕! 다음에 또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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