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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ee Dec 22. 2020

크로#25.두브3: 세월 껴입은 해상공화국 라구사 골목

  빗 속의 두브로브니크 골목길과 성채를 돌아보며

라구사 골목에서 아드리아해

새벽에 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잔뜩 비를 머금고 있다.

곧이어 내리기 시작한 비는 물 양동이로 퍼붓는 것처럼 위력적인데다, 바람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로 치면 호우주의보 발령 수준이다.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우비와 우산과 방수포, 풀세트로 장착하고 숙소를 나선다.

산비탈을 타고 위에서 내려온 빗물이 합쳐져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제대로 된 케스케이드다.

높은 언덕길이라 센 바람이 몰아쳐오니 우산도 쓸 수가 없다. 신발은 순식간에 물속으로 잠겨들었다.

할 수 없이 숙소로 되돌아온다.

온종일 젖은 발로 다닐 수 없으니 이번에는 비닐로 양말 위까지 묶어 싸매서 발목을 고무장갑 잘라 만든 폭넓은 고무줄로 묶는다.

조금 주춤해진 때를 기다려 다시 길을 나선다.


주택가 돌담 길 사이를 걸어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향해 걷는다.

지나가던 주민이 우리를 보고 다가와 '으로 갈 거면 이 계단을 내려가라'고 안내 해준. 친절이 고맙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앱의 내비게이션이 off라인 상태에서 길 안내를 해주니 신통 방통 해서 자꾸 들여다보며 걷는다. 계단을 따라 내려와 구불거리는 골목길을 걷자니 우리가 진짜 원하는 스타일의 여행임에

만족감 만큼은 '오늘 매우 쾌청'이다.


계단으로 이뤄진 고샅길
석재 돌담이 세월을 느끼게 하는 골목길

이끼 머금은 오래된 돌 담벼락은 마치 성벽처럼 세월의 두께를 보여준다.

건물의 작은 석조 발코니가 이채롭다.

지중해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을 누비며 무역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려는 선주가

이 발코니에 몇번씩이고 나와서 먼 아드리아해를 살폈으리란 상상이 .

실제로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은 9세기부터 배를 만들기 시작, 최성기(最盛期)엔 두브로브니크 공화국 시민 중 여덟 명에 한 명꼴로 해외무역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고 한다.


18세기에는 세계 80개 도시에 영사관을 두었고 두브로브니크에 적을 둔 선박은 어선을 포함, 650.

그중 200척은 대양 항해용이었다.

14세기부터 피어난 해상 공화국으로서의 면모 이렇게 오래토록 이어졌었다.

돌담 틈새에 뿌리박은 풀꽃이 수평으로 뻗으며 자라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기질을 보여주는 듯해서 예사롭지 않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읽힌다.

주택과 발코니
석벽
우람하게 자라는 담벼락 식물들
툭 트인 아드리아해
성으로 내려가는 길. 여행자 숙소들이 많은 듯.

라구사의 내력은:

7세기 무렵 몽골 계통 아바르 족의 공격을 피하여 해안 절벽 제대로 피란(避亂) 온 이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도시로서, 라우스로 불렸는데, 절벽이나 심연(深淵)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후 라구스, 라구사로 다시 두브로브니크로 명칭이 바뀜 )

피란민들은 성을 쌓기 시작하였고 비슷한 시기 크로아티아 사람들도 근처에서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렇게 돌섬과 육지로 경계된 두 도시 사이 작은 해협은 12세기경에 메워졌다.

필레 게이트와 시계탑이 있는 루자(Ruza) 광장을 연결하는 구시가 중심 거리인 스트라둔 거리가 바로 그곳이다.  두브로보니크의 중앙로에 해당하는 플라카(스트라둔)이라고 하며 보행자 전용도로로 약 300m 길이다.    


성벽은 10C에 처음 축조했고 14C, 19C에 증축과 보완하여 총길이 1940m, 최고 높이 6m, 두께 3m의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벽 중간 중간에 6개의  요새가 있다.

슬라브족인 라구사는 비잔틴 제국의 영향을 받다가, 1205년 베니스가 라구사를 공격, 점령당했다.

1358년 라구사 사람들은 베니스를 거부,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의 지배를 선택했으며, 이 구시가지는 바다로 돌출한 해안 절벽을 따라 쌓은 성벽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다.

이렇게 작은 나라, 라구사는 14세기에서 15세기에 이례적 번영을 누렸다.

에스파냐, 이탈리아, 불가리아는 물론 인도와도 광범위한 교역을 하였다. 인도에서는 고아에 식민지를 건설하기도 하였는데 그 중심지는 라구사의 수호성인인 블라시오스를 모시는 산비아조 교회였다.

16세기 말엔 보유 선박 규모가 유수의 해양강국 베니스와 거의 맞먹었으며 라구사의 선원, 무역상 및 외교관들은 세계 도처를 돌면서 돈을 벌어 국익(國益)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1667년 4월 6일 발생한 대지진이 8 일 동안 계속되었고

이로 인한 화재가 20일 동안 도시를 태우면서 많은 건물과 함께 예술 작품들도 파괴되었다.

인구의 절반을 사망시키는 비참한 지진에 시달리기 일 년 전에도 거의 1,000 명이 전염병으로 사망했었던 까닭에 인구는 지난 몇 세기 동안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즉, 약 8000 명의 시민 중 5000명이 죽고, 배와 거의 모든 건물, 성당, 수도원, 교회, 정부 청사도 무너지고 수많은 문서들이 불탔다.

그래서 오늘날 보는 건물들은 아쉽게도 재건(再建)된 로마식 바로크 건물들이라고 한다.

화재 후에 급히 지어진 건물들은 옛 정취를 잃었고 현재의 스트라둔 도로 양옆으로 이어지는 건물들은 1층에 상가, 2층엔 거주지역으로 이용하고 있다.

라구사는 이렇게 대지진 이후 어려워진 데다 1808년 나폴레옹 군대, 그리고 1814년 이후엔 오스트리아 제국 領 달마티아 왕국의 지배로 넘어가게 되었다. 다시 1차 세계대전이 독일, 오스트리아 제국의 패배로 끝나자 두브로브니크가 속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세르비아는 유고 왕국으로 연합, 독립하였다. 유고연방을 이끌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인 부모에 태어난 티토는 독립운동을 통하여 자국의 독립을 쟁취했는데, 사후 유고 연방이 해체되면서 1991년부터 95년까지의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은 많은 상흔을 남겼다.

특히 1991년부터 1992년 사이 7개월간 두브로브니크가 포위되어 벌인 공방전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좁은 골목안, 덕지덕지 내려앉은 세월의 풍상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어느새 성이 내려다보이는 계단에 이르렀.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우중에도 그새 도착해서  필레 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성 북쪽 민세티 요새
성벽 민세티 요새의 국기
주택지에서 성벽을 끼고 필레문으로 내려가는 계단
필레문
필레문


입장권을 끊어 성벽에 오르니 바닥이 미끄럽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바람도 불지만 섬으로 막히지 않은 탁 트인 아드리아해를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은 달마티아 지방의 끝부분인 두브로브니크에서 가능하다는 말을 실감한다. 1,246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섬이 로아티아 해안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어 그렇다고 한다.

성 안으로 올망졸망 자리 잡은 붉은 지붕들이 다정.


성벽에서 내려다 본 풍경들이다

오노프리오 분수대 (공사중)
스트라둔 거리
성벽길
성벽 길의 폭
깎아지른 절벽에 세워진 성벽
성벽에서 내려다 본 구시가지
성벽에 바짝 붙여 지어진 주택들
계단으로 이뤄진 구시가지 골목
성벽에서 내려다 본 마을
오른쪽 무너진 담벼락처럼, 여기저기 보수중인곳이 많다
성안의 노천 식당
구시가지 붉은 지붕들
민세티 요새로 오르는 계단과 오른쪽 농구장
민세티 요새의  탑(오른쪽)
민세티 요새에서 내려다 본 성 밖
성 요한 요새쪽에서 본 항구와 여객선 승선장
여객선착장과 오른쪽 성 요한 요새

여기저기 공사를 하는 구간이 있어서 나무다리로 엉성하게 엮어놓은 위를 걸어가자니 약간 아슬아슬하다. 간간히 바로 옆에 보이는 현지인들의 집을 들여다보며 성벽을 한 바퀴 돌았다.

중간에 박물관등은 개방하는 날이 아니라서 들어가 볼 수가 없다.

성벽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는데 개방하지 않아서 볼 수 없다니 좀 섭섭하다. 미리 알려줬으면 입장일 선택을 재고 했을텐데.

크로아티아는 계절별, 요일별로 대중교통운행, 박물관, 아쿠아리움 및 기타 명소의 개방시간이 다르다니 구매 전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내일 다시 와서 좀 더 자세히 성안을 살피기로 하고 성을 나선다.

필레 문 나오면 바로 앞에 시내로 가는 버스정류장과 투어를 권유하는 여행 사원들이  있다. 버스로 시내까지 소요시간은 십여분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맛집을 찾아갈 예정이다. 퇴근시간과 맞물려서인지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 아는 얼굴이 보인다. 며칠 전 트로기르에서 만난 태국인 대학생 4인조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어디를 거쳐 왔는지 묻는다.

오늘 밤에 태국으로 떠난다는 말에 아쉬운 이별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먼저 시내에서 내렸다.


우리도 몇 정거장 더 가서 어제 도착한 터미널 근처에 내렸다.

항구에 가서 정박해 있는 고급 레스토랑 선박도 보고 어제 숙소에서 보았던 이태리 바리행 여객선도 올려다본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저녁 식사를 하러 찾은 맛집의 open 시간 5시에 맞추는 중이다.

공원과 인근 상가에서 쇼핑도 하고 어슬렁거리다가 시간 맞춰 가보니 문 앞에 쪽지가 붙어있다.

오늘은 영업을 쉰다는...ㅠㅠ

할 수 없이 인근의 대형 쇼핑몰로 다시 들어가서 음식점을 찾으니 마침 1층에 맞춤한 집이 있다. 해물 피자와 스파게티 맛이 기대 이상이다.

크로아티아는 대충 어디서나 우리 팀의 입맛에는 맞는다.


만족한 식사를 마치고 어둑한 밤거리를 보며 숙소에 돌아오는 길, 오늘의 3번 시내버스 여정은 수월하다.

종점에서 내리니 숙소까지 5분 거리다.


일품인 숙소의 야경 뷰와 어울리는 클래식을 듣기로 한다.

이 아름다운 4월의 끝자락, 봄 밤에 듣는 음악이라니!

것도 KBS Classic 방송을 통해서.

만족한 또 하루가 얹힌다.

점차 여행이 끝을 향하고 있다. 다행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커피를 한잔씩 나누며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중에서 블타바를 오늘의 마지막 곡으로 선정한다.


오늘밤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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