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스르지산을 구불거리며 내려가 도심으로 들어선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도보 15분 거리라기에 걸어갈까 했었는데 와보니 산동네 오르막길이다.
아드리아해를 향해 면해 있는 스르지 산 경사면을 끊어 중간에 도로를 내고 다시 바다를 향해 내려가는 산자락에 계단을 이뤄 주택들이 층층이 들어앉아 있는 모습이다.
숙소를 정할 때 이처럼 경사가 심한 계단으로 올라가야 할 것은 예상 못하고 주택가 완만한 길을 오르는 15분으로 알고 가볍게 예약을 한 것이다.
두브로브니크로 들어가는 Franjo Tudjman 다리와 항구에 정박된 크루즈들 (구글, 항만청 사진) 스르지 산에 자리한 두브로브니크 마을과 항구 (구글, 항만청 사진) 마침 예약 숙소 근처에서 묵은 어느 블로거 정보에 따라 시내버스 3번을 이용할수 있음을 알아두었다.
그래도 확인차, 큼지막하게 크로아티아 어로 프린트한 숙소 주소를 들고 현지인 젊은이에게 물으니 역시나 3번 버스 NUNCIJATA 행을 타면 된다고 한다.
날이 점차 어두워지는데 버스가 더디 온다. 반대방향으로 지나는 3번 버스가 보여서 정류장이 그쪽인가 싶어 길 건너 반대편으로 가서 기다린다. 얼마 후 버스가 와서 타려니까 아까 서있던 건너편 정류장으로 가라는 운전기사의 손짓.
다시 되돌아온다.
알고 보니 건너편 정류장은 종점행 정류장이었다.
오후 6시 45분, 이 도시에 발 디딘 후, 양쪽 정거장 오가며 30분 배차 3번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거리는 불빛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두브로브니크 버스 터미널 정류장 앞의 거리 풍경 스르지 산자락에 자리한 마을과 멀리 보이는 Franjo Tudjman 다리 버스 정류장의 버스 노선 안내도(2016년 4월) 조선소와 항구 근처에 정박된 선박들, 선박 레스토랑
선박형 레스토랑 포구 한참 만에 온 3번 버스 운전사에게 예의 숙소 주소를 들이대며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타라고 한다.
현지인 승객들의 관심을 받으며 자리 잡아 앉는다.
차창으로 스며든 이 낯선 도시의 초저녁 빛깔과 밤공기가 재빨리 내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더하여 멀리 조명으로 드러 난 성벽과 오래된 석조 건물들도 차례로 다가와 환영사를 발한다.
버스는 우리가 스플리트에서 오던 길을 되짚어 시내를 통과해서 스르지 산 언덕길로 다시 오른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운전사가 내리라는 시늉을 한다.
'이렇게나 금새?'
블로그에서 숙소 근처의 버스 종점(회차점) 정류장 사진까지 친절하게 올려놓은 걸 봐 두었었다.
종점 근처는 아직 아닌게 확실한, 산길 초입에 오르자마자 내리라니 심히 미심쩍다.
짧은 시간의 깊은 갈등!
어쩌랴, 운전사 말대로 따르기로 한다.
< 그 밤의 이동경로, 스르지 산 중턱 8번 도로 >
그 밤의 여로: A 잘못내린 하차, 목적지 B까지 걸오간 산 길 8번 도로 막상 내리고 보니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어둑한 도로는 산 중턱을 휘감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아까 이 도시에 들어올 때 지나쳐온 Franjo Tudjman 다리와 연결되는 이 8번 도로는 북쪽 크로아티아에서 두브로브니크로 들어오는 길이기도 하고, 남쪽으로 50km 떨어진 국경의 몬테네그로로 가는 도시의 유일한 관통로인 것이다.
거의 자동차 전용도로 수준인 1차선 도로 위를 트럭과 버스와 각종 차량이 쉴 새 없이 전속력으로 달려가며 굉음을 내지른다. 스트리트 뷰로도 이 도로에 건물이 없는 건 확인한 바였지만 이렇게 어둠 속에 내리고 보니 사라져 간 3번 버스 뒷모습을 야속하게 바라볼 뿐이다.
지도를 수없이 자주 봤던 터라 숙소의 방향은 알고 있었으므로 버스가 간 길을 쫓아 걷기 시작한다. 딱 한사람 걸을 만한 폭의 갓길을 가방까지 끌고 걸으려니 차선 분리대가 없어서 앞뒤로 비쳐오는 헤드라이트 명멸함에 어지럽고, 바짝 옆으로 달리는 굉음의 끊이지 않는 차량 행렬에 가슴이 두근두근,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그때 인근에 차를 주차하고 계단을 내려 주택가로 향하는 현지인 가족을 만난다.
사람을 처음 만난 지라 주소를 내밀며 이 길이 맞는지를 물으니 숙소에 전화를 걸어준다. 그리고는 '계속 직진하라'고 한다.
그들과 헤어져 칠흙의 산길을 걷기 시작한다.
헐떡이며 맹렬한 속도로 얼마나 걸었을까?
불빛 속에 드러난 간판, '호텔 아드리아'가 저 멀리 어슴프레 드러난다. 지금껏 애타게 찾던 이 호텔은 숙소와 직선으로 연결된 장소다.
"이 길이 맞아! 호텔에서 일직선으로 가면 되거든! "
어둠 속에서 뒤따라 오는 짝꿍에게 급히 소리 질러 안심시킨다.
혹시라도 길을 잃거나 못 찾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목적지 가는 도중의 중간지표로 설정해둔 곳이다.
이제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계속 앞으로 전진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걸어왔던 산 길 8번 도로. (구글 스트리트 뷰 ) 오른쪽 하단의 붉은 지붕이 목적지 숙소. 숙소로 들어가는 계단 통로. 가로등이 거의 없다. 한결 긴장이 누그러진 상태지만, 여전히 부리나케 걷다 보니 길 아래쪽에 지붕이 보인다. 길 섶 주차장은 길 아래 주택의 옥상이고 그것을 주차장으로 이용하는 것을 인터넷 지도 사진에서 보았었다.
이어서
예약한 숙소 간판과 그 옆에 서 있는 어린 소녀가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아까 현지인의 전화를 받고, 나와서 기다리는 숙소의 딸내미였다.
방에 들어서자 가방을 내동댕이치고 일단 침대에 뻗는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다.
숙소 인근 풍경을 스트리트 뷰로 수차례 눈에 익혀두어도 밤에는 창밖을 확인할 수 없으니 쓸모가 없는 일이었다. 중간 지점의 호텔이 아니었으면 얼마나 당황했을지!
칠흑 어둠에 질주하는 자동차 전용도로 갓길로 가방을 끌며 지나온 30분여의 행군은 공포 그 자체였다.
새삼 운전기사가 너무나 원망스럽다. 아예 모른다고 했으면 종점에서 내려 쉽게 왔을 텐데 다른데 내려줘서 이 고생을 시킨단 말인가!
그런데 최근 다시 두부르브니크 지도를 살펴보니 운전기사가 내려준 곳은 목적지 숙소와 끝 이름이 같은 Apartments xxx였고 우리 숙소는 Rooms xxx 임을 알았다. 두 장소 간의 거리는 1.5km, 도보로 약 25분 거리로 나오지만 그 밤에는 40분 이상으로 체감되었다.
잠시 후, 짐을 풀려고 일어나 창밖 커튼을 젖히는 순간 깜짝 놀랐다.
건물들, 그리고 물살을 헤치며 오가는 여러 선박들이 발하는 불빛으로 캔바스가 된 수면이 황홀한 그림을 빚어내고 있다.
아까의 공포가 보상받는 순간이다.
블로거들이 올린 사진보다 훨씬 아름답다.
여러 나라에서 더러 야경을 봤지만 아드리아해에 드리워진 역사를 읽었음인지 불빛을 띠운 바다는 더 깊이 있게 비춘다.
밤바다를 가르며 이 밤에 쉴 새 없이 오가는 저 많은 배들은 모두 어디를 향해 가는 배들일까?
아름다운 밤바다에 섬과 섬 사이를 헤치며 나아가는 밤 배 따라 내 마음도 쫄래쫄래 따라간다.
숙소에서 본 항구 숙소에서 본 조선소쪽 야경 숙소의 야경 크로아티아 여객선 인도가 없고 가로등도 없는 도로변을 걸은 일은 매우 위험한 밤의 여로였음을 이튿날 알았다.
집과 집을 잇는 골목길은 계단을 통해 내려가서 주택들 사이로 나있었다.
공포심은 괜한 기우가 아니었다.
< 숙소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풍경들과 아드리아해 >
비오는 아침의 시내풍경 내해 건너편이 BABIN KUK . 섬이 아닌 육로로 연결된 지역 선착장과 조선소 스르지 산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자리한 마을의 주택들 왼쪽 중앙 흰색 건물에 빨간 구조물이 있는 건물은 대형상가 황혼의 바다 포구 숙소로 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현란한 야경이 우리에 대한 환영의 ceremony라 위로하며
기대감을 안고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