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수능 끝, 순응 끝.
빅데이터가 생겼다. 제자들 중 수능 치른 당일 또는 대학 합격 시 연락을 해오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당연한 얘기겠지만 입결이 만족스러울수록 높은 확률로 연락이 온다. (입결 좋으면 재수했어도 연락 온다. 입결 안 좋으면 안 온다. 이해한다.)
물론 연락만으로 고맙고 또 그 말만으로도 감격스럽지만, 내심 얼마나 진심 (또는 진실)일지 모를 달콤한 이 말은 내 안에 자리 잡아 숙제가 되었다. 습관적 매사문을 일삼는 나는 반복되는 이 인삿말에마저 화두를 품게 된 것인데 바로
"다 선생님 덕입니다."
"제 귀인이시고 인생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을 만나서 제가 ~~~~~하게 됐어요."
절절한 장문일수록
(물론 기쁘면서도) 언젠가부터 스치는 생각이
묘하게 마음 한 켠을 찝찝하케 했다.
고맙긴 한데.
나는 진짜 그렇게 믿어도 되나?
너희의 그 말을 근거로 내가 훌륭한 강사라는 결론을?
나만의 내적 고민 끝에 결론은
너의 성취는 나의 자부심이 아니다.
한 때 제자들의 감사인사에 뽕 맞고 내 어깨가 올라갔으나
인생의 더닝크루거 어느 봉우리에 와있는지 모를 나는
잠정적 결론을 내린다.
내 덕이 아니다.
내 탓도 아니다.
그런 오만을 범하지 않겠다.
물론 일부 내 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정확히는 최대 50% 언더.
학원과 강사들이 손쉽게 학생들의 성적이나 입결을 본인들 상업적 어필에 이용하는 게 관행인 걸 알지만 오래 가르칠수록 과연 그게 맞나 싶어진다. 점점 저항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나도 반성한다. 최대한 그런 태도로 살지 않겠다 마음 먹는다.
성적우수자는 다 학원 수업 덕인가? 그렇다면 그 수업을 들은 모두가 1등급을 받는가? 아니다. 원래도 잘 해오던 또는 이제야 잘 할 만한 아이들이 그 학원을 선택해 준 것이다. 마침 그 타이밍에 인연이 닿은 거다. 반대 케이스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최고의 정성과 노하우로 지도한다. 이건 나의 확신과 자부심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모든 제자가 다 공부를 잘 하게 되고 성적이 잘 나와서 대학을 잘 가는 건 아니다. 그런 건 없다.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 중 결국 정해진 일부만이 끝내 입시 마지막까지 잘 버텨주고 결과까지 좋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다. 아니, 더 많다. 당연하다. 그 또한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살 수 없다.
원래 공부할 싹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틔워주기 좋은 타이밍에 나를 만난 것일수도 있다. 이런 아이들을 만나는 건 감사하다. 나의 행운이다. 이 아이들의 눈빛이 내 삶의 의미고 에너지원이다. 반대로 내가 아무리 애써도, 온 힘을 다해도 안되는 아이도 있었다. 내 자식처럼 정성을 다 쏟았지만 끝내 안됐다. 대체 내 인격이 어디까지 후져질 수 있는지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 아이들에게도 감사하다. 웃기게도 이런 아이들이 나를 더 많이 성장시켰다.
이 모든 게 내 삶의 이유다. 그걸로 충분하다.
다음 세상의 주역들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