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무계획

스물여덟인생

by 라온골드 Laongold

대학원 생활이 어느덧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단 한 학기만 남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대학원에 입학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동안 약과 관련된 다양한 과목들을 들었고,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마치 한 편의 긴 여정을 걸어온 기분이다.


사실 대학원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여가를 보내는 그 시간에 나는 강의실에 앉아야 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을 반납하면서 공부를 이어나갔다. 어느 순간엔 정말 이게 맞는 길일까,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 싶어 휴학을 고민한 적도 많았다. 그런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대학원 동기들 덕분이었다. 함께 과제를 하고, 고민을 나누고, 졸음을 참으며 수업을 듣던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입학 후 지금까지 나는 세 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처음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는 연구간호사로서 경력을 쌓고 궁극적으로는 제약회사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당시엔 그 길이 분명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연구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점점 그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이직을 선택했다.


다시 임상으로 돌아갔을 때는 오히려 후련했다. 돌아간 걸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밌다’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첫 병원에서 조금만 더 버텨볼 걸 그랬다는 후회가 강하게 밀려왔다.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었는데, 왜 그 몇 개월을 더 참지 못했을까. 왜 그때는 모든 걸 놓아버렸을까. 이유가 무엇이든 결국 나는 그 이후 또 두 번의 이직을 거치고 지금의 병원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지금은 요양병원 나이트전담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일은 편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회의감이 밀려올 때도 있다. ‘내가 이러려고 대학원을 다닌 건가?’라는 질문이 자주 머리를 맴돈다. 수업 시간에 배운 DDS, GMP, 계통별 약물최신동향 같은 것들이 지금 내 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배운 것들이 의미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고 믿는다. 다만, 그 배움이 당장 현실에서 쓰이지 않을 때 오는 허탈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건 방향을 잃었다는 느낌이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그만큼 잘 안 풀리는 현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고, 스스로 무너지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혼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찾고 있다는 증거니까. 앞으로 뭘 해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대학원 졸업이 이제 6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그 이후엔 지금 이 거주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어쩌면 그 자유가 내게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이트전담으로 일하며 잠시 숨을 고르려 한다. 하루하루를 너무 조급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돌아보면서, 다음 걸음을 준비해보려 한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이 시점이 어쩌면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대학원이 내게 준 건 단순한 학위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다듬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흔들리지만, 그래도 괜찮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 예전보다 단단해진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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