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지키미

스물여덟인생

by 라온골드 Laongold

요양병원 나이트 전담 간호사로 일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어간다. 이곳의 밤은 늘 조용하다. 아니, 조용하다는 말보다는 ‘고요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하다. 불이 꺼진 병실마다 환자들은 각자의 침대에 누워 있다. 어떤 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고, 또 어떤 이는 불면의 밤을 조용히 견디고 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소리는 대부분 가래 끓는 소리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병실을 돌며 환자들의 가래를 뽑아드린다. 제때 가래를 제거하지 않으면 기도에 가래가 쌓여 호흡이 어려워지고 그로 인해 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은 내가 가장 신경 쓰는 업무 중 하나다.


의무적으로 2시간씩 돌아가며 수면 시간을 갖지만, 일하는 동안 온전히 잠들기 어려워 그 시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스테이션에 앉아 있는 시간에도 내 귀는 늘 병실 쪽을 향해 있다. 호출벨이 울리진 않을지,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환자가 생기진 않을지, 그 가능성에 늘 귀 기울이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오늘은 특별한 환자 한 분이 입원하셨다. 청각장애가 있는 어르신이었다. 이미 고요한 세상 속에 사시던 분인데 요양병원이라는 낯선 공간, 낯선 얼굴들이 얼마나 불편하고 또 두려우실까 생각하니 마음이 쓰였다. 다행히 내가 수어를 할 줄 알아서 조심스럽게 병실로 들어가 수어로 “안녕하세요. 간호사 ○○○입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그분은 살짝 놀란 듯 고개를 들더니,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말은 없었지만, 그 짧은 교감은 긴 말보다 훨씬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요 며칠 동안 마음속에 계속 걸리는 분이 한 분 계신다. 연세가 60대이신 환자분인데, 최근에 그분의 양옆 침대에 계셨던 두 분의 환자분들이 며칠 사이에 연이어 돌아가셨다. 홀로 남겨진 그분의 마음을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계속 마음이 쓰였다. 특히 그분은 원래부터 예민하고 불안한 기색이 자주 보이던 분이었고, 실제로 항불안제를 복용하고 있을 정도로 정신적인 긴장 상태가 평소에도 높았던 분이다. 그래서였을까. 이틀의 오프를 마치고 근무에 복귀해 인계를 받던 중 그 병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다. 갑작스럽게 가까운 환자들이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그분은 어떤 심정이셨을까. 하루아침에 양옆 침대가 텅 빈 모습을 마주한 순간이 얼마나 허무하고 두려웠을지, 그 상실감과 고립감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는 이별이 아주 생생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런 경험은 때때로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 것 같다.


우리 병동은 총 36개의 병상이 있고, 지금은 그중 33개 병상에 환자들로 가득 차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그 숫자만으로도 막막했다. '도대체 36명의 환자를 어떻게 다 파악하지?'라는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누가 어떤 병을 앓고 있고, 어떤 약을 복용하며,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는지.. 인계를 받아도 그 많은 정보를 한 번에 정리하고 기억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며칠 동안은 머릿속이 하얘졌고, 침대마다 계신 환자분들의 얼굴이 서로 겹쳐 보이기도 했다. 내가 이 공간에서 과연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란 게 참 묘하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어느새 익숙해진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마다 병실을 돌며 안부를 묻고, 석션을 하고, 약을 투여하고, 피부 상태를 살피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환자 한 분 한 분의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숫자에 불과했던 침대 번호들이 이제는 이름과 상태, 말투와 표정까지 함께 떠오르게 됐다. 한분 한분 내 머릿속에서 점차 구체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이름을 외우고, 침대 위치를 익히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환자분들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누가 말이 없어진 것 같고, 누가 평소보다 조금 더 웃으시는지. 그런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는 나 자신을 보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마음을 쓰고 눈을 맞추는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낸 변화였다.


그리고 이곳의 진짜 히어로들은 새벽 4시쯤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간병사님들이다. 각 병실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 환자들의 기저귀를 갈고, 체위를 바꿔드리고, 식사보조를 해주신다. 첫 나이트 근무 때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우와…” 하는 감탄이 새어 나왔다. 밤새도록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묵묵히 환자 곁을 지키는 분들이다. 나는 그분들의 헌신을 보며, 밤이라는 시간에도 무게가 있고 존엄이 있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된다.


나이트 근무는 때때로 지치고, 마음도 무겁다. 때로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고, 나름의 외로움도 있다. 하지만 환자 한 명이 안정을 찾았을 때, 수어로 인사를 받아준 어르신의 미소를 봤을 때, 혹은 고요한 밤으로 무사히 지나갔을 때, 오늘 밤도 지켜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긴 밤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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