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질토마토 Oct 22. 2023

내가 음방만 제작하면 이 바닥 뜬다

지역에서 음악프로그램을 만든다고? 꿈 깨라!

어릴 때부터 방송작가가 꿈이었는데, 이젠 방송작가를 그만두는 게 꿈이 됐다. 방송작가 경력 15년을 채우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잘 그만두기"를 목표로 일하기 시작했다. 잘 그만두기 위해서는 이 일에 더이상 미련이 없을만큼, 다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작가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적었다. 지역에서 텔레비전 구성작가로 활동하다 보니 예능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양프로그램은 다 경험해 봤는데, 이젠 지역에서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제작해보고 싶었다. 첫 번째 목표는 FM라디오 프로그램이다. 많은 작가들이 라디오 작가를 꿈꾼다. 소박하고 다정한 라디오 부스에서 소곤대는 사연과 감성적인 멘트를 쓰는 사람이 나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또한 나의 글이 많은 밤을 채운다고 생각하면 정말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면 라디오보다 역동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더 마음을 빼앗기곤 하지만, 라디오는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장르이긴 하다. 나 역시 오랜 방송경력에도 그랬다. 다만, 시사나 콩트 프로그램이 아닌 감성 FM라디오 프로그램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지역에 클래식 FM프로그램이 제작 중이었다. 아쉬운 건 라디오프로그램은  티오(Table of Organization)가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말 갑자기, 이 프로그램에서 작가 제안이 온 것이었다.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꿈꾸던 FM프로그램에 클래식 프로라니, 한때 클래식 덕후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으랴. 그렇게 아주 행복하게, 혹은 도장 깨기 식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작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작가를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죠. 쁘이)


두 번째로 꼭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음악프로그램, 쇼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 제작이야말로 멘땅에 헤딩하기,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였다. 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려면 일단 정말~ 많은 돈이 필요하다. 물론 지역에서 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경우도 많은데, 나의 목표는 '로컬리티'가 강조된 지역 프로그램이 아니라 '유희열의 스케치북' 혹은 '더 시즌즈' '비긴 어게인'처럼 전국구 음악프로그램을, 지역에서 제작하고 싶었다. 지역에서 방송제작을 하다 보면, 늘 '지역성'이라는 정체성과 충돌하는 지점이 온다. 모든 프로그램에 '지역성'이 녹아야 한다가 기본 전제이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자. 미디어 매체가 텔레비전뿐 아니라 OTT와 유튜브까지 자유자재로 확장되고 있는 작금에 왜 지역사람들은 지역 출연자만 봐야 할까? 진정한 '지역성'을 추구하려면 지역 사람들이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지역에서 즐길 수 있는 공연프로그램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인디밴드 덕후로서 페스티벌이나 콘서트를 즐기려면 십만 원은 훌쩍 넘는 표값에 교통비, 거기에 숙소비까지 더하면 깨나 비용이 많이 들어서, 한 번 공연을 보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음방만 제작하면 방송작가를 관둘 거다- 더 이상 미련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말은 씨가 된다지? 음방 음방 노래를 불렀더니, 정말로 음방을 만들 기회가 왔다. 물론 반쪽짜리 출발이었다. 시작이 반이라잖아. 나는 일단 이 프로그램에 영혼을 갈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방송작가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