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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토마토 Nov 05. 2023

나는 우울할 때 록을 들어

닥치고 말 달리자!

언젠가의 가을날이었다. 후텁지근했던 여름의 끝자락에서 마치 계절을 보내듯 자연스럽게 연인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미 우린 적당히 시들해진 관계였을까. 둘 사이는 생각보다 쉽게 마침표가 찍혔고 괜찮을 줄 알았던 나는, 그해 가을 뜻밖에도 이별의 여운이 길어서 꽤나 괴로웠다. 이별 후 예민해진 감각 탓인지 바람이 텁텁한 흙냄새만 몰고 와도 가슴이 저몄다. 곧 비가 내릴 거란 신호임을 알기 때문이다. 뿌연 마음과는 달리 투명한 비는 도시에 색을 입혀 초록 잎은 더 선명해지고, 아스팔트는 검게 물들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마른날보다 솔직해졌다. 나는 그게 싫었다.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감정들, 그 조각들이 부유하는 낯선 하루, 내가 나답지 않아 지는 그런 날에는 음악에 마음을 기댔다. 스마트폰을 열고 플레이리스트를 찬찬히 훑다 보면 뭉근한 위로가 된다.  사람들 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구나 싶고 사는 거 별거 없다는 묘한 동질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부분 비와 감성, 따뜻, 위로라는 말로 조합된 제목을 가진 플레이리스트에는 상냥하고 적당히 우울한 노래들이 가득했다. 당시 클래식 덕후였던 나는 하늘이 한껏 키를 낮춘 날에는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쇼팽의 녹턴] 등을 주로 들었다. 평소 같으면 울적한 마음과 결이 비슷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무난한 하루를 보냈을 텐데 그날따라 뻔한 공식이 왜 그리 지루하던지 검색 키워드를 ‘신나는, 기분 좋은, 스트레스 날리는’ 등으로 바꿔봤다. 빠른 비트와 누가 들어도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곡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많은 곡 가운데 눈에 띈 것은 펑크 록밴드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였다.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라는 다소 과격한 가사가 점잖은 자리에서는 쉬이 부르기 어렵지만, 놀랍게도 다 표준어인 노래. 이어폰을 끼고 [말 달리자]를 재생했다.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던 ‘닥쳐’를 점점 크고 파이팅 넘치게 따라 불렀다. 비 내리는 가을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건만 샤우팅을 한바탕 하고 났더니 웬걸 마음이 갑자기 보송해지더라. 마치 더러운 유리창을 깨끗하게 닦은 후에 몰려오는 상쾌함이랄까. 갑자기 마음에 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몇 번 [말 달리자]를 반복하자 리스너의 음악 취향을 찰떡같이 파악하는 음원사이트에서 비슷비슷한 록음악을 추천해 줬다. ‘노브레인’ ‘YB’ ‘데이 6’ ‘자우림’ ‘새소년’ ‘데이브레이크’ ‘킹스턴 루디스카’ ‘잔나비’ 등등 따라 부르는 족족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들이었다.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들이 참 많다. 취향 역시나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단박에 알기가 어렵다. 여러 가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어보지 않으면 남들이 이미 선택해 놓은 것들을 ‘일반적’이라는 이유로 따라가기 쉽다. 나도 모르게 가장 대중적인 것이 자신의 취향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슬플 땐 어떻게 해라, 기쁠 땐 어떻게 해라 등 공식 아닌 공식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울할 땐 차분한 노래, 더 깊은 심연에 빠지는 노래를 택하겠지만, 나는 그때부터 우울할 땐 록 음악을 듣는다. 어쩌면 마음이 바닥 탁 치고 올라올 수 있는 발판을 놓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가 물었다.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꿀조합은 뭐냐고. 맛집이나 간식 등을 기대하며 물었을 텐데 그 질문을 받고 말했다. '나는 우울할 때 록 음악을 들어!' 가끔은 뻔한 결말을 비껴가는 것! 그것이 나만의 꿀조합이다. 우울할 때, 슬플 때, 의욕마저 없을 때, 속는 셈 치고 록 음악을 한번 들어보자. 생각보다 괜찮다면, 그대 언제 나와 한번 ‘말 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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