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밖은 꾸준히 생존음파가 관측된다.
응답 바랍니다, 여기는 라씨티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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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S 국제연구센터의 관측소에서 방송되는 라디오의 소리다. 낮고 높음의 차이가 없는 직선 주파수를 타고 the CITY 전역을 돌아 도시 밖으로 퍼져나간다. 진행자의 낮은 목소리가 생존자를 찾는 도시의 긴급 방송임을 느끼게 해 준다. 전쟁 이후 황폐해진 지상 위 남겨진 생존자들은 아픔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그 가난과 그 아픔 속에서 구출하는 것이 CIS 국제연구센터의 목표이자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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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들은 매일 매초 도시 밖 역경에 시달리고 있을 생존자들을 향해 소리친다. 어딘가 듣고 있을지도 모를 도시 밖의 생존자들을 향해, 그리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말이다.
원래는 도시 밖으로 정찰대원들이 나가 생존자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CIS 국제연구센터에 소속되어 정식 훈련을 받고, 미세물질로 가득한 황량한 도시 밖으로 나가 수개월을 떠돌며 생존자들을 구출해 왔었다. 하지만, 정찰대원이 몰고 온 미세물질이 도시의 공기질에 루시드환공 시스템으로도 정화시킬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피해를 끼치며 도시민들의 건강 악화를 초래했다. 이에 시민안보협회는 도시 밖을 완전 차단시킬 것을 CIS에 촉구했고, 이사회의 오랜 고심 끝에 the CITY는 도시 밖과 완전히 차단되었다. 이로 정찰대원이 직접 밖에 나가 생존자들을 찾을 수 없게 되면서부터 CIS는 관측소에서 확인되는 생존음파를 통해 생존자들을 찾고 있다. 그것이 바로 [라씨티오]. 생존자들이 듣고 직접 찾아오는 것 밖에는 지금으로서 방법이 없다.
도시를 둘러싸는 두꺼운 콘크리트와 연질막, 그리고 높은 천장 밖에서는 꾸준히 계속해서 생존음파가 관측되고 있다. 생존음파는 생존자들에게서 확인되는 음파가 아닌 움직임을 뜻한다. the CITY 밖의 지형데이터는 관측소에서 관리되고 있다.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바람 등의 날씨에 따라 변형되는 지형을 레이더로 연산해 황폐해진 지상의 전체적인 지도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그 속에 자연적인 변형이 아닌 인공적인 움직임이 발생했을 때 음파로 확인이 되는 것을 생존음파라고 한다. 오판의 확률도 무시 못하지만,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도 무시 못하기에 관측소에서는 생존음파를 꽤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지금까지 관측소에서 확인된 생존음파는 총 45만 6,341건이다. 이 중 오판의 가능성을 따졌을 때에도 최소 30만 건은 된다. 모두가 생존자의 신호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진짜 생존자가 라씨티오의 라디오를 들었을 때, 도시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선택은 미안하지만 없다. 도시 안에서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모두 차단되었다. 하지만 생존자는 도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CIS에서 방도를 마련해 두었다.
the CITY와 밖이 차단되기 전 연결되어 있던 통로는 지금의 이끼수련 해역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CIS의 방공호 시설이 위치해 있어 정찰대원이 머물다 생존자를 찾으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두꺼운 콘크리트와 연질막을 넘어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완벽히 차단될 당시 엘리베이터를 부수고 안쪽에서는 밖으로 통하는 문을 열 수 없게 만들어 놓았기에 지금은 도시에서 나갈 수 없는 구조다. 그리고 이끼수련 해역에 서식하는 이끼수련 꽃의 독은 맹독성 위험 물질로 CIS에서 접근을 금지하고 있기에 지금으로서는 도시가 생존자들에게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없다.
하지만 생존자는 도시 밖에 마지막 정찰대원들이 남긴 표식들을 보고 천천히 길을 따라온다면, 도시 안으로 통하는 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저 문 앞에 서서 밀어 열기만 하면 된다. 좁은 통로를 거쳐, 아주 높은 갑판을 거쳐, 환경정화 배출구를 거쳐, 이끼수련 해역의 엘리베이터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에 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을 환영해 줄 CIS 안전요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30만 건의 생존음파에서도 도시에 들어온 생존자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라씨티오는 생존자를 찾는다. 밖에서 들려오는 생존음파 30만 건 중의 단 한 건일지라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라씨티오는 막연한 삶에 영원한 안락을 선물해 주기 위해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
신기한 것은 the CITY의 밖에는 기괴 존재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황폐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없이, 괴물도 없고, 해를 가할 무언가도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생존자가 있다면 다행이다. 괴물도 없고, 해를 가할 무언가도 없기 때문에 무사히 도시로 들어오면 하는 바람이다.
바쁜 도시 사회에서도 생존자의 소식은 희망이 되고, 낙이 된다. 왜냐하면 모두 똑같은 처지였었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갈 곳을 잃은 정착세대가 도시에서 자라나 미래의 씨앗을 심었고, 지금은 그 씨앗이 거대한 나무가 되어 새도 깃들 만큼의 단단한 가지를 피워냈다.
듣고 있습니다, 들린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관측소도 마찬가지다. 출근해서 매일 같이 보는 것이라고는 구릿빛 흙색깔의 황량한 지상뿐이기에 단단하고 견고해진 도시의 역사를 기대하며, 생존자를 기다리고 있다. 미래의 씨앗이 지금의 거대한 나무가 되었듯, 이제는 열매를 맺을 차례다.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찬 그 열매를.
여기는 라씨티오입니다.
들린다면 대답해 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