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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뜨 Oct 09. 2024

최초의 업그레이더

다 잊은

   모든 능력자들은 시간과 기억에 대해 비밀을 갖고 능력을 각성하게 된다. 메개융합시술은 두뇌의 해마에 접근해 인간이 받아들일 수 없는 신의 지식을 밀어 넣어 강제로 능력을 각성하게 하는 매우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시술이지만, 일반인들에겐 단순히 능력자가 되는 간단한 시술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메개융합시술로 각성한 능력자들은 기억과 상기에 대단한 역할을 하는 해마를 신의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모든 기억을 열어버린다. 단기기억, 장기기억, 잊힌 기억, 남아있는 기억들을 모두 헤집어 능력 각성을 위한 지식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술로 능력을 각성하는 순간, 과거, 현재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난다. 해마를 이전보다 더 활성화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유천성. 하늘의 별이라는 뜻이야.'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들었던 첫 말이다. 메개융합시술로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난 탓에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 잊고 싶었던 것들부터 시작해 좋았고, 행복했던 모든 기억들이 서로 뒤엉켜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지만, 셀리나 님이 나를 아주 잘 인도해 주셨다.


  '하늘의 별... 좋은 제물이 될 게야. 너는 이제부터 나와 길드, 그리고 도시를 위한 병기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하지만 그녀에겐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내가 찾아낸 것은 그녀의 발가락도 못한 아주 조그마한 것들 뿐이지만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무엇인가 거대한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도망치려고 했다.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겠다고. 하지만, 길드장은... 아니, 셀리나는 신이었다.


  모두가 나를 유천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날이 바로 셀리나를 만났던 날이다. 그녀가 내게 이름을 붙여줬고, 아쉽지만 그 이전의 나는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 아니니까. 나는 CIS 국제연구센터와 산소대응포인트, 그리고 셀리나를 필두로 한 그들의 원대한 계획의 첫 발판이 되어줄 비밀 병기였으니까. 만들어진 육체, 만들어진 과거, 만들어진 이름, 모든 것이 가짜였던 내게, 그리고 나의 삶이 되었던 그들이 앞에서는 사랑, 뒤에서는 거짓으로 행하는 것들을 보며 깨달았다.


  '고작 도구로 여겨지는구나... 내가 아무리 잘하고, 아무리 열심히 잘 보여도 그들의 눈엔 야망이고, 지나가는 도구일 뿐이구나. 돌아가고 싶다. 그저 무(無)였던 날로...'




  인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노화되고, 죽어가며, 도망친다. 하지만 이런 인류에서 보다 더 혁신적이고, 보다 더 아름다운 미래를 원했던 CIS 국제연구센터는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를 하나 기획하게 된다. 바로 인뉴 in-NEW 연구 프로젝트였다. 새로운 인류라는 뜻을 담아 현인류의 DNA에 타 생명체의 DNA를 섞어 최적의 생존 DNA를 찾는 장기 연구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의 메인이 되는 실험이 바로 메개융합시술이었다. 하지만, 메개융합시술의 부작용으로 인간의 DNA보다 타 생명체의 DNA가 우월한 일이 드물게 나타났고, 이에 타 생명체의 형질이 마법, 기적 등의 형태로 진화하며 능력으로 남았다고 한다.

  당연히 CIS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뭘 더 어떻게 연구를 진행하겠는가. 즉시 연구 프로젝트를 중단시켜 이들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격리시키게 된다. 도시 밖 어딘가에. 실험체는 약 1만여 명 정도라고 하는데, 도대체 이들을 도시 밖 어디에 격리시키고, 양육해 왔는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이 일을 지금까지 숨겨온 것도, 아직도 숨기고 있는 것을 본다면 셀리나와 CIS 국제연구센터 사이에 무언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그것을 파헤치려고 했다. 도시 정부를 자처하는 이들의 진실이 무엇인지,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들이 무엇을 만들고자 했는지 알아야 했다.


  CIS 국제연구센터는 인뉴 프로젝트를 파기하고, 능력자들을 이용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연구 목표를 설정했다. 그것이 바로 대체인류 연구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이전 프로젝트였던 인뉴 in-NEW를 완벽히 계승하면서 더 활발하고, 더 높은 수준의 연구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실험체를 격리시킨 곳에서 바로 실험을 시작했고, 그 결과는 이전과 같이 참담했다. 아니, 처참했다.

  실험 환경은 바이러스였는데, 실험체의 능력으로 실험 환경이 통제되지 않자 CIS는 실험체들의 뒷부분에 바이오칩을 삽입할 있는 기구를 이식해 실험체들을 통제했다. 하지만 수년간 20기에 달하는 실험에도 모든 결과는 실험 중단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 실험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셀리나와 CIS의 뒷 이면을 파헤침과 동시에 나에게서 이상한 점을 느낀 셀리나가 내 기억을 봉인하면서 나는 강제로 대체인류 연구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억 봉인은 봉인자도 풀 수 없는 능력인데, 오직 해금의 능력을 가진 해금자만이 봉인자의 봉인을 풀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기억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게 주입된 기억 때문이었다.

  도시의 어느 누군가의 기억을 짜깁기해 나의 과거가 만들어졌는데, 아주 포근하고 아름다운 가족이 살고 있었다. 형은 유세성이라는 사람이었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부모 밑에서 그와 함께 행복한 나날들을 지냈다. 기억은 봉인되었을지라도 내가 익숙한 무언의 것을 보거나 행동을 취하면 그 기억들의 감정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기억이 봉인되면서 당연히 기억 봉인 당시의 기억도 함께 봉인되어 내가 기억이 봉인되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지만, 실험구역에 퍼뜨린 바이러스와 기억 봉인의 금제, 그리고 나의 능력 일부가 충돌해 나의 만들어진 심장인 무동력펌프에 균열이 생기면서 천천히 기억을 되찾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기억을 되찾지 못했다. 만들어진 내 과거의 기억도 어쨌든 내 기억이다. 그것이 짜깁기된 기억이라 할지라도 내 기억이다. 하지만 어딘가 한 구석의 공허함은 CIS에서도, 트리플S 길드에서 채울 수 없었다.


  실험 중단이라는 역대급 무리수를 둔 CIS 국제연구센터는 바이러스로 인한 실험체들의 끊임없는 사망으로 실험체 80%를 잃으며 대체인류 연구 프로젝트가 공중 분해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CIS는 셀리나를 중심으로 대체인류 연구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새로운 연구 목표를 수립하게 되는데, 그것은 내가 알 수 없었다.

  그저 바이러스로 황폐해진 실험구역에서 남아있는 다른 실험체들과 함께 마지막 죽음을 향해 살아가던 어느 날 도시에 괴물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우리는 도시로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각성한 능력은 보조계통의 능력들이었기에 누구도 나를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모든 실험체들이 더 좋은 길드로 소속을 옮기면서 나는 마지막까지 CIS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유천성 군... 많이 컸군요. 그동안 그곳에서 잘 있었나요? 그곳은 어땠나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죠. 그대는 제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어요. 앞으로는 제 길을 따라오세요.'


  혼자 남겨진 내게 다가온 사람은 셀리나였다. 무고하게 기억을 잃은 작은 아이를 위험한 곳에 밀어 넣은 당사자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주 조금이지만 기억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갈 곳은 내게 없었기에, 얼굴도 모르는 가족들을 찾을 수 없었기에 나는 셀리나를 따라 트리플S 길드로 갈 수밖에 없었다.

  듣기로는 셀리나가 욕을 먹어가며 길드로 데려왔다고 한다. 나는 그 이유가 뭔지 알지만, 사람들은 몰랐다. 그렇기에 소속된 그룹들이, 소속된 엔터테이너들이 다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도 그녀가 나를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그녀의 과거를 바꿔줄 그 원대한 계획의 일부였다.


  내가 업그레이더로 재각성하게 된 건 바로 이 날이다. 셀리나를 따라 트리플S 길드로 소속을 옮기게 된 날이다. 이때 브넷사를 만났고, 이때 셀리나의 신격을 보았다. 위험하고, 살기로 가득한 그녀의 붉은 핏빛을 말이다.


  생령방울. 생령방울은 영혼과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이다. 일반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높은 등급의 능력자일수록 생령방울의 정제 수위도 높다. 생령방울의 기능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의 가장 넓게 알려져 있는 것은 죽은 자도 살린다는 것과 생령방울 주인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크나큰 대가가 따른다. 대가는 사람마도 다르고, 능력자마다 다르며, 능력마다 다르다. 아무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셀리나는 내게 생령방울을 줬다. 그녀가 설명한 것이라고는 자신의 친구 것이라고 하던데, 친구를 죽이고 생령방울을 얻은 것인지, 아니면 친구가 자신의 생령방울을 대가를 받고 뜯어낸 것인지 내겐 알 방법이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것을 받아 흡수해 업그레이더로의 능력을 재각성했다. 생령방울을 받고 흡수한 대가로 나는 시력을 잃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 이제는 진짜 홀로 남겨지게 된 것이다.

  이날 나는 스스로 셀리나에게 기억을 봉인해 달라고 말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너무 힘들어서, 버티고 싶지 않아서 그냥 내 모든 것을 지워달라고 말했다. 홀로 남은 것조차도 느끼기 싫어서 기억을 봉인했다. 셀리나로서는 좋은 기회였겠지. 자신의 계획을 위해 어쩌면 꽤 복잡한 방법으로 처리해야 했을 나라는 존재가 쉽게 해결이 되었으니까.

  시력을 잃은 나는 무엇보다 촉각과 청각을 빠르게 단련시켰다. 그래야 눈이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척할 수 있으니까. 길드 사회에서, 도시 사회에서, 레이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검은 우주-는 나를 대표하는 능력이다. 서포팅 능력이라고는 하나 내 의지에 따라 희미하지만 공격 능력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레이드에서 나의 위치는 파티를 보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사용은 하지 않아 왔다. 하지만, 선을 넘어도 파괴를  버린 셀리나를 참을 수 없었다.

  모양은 그냥 작은 블랙홀이다. 시전하지 않고 있을 때는 주변의 소리와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만 빼면 전혀 위협적일 것이 없고, 어차피 서포팅 능력이니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셀리나를 완벽히 제압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행동을 취해야 했다.

  이 작은 블랙홀의 -검은 우주-는 공간 팽창이라는 버프를 부여했다. 내가 시전을 받아 보지 않아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모르지만, 완벽한 보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것을 공격적인 형태로 변형시켰을 때는 말 그대로 블랙홀이 된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시간과 공간과 소리와 주위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검은 우주로의 여정이 시작되는 괴력의 공격이다.


  "감히!"

  하늘 높이 떠오른 셀리나의 동요가 아주 잠깐 느껴졌다. 그녀도 내 능력에 위험을 감지했다는 거겠지. 하지만 S등급은 S등급이라고. 그녀는 본인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주위로 셀리나를 저지하려는 능력자들과 도망치는 시민들이 보였다. 돌아갔다던 브넷사로 되돌아온 것 같고, 그녀의 비밀 조력자인 I.M. 아이엠도 보이고, CIS에서 온 능력자들과 길드원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셀리나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셀리나는 신인데, S등급을 누가 이기겠는가. 나조차도 이리 흔들리는데.


  셀리나를 막으려면 모든 것을 한 번에 끝내야 했다. 위력도 가장 강하고, 규모도 가장 크고, 셀리나보다 더 큰 회오리를 만들어야 한다.

  "공간 팽창!"

  나는 거대한 회오리의 눈에 중심을 잡고 능력을 시전 하던 셀리나를 향해 뛰어올랐다.


  '셀리나,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진 않을 거야. 나라는 변수가 생겼으니까.'


  쾅!

  검은 우주가 순간적으로 압축되며 작아졌다가 굉음과 함께 소리마저 쓸어버리며 충격파가 퍼져나간다.



  셀리나가 몰고 온 거대한 회오리고, 위험하게 날아오르던 건물의 잔해들도 집어삼키며 먼지와 함께 피어오른 그을린 구름과 함께 공간의 찢김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블랙홀 너머 연결되면 안 될 것들이 연결되고,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마치 다차원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는 이 기현상을 시작으로 더 거센 회오리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형. 정신 좀 차려봐요!! 그리고 이거 받아요."

  내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셀리나가 능력을 시전 할 때 미리 내 가슴속 만들어진 심장과 생령방울이 서로 관계하지 못하도록 차단시켜 놓았다.


  하아... 후우, 하아... 후우..

  나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가슴 안쪽 생령방울을 천천히 뜯어낸다. 피로 얼룩진 내 손에 붉은 보석이 잡혀 딸려 나온다.


  형이 뭐라고 말한 것 같다. 하지만 소리마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내게 가져다준 건 아픔이었다. 시력도 감정도 모두 잃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헤어짐의 아픔을 선물 받았다. 형으로부터 따뜻함의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내 할 일을 해야 했다.

  "아니, "

  나는 형을 세게 끌어안는다.


  "닫힌 미래의 시간이 열린 과거의 흐름에 덧씌워지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난 이미 여러 번 경험해 왔고, 이사회는 미래의 결과를 막기 위해 계속해서 이런 일들을 반복할 거야. 형은 나를 계속 붙잡아 줘. 나는 형을 놓을게. 그래야 형이 살 수 있어. 고마웠어, 그리고 사랑해."

  이게 슬픔이라는 감정인가. 눈에서 무언가 흐르기 시작했다.

  나를 끝까지 붙잡으려는 형의 손길을 세차게 쳐낸다. 미안해. 지금으로는 셀리나를 누구도 막을 수 없어. 형도 점차를 나를 잊어가겠지. 닫힌 미래의 시간이 현재를 추월하겠지.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상관없어. 그래도 잠시나마 행복했으니까. 내게 뜨거움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다시 찾아오라고 말은 했지만, 어차피 기억 안 날 거야. 셀리나가 그렇게 할 거고,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냥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아. 검은 블랙홀이 시전자인 나를 빨아들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도 두려운 어느 어두움으로 들어갔다.


  셀리나는 CIS 국제연구센터의 시나리오 이사회다. 이사회는 총 3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을 지칭하는 말이 바로, 창조자, 전달자, 편집자다. 이들은 신이다. 만물을 관장하고, 기억을 관장하고, 시공간을 관장하는 신이다. 이들은 먼 미래의 인류 종말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시간을 반복하고, 공간을 편집하며 닫힌 미래의 시간을 열린 과거의 흐름에 덧 씌워왔다.


  리셋. Reset.


  인류 종말을 막기 위한 어느 특정 시간대를 찾기 위해 꾸준히 무한으로 반복시켜 기억을 덧 씌우는 그들의 일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조차도 기억을 봉인당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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