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는.
그와의 첫 만남은 증오에서 시작되었다.
"다들 인사하렴. 오늘부터 트리플S 길드에 새로 입단하게 된 유천성 군이란다. 너희들처럼 능력 운용에 있어서 부족할지라도 옆에서 많이 도와줄 거라 믿고 있단다. 천성 군은 내일부터 훈련에 참여하도록 해."
셀리나 길드장님께서 어느 날 한 남자아이와 같이 나타났다. 그가 앞으로의 트리플S 길드를 대변할 사람이라고 하자 나는 조금 불쾌했다. 원래라면 내가 셀리나 뒤를 이을 길드장으로 셀리나 님께서 외부 일정이 있으실 때마다 그녀를 대신해 모든 업무를 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등급도 얼마 되지 않고 심지어 서포터 능력군인 그 애가 뭐라고. 낙하산 주제에, 그의 눈치 없는 첫 얼굴이 기억난다.
당연히 첫 훈련부터 엉망진창이었다. 난 알고 있었다. 아니, 모두가 알고 있었겠지. S등급과 A등급은 고작 한 등급 차이지만 전투력에서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걸 말이다. 지금은 업그레이더로써의 능력으로 재각성해 체급 차이를 어느 정도 무시할 정도가 되었다곤 하지만 훈련생일 때는 기본 훈련조차 따라오지 못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똑똑똑.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바스락이는 소리와 함께 들어오라 하는 그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문을 연다.
"길드장님께서 갑자기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
트리플S 길드의 길드장인 셀리나 님은 이번주 CIS 국제연구센터에서 진행하는 큰 행사에 참석하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오늘 오전 갑자기 길드장님의 호출이 와 있었다.
"아… 그렇죠. 제가 불렀죠."
어리둥절한 표정도 잠시 셀리나 길드장님은 원래 페이스를 찾았다.
"일단 여기 앉아요.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어서 그랬어요."
"네, "
그녀가 손짓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길드장님도 다가와 바로 앞에 앉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네?"
조금 당황스럽다. 고작 이 말하려고 부른 것은 아닐 테고, 뭐가 엄청난 것이 올까 두렵기도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아, 네. 음… 저는 뭐, 레이드도 돌고, 이번에 특수능력군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잖아요. 그거 관련해서도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죠. 길드장님은요? 듣기로는 국제연구센터에 다녀오신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일은 잘 되신 거죠?"
"그건 걱정 말아요. 제 미래가 알아서 할 거예요."
그녀가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길드장님의 미래요?"
"그건 그렇고, 요즘 유천성 군과는 잘 지내고 있나요?"
듣는 순간 직감했다. 이거구나.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와 잘 지내고 있는 것이 중요한 질문... 차대 길드장으로 그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온 거구나. 나 말고도 여럿 소속 능력자들이 다녀갔겠지.
"서포... 음, 유천성 씨.. 요? 워낙에 능력이 출중하시니까 잘하고 계시죠, 뭐, 업그레이더신데, 체급 차이야 상관없죠. 레이드도 잘 돌고 계시고, 작은 일에도 신경 쓰고 계세요."
입바른 말이다. 유천성 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가 길드장이 된 후에도 내가 길드에 실세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일단은 셀리나 길드장님께 잘 보여야 했다.
내가 셀리나 길드장님 대행으로 해온 일들이 꽤 있다. 이때는 몰랐지, 당연히. 그녀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거대한 그 계획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셀리나는 인간이 아니라는 거다. 어쩌면 신적 존재일지도.
"괜찮아요, 브넷사 양. 그런 딱딱한 대답 말고, 좀 더 집요하고 세세한 설명 부탁드릴게요. 천성 군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죠?"
어찌 보면 포근하면서도 달리 보면 섬뜩해지는 그녀의 눈빛이 나를 꽉 붙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감히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없는 사실을 뱉어낼 수 없게 만든다.
"잘 모릅니다. 서포터 유천성 씨는 어제부로 트리플S 길드에서 탈퇴하였습니다. 슈아 씨 말로 그는 길드장님과도 이야기를 마쳤다고 하더군요. 죄송합니다, 셀리나 길드장님. 죄송합니다."
나를 억누르던 무언의 기운이 조금씩 거둬지기 시작한다. 천천히 내 호흡이 돌아온다.
"결국 못 찾았다는 거군요, 브넷사 양."
"...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는 길드장님과 이야기를 마쳤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죠?"
"흐음..."
셀리나의 기운이 갑자기 변했다.
"제 과거가 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군요. 유천성 군은 지금 고어용문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브넷사 양?"
푸른 살기가 마치 실체화된 듯한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마치 거대한 괴수를 보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를, "
"아뇨, 저와 같이 가죠. 그들도 부르세요."
"누구를요?"
"브넷사 양의 소환수들."
이건 기회였다. 유천성까지 죽여버릴 수 있다면 나야 고맙지.
나는 '브넷사 피오라도'다. 피오라도는 전통적으로 대대에 이어 걸출한 소환사들을 탄생시켜 왔다. 지금은 비록 강한 무력에 의한 레이드로 집중되어 있다지만, 한때 시대를 이끌었던 피오라도 가의 장녀다. 피오라도 가의 중심이자 가주이셨던 증조할아버지가 레이드 도중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피오라도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능력자들 사이에서 도태되었다. 더 이상 소환수들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크리쳐들이 나타나면서 피오라도, 그 이름이 잊히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트리플S 길드에 꼭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피오라도 가를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다짐도 있었지만, 사촌 키사브 피오라도가 트리플S 길드의 3대손 중 하나인 엑스더엔드 보이그룹에서 잘 나가면서부터 피오라도 가의 차대 가주로 감히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정통직계 자손으로 원래라면 내게 그 기회가 주어져야 했지만, 그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그룹의 인지도를 이용해 피오라도 가를 집어삼키려 했었다. 그의 이 무서운 계획은 다행히 지금 피오라도 가주인 아버지께서 제때 정리하시면서 일단락되었다지만, 그는 트리플S 길드 뒤에 숨었다. 그래서 나는 내 힘으로 피오라도 가를 일으켜 지금의 능력자 형세에서 피오라도를 다시 부활시키고, 정점에 오르기 위해 트리플S 길드에 들어갔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노래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인지도도 높지도 않았고, 별 볼 일 없는 그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지만, 셀리나 길드장님의 눈에 들기 위해서 나는 금단의 위계와 접촉했다. 잘못하면 기괴 존재로 변형될 위험이 있었지만 그런 건 내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쉽게 물리 위계를 얻었고, 내 소환 능력에 접목시켜 the CITY와 CIS 국제연구센터의 강력한 방패가 되어준 I.M. 아이엠을 창조해 냈다.
"유천성 군이 도망을 간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찾았는지 궁금하군요. 브넷사 양도 그들과 함께 가죠."
"아, 네. 알겠습니다. 고어용문에서 다시 만나는 걸로 해요."
살짝 인사하고, 나는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원래 소환사들이 소환한 소환수는 소환사의 능력 시전으로 영계의 문을 통해 현실로 소환될 때, 각각의 소환사의 소환영역계를 벗어나 현실로 소환되는데, 이때 소환사 본인의 환력을 소모해 소환수에게 명령할 수 있다. 그러니까 환력에 따라 소환수의 행동범위와 위력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창조한 I.M. 아이엠은 현실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나의 환력 소모와도 상관없으며, 내 영계와 연결되어 있어 소환이라는 1차적 단계를 거칠 필요도 없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이들은 지금의 트리플S 길드를 있게 해 준 버팀목이자, 지금까지 기괴 존재로부터 도시민들을 지켜와 준 방패이며, 앞으로도 나를 환하게 빛나게 해 줄 나의 야망이자 꿈이다.
그러니까 내 앞 길을 막는 뭐든 철저히 부숴주마, 서포터 유천성. 나는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을 거야.
문화보존기구: 프롤로그 -브넷사, I.M.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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