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나뜨 Oct 16. 2024

in-NEW

도대체 무엇을 위한, 새로운 인류

  라벤더 향이 은은하게 깔린 작은 카페에 들어가 보니 백발의 머리가 샌 사람이 앉아있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에 손님 하나 없는 빈자리 가득한 곳이었다. 내가 다가온 것을 눈치챈 것 같지만 모르는 척 대꾸하지 않는 그녀의 앞에 조심스럽게 앉는다. 


  "어머니는 잘 지내고 계신가요?"

  나의 물음에 아주 천천히 끄덕이는 검은 실루엣의 작고 가는 그녀의 손이 테이블에 밀봉된 작은 봉투를 끌어온다. 그리고는 무언의 곳을 가리키는 그녀의 손짓을 따라 바라보니 어느새 밤이 짙게 깔려 어둑어둑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벌써 밤이...'

  "이 봉투는...?"

  내가 그녀를 돌아보았을 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녀인 건 확실한데, 아직 주도권은 그녀에게 있나?'

  밤마다 눈 깜짝할 새 나타났다가 스치는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녀는 마녀임에 틀림없었다. 


  "그럼, 좀 있다가 보죠. 정보는... 감사해요."

  회백색의 밀봉된 봉투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듣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앉았던 자리를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카페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밀봉된 봉투를 열어보니 들어있던 것은 두 개의 보안 카드키였다. 먼저 손에 들어온 카드키의 앞은 초록색의 시민로고가 마크되어 있었고, 뒷면엔 카피온의 생각이 담겨있었다. 크기로 보나 두께로 보나 내가 알고 있었던 마녀의 보안 카드키와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것은 불법 복제되어 만들어진 카드키였음에도 인증된 카드키처럼 시민로고와 카피온의 생각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카드키였다. 다른 하나는 나중에 쓸 때가 있을지도. 일단은 갖고 있기로 했다.

  '흑마법은 마녀의 전유물이니까 믿어도 되겠지.'

  하지만 특별히 그녀가 마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없지?'

  밤이 되었다. 더 달고 깊은 밤이 되었음에도 어떤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다. 달고 깊은 밤은 마녀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뜻한다. 하지만 이때에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일이 터졌다는 것이다. 

  '달고 깊은 밤... 에 돌아다니는 건 나 밖에 없을 듯..'

  이곳의 밤은 위험하다. 언제 죽음을 맞게 될지 모르는 채로 누가, 도대체 어떤 시민이 밤에 미쳤다고 돌아다니겠는가. 나는 마녀가 아니기에 상황을 파악하려면 방금 만났던 마녀를 찾아야 했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그녀가 몰래 건네준 보안 카드키와 검은 가면 안경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어디가?"

  문이 잘 잠가졌는지 확인하고 돌아보는 순간, 시뻘건 그의 눈동자가 나와 마주친다. 짙은 피의 살기에 묻혀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들켜봤자 아무 이득없이 죽음뿐이라는 생각에 대충 둘러댄다.

  "편의점..? 왜?"


  "음.. 이 시간에?"

  그가 손목시계를 보고 내 뺨을 스쳐 고개를 내민다.

  "조심해. 교주에게 포교당하지 말고."


  그는 내 친구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도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어, 그래 고마워. 너도 조심해. 마피아도 포교당할 수 있으니까. 설마 벌써 성인군자가 된 건 아니겠지?"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붉게 달아오른 볼의 긴장함이 들키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지만, 그도 똑같은 거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니까.

  그와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헤어져 마녀와 만났던 카페를 찾았지만, 당연하게도 마녀는 없다. 


  쾅!

  어디선가 거대한 폭발소리와 두 다리 사이로 땅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어두운 밤하늘에 옅게 피어오른 검은 연기와 비명소리 하나 없는 조용한 길거리가 적나라한 이곳의 진실을 상기시켜 준다. 서둘러 다른 보안 카드키를 꺼내 본다. 이전의 카드키와는 달리 앞은 붉은색의 시민로고와 뒤로는 카피온의 생각이 담겨있었다. 우연일지 필연일지 붉은색의 시민로고가 점점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도 마피아지만, 이렇게 기쁠까. 방금의 친구가 공격을 받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데도 기분이 좋다. 이런 바로 뒤통수를 친 기분이랄까.




  우리는 10년을 주기로 1월 1일이 되는 00시에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정확히 그 시간에 약 수천 명의 마피아가 정해진다. 마피아의 임무는 이곳에 뿌려진 시민을 모두 죽이고,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마녀와 마담 등 자신들을 도울 수 있는 조력자를 만나 팀을 꾸려야 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마피아를 피해 1년 동안 살아남아야 한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곳에는 이런 시스템이 존재했다고 한다. 무엇을 위한, 도대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신은 우리를 무언의 실험체로 사용하고 있다는 거다. 이 마피아와 시민이라는 이상한 게임을 시작으로 우리의 삶은 이미 많은 것들이 변했다. 가족도 잃었고, 친구도 잃었고, 목숨마저, 삶의 선택마저도 빼앗겼다. 


  "아휴... 시원하네"

  보안 카드키로 확인한 마피아 동료들 중 사망한 마피아는 42명이다. 달고 깊은 밤에 이번 폭발로 지금까지 412명의 마피아가 죽음을 맞았다. 얼마 남지 않은 마피아의 수, 이 길고 긴 생과 사를 건 전쟁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면 나도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겠지라며 시민의 승리를 위한 다음 계획을 위해 구시대 종탑으로 향한다.


  나와 같은 이들은 이곳저곳 넓게 퍼져 살아가고 있다. 수년시간 동안 유지되던 시스템의 세계체제가 천사의 강림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피아의 무차별 살인에 대응하게 위해 시민보호협력기구가 출범함과 동시 비시민안전관리체계가 공포됨에 따라 시스템의 허점을 통한 시민의 승리가 확실해졌다. 시민은 천사와 접촉해 강화인간으로 각성하고, 마피아의 살해 협박에 무력으로 맞섰다.

  강화인간으로 각성한 시민이 매년 발표되는 마피아로 선택되면 시스템의 눈을 피해 마피아로 변장해 그 무리 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미 많은 수의 강화인간이 파고들었고, 시스템은 이 사실을 모른다. 곧 있으면, 시스템의 중요한 허점에 도달할 수 있다. 마피아로써 아무 때나 방문할 수 있는 곳이지만, 시민에겐 악마의 소굴로 여겨지는 곳이다. 하지만 강화인간으로 각성해 마피아고 간택당한 내가 있다면 시스템의 이 악함을 끊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천사로써 마피아 구역에 잠입해 있다. 내가 마피아로 간택되어 이성을 잃고 살인을 일삼고 있을 때 어머니와 만났다. 하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나중에 보니 내 곁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시면 돌아가셨다. 대천사셨던 어머니의 목숨을 대가로 나는 천사가 되었다.

  마피아천사, 악과 선이 공존하는 몸이 되었다. 어쩌면 시스템은 나라는 존재를 파악했을지도 모르지만, 천사이면서도 마피아인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시민보호협력기구를 설립한 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시민구제구역을 만들어 시스템에 대항하고 있다. 이 악을 끊어내기 위해서, 이곳에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해서 말이다.

  구시대 종탑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더욱 기대가 된다. 







문화보존기구: 프롤로그 -in.NEW, 새로운 인류 (완)


in-NEW 편을 끝으로 문화보존기구: 프롤로그완결되었습니다. 문화보존기구: 프롤로그는 더 이상 업로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부탁드리며 본편인 문화보존기구: 하늘구역 또한 많은 관심과 응원부탁드립니다~

이전 11화 최초의 업그레이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