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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어지럽혀진 기억

by 라나뜨

다시금 정말 내 곁에 이젠 아무도 남지 않았음을 느끼며 나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막연하게 언젠가 갈 수 있겠지, 머나먼 미래에서 뛰놀고 있을 나를 상상하며, 나의 과거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재의 내 상황에 주저하던 찰나 갑자기 들려오는 총소리에 군중의 비명과 요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가득해진다.


쾅!

중앙광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색색의 푯말을 들고 움직이던 시위대 무리에 무장한 요원이 뒤섞이며 싸움이 번진 것 같다. 곳곳에 배치된 요원들의 움직임은 마치 하나의 군대처럼 움직이며 시위대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거대한 폭발로 인해 휘몰아치는 불길은 요원이고 시민이고 할 것 없이 모두를 집어삼켜버린다.

피어오른 불꽃의 검은 재가 하늘을 가리며 구름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푸르렀던 하늘은 사라지고 우중충해진다. 활기찬 시내가 어느샌가 마치 전쟁의 피바람의 보는 듯했다.



"야, 빨리 와~"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왜 이렇게 늦어... 다들 너만 기다리고 있어."

어딘가 1.jpg

'어?'

방금 전까지 정비소에서 임무를 기다리며 중앙광장의 상황을 지켜보던 것은 없어지고 이상한 곳에 와있다.


"자, 다들 자리에 앉아주세요."

심각한 나와 달리 모두들 즐거운 얼굴이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거지? 정비소... 광장은? 사람들은?'

따스한 햇살 아래 푸른 초목이 가득한 이곳에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내 모습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어린아이였다.


그때 내 뇌리에 스치는 무언가.

'이전의 내 기억인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곳, 기분이 이상하다. 빨리 임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려야 했지만 무의식에 움직이는 내 몸을 어찌할 수 없었다.


"박수!"

무리 중의 리더로 보이는 한 아이를 따라 모인 아이들이 일제히 박수를 친다.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했습니다!"

더욱 커진 박수 소리와 아이들의 환호 소리가 불쾌하게 느껴진다. 특히 저 무리 중심의 아이가 계속 아른아른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건 무슨 감정이지? 뭐지... 뭘까.'


"뭐 해, 빨리 앞으로 나가야지."

그녀가 내게 속삭인다.


"나?"


"여기 너 밖에 더 있니? 오늘 네 생일이잖아."

내 손을 붙잡고 활기찬 아이들 무리로 이끄는 그녀를 따라 앞으로 걷는다.


"생일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잊힌 기억의 저 편에서 무언가 떠오를락 말락 한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 )아. 혹시 뭐... 불편한 거 있어?"

분명 그녀는 내 이름을 말했지만, 내겐 들리지 않는다. 이건 아마도 내가 요원이 되기 전, 잊힌 나의 과거일 것이다.


"생일? 생일이라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여기 어디야?"


"왜? 장소가 마음에 안 들어? 네가 중앙광장에서 하고 싶다고 했잖아."

초롱초롱했던 그녀의 눈빛이 조금 흔들린다.


그리고 기억났다. 잊고 싶었던 나의 끔찍한 과거, 내 곁에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이었다.


띠-이. 띠-이.

갑자기 들리는 이명, 괴롭다기보다는 불쾌감이 느껴진다.

"으... 으아..."


"뭐야, ( ).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머리가 아파온다. 무겁고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듯 제대로 서있기가 힘들다.


"괜찮___ _ ___."

서서히 그녀의 소리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 조용한 푸른 초목들의 아름다운 자연이 멀어져 간다.


'으... ...'

"괜찮으세요?"

내 앞에 사람이 있다.


꿈을 꾼 듯 정신이 몽롱했다. 폭발의 여파로 공기가 뜨겁고 열기가 느껴진다. 이어진 연쇄 폭발로 인해 땅의 진동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괜찮은 거 맞죠?"


이 사람과 부딪힌 건지 나는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다.

"후..."

천천히 나를 부축이려는 사람의 손에 붙들려 일어선다.


"죄송해요, 어떡하죠? 피가 멈추지가 않아요. 제가 가진 거라고는 검은 알약 밖에 없어서 이거라도 드세요."

그가 말 그대로의 검은색 알약을 내게 건넨다.

"지혈에 도움이 될 거예요."


_야!

정신없는 와중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_ --트리샤!

"어, 갈게!"


'트리샤?'

익숙한 이름이다. 어쩌면 잊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 속에서 마주쳤던 그 얼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저기 혹시.."


"진짜 정말로 죄송해요. 일단 그것으로 지혈하세요. 저는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가 자리에서 빠르게 자리에서 떠났다.


'아까 그건 뭐였지? 도대체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기억 파편인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상황이 급박하게 바뀐다. 연이어 터지는 폭발과 총성에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광장은 태풍이라도 지나간 듯 부서지고 무너지고 터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맞다, 나 임무 중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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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지?"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사방팔방 흩어지고 모이며 요원들도 한데 뒤섞여 상황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auto_{임무 상황 업데이트 완료, 확인 필요!

갑자기 임무 리스트를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인기어에서 전해온다.

auto_{임무가 수정되었습니다. 예상외 시민 증가 중(시민 집중 300만 돌파, 집계 불가), 요원들은 재배치된 좌표로 이동하세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광장에 모여있는 시민의 시위대 열기를 느낄 새도 없이 벌써 광장에 집중된 시민의 인구만 350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추정치이긴 하지만 다소 거대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였다.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게 문제야. 진압되어야 할 건 시민인데, 왜 오히려 요원들의 수만 줄어가고 있는지..'


과격 진압이어도 요원의 최종 목표인 시민의 안전을 위해 몇 없는 요원들이었지만, 중앙정부는 광장에 요원들을 재배치했다. 나도 임무 리스트로 받은 좌표를 확인했다.

"완전 반대쪽이잖아."

서둘러 배치된 좌표로 뛴다. 어느새 500만을 향해 가는 시민들,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윽!"


괜찮아?

하하하.

또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숨쉬기 힘들어진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호흡을 반복한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후우... 스읍, 후우...'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반복되는 그 목소리.


'스읍, 후우...'

목소리가 서서히 멀어진다.

여전히 시민들로 가득한 광장, 이번엔 다른 건물에서 큰 화염이 몰아친다.

'이러다가 진짜 큰일이라도 나겠어!'


띠링- 띠링-

인기어의 붉은 느낌표가 울린다.

auto_{임무 상황 업데이트 완료. 예상외 시민 증가 중(시민 집중 600만 돌파, 집계 불가), 임무 리스트 확인 즉시 모든 요원은 본부로 집결하세요.


"본부 집결? 설마 본부에도 일이 났나? 시민들이 그곳까지 들어갔을 리는 없는데..."

중앙광장의 상황은 처참했다. 다행히 건물들은 부유 빌딩이라 무너져 내려도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죽어나간 시민과 요원의 피해는 극심했다.

"하지만 모이라고 했으니 본부로 가는 수 밖에는 없겠어."

본부로 돌아가기 위해 타오르는 불길을 등지고 달린다.


가까운 가족들, 친구들을 잃은 시민들의 울음소리와 무장한 요원과 대치하는 시위대의 거센 반발, 그럼에도 여전히 터져나가는 폭발과 부유 빌딩의 부서지고 무너져 추락하는 모습, 형체 없는 불길의 매서운 죽음의 공포까지 일대는 그야말로 지옥과 다름없었다.

"어쩔 수 없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두근, 두근!

또다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죽은 시민들의 모습에 가족들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아니야, 아니야.'

검은 알약을 이에 물고 아득하는 소리와 함께 씹어 삼킨다.

'후우... 후우... 지금은 약빨로 버티는 수밖에. 진정되면 해독제를 먹어야겠어.'


검은 알약의 효과는 굉장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릿속의 혼란스럽고 복잡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평온한 마음을 되찾았다. 달리는 와중 체력이 넘쳐나는 것을 느낀 나는 더 빠르게 본부를 향해 질주했다.

'참아, 이런 감정은 안돼. 절대로.'

도와달라 울부짖는 시민들의 손길을 등지면서 말이다.





멀리 높이 솟은 연방정부 본부 계시의 나탑이 보인다. 크리쳐로부터 도시를 지켜줄 요격 화기로 무장되어 꼭대기에는 도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루시드환공 터미널을 떠받들고 있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설마?'

빨리 온다고 검은 알약에 힘입어 미친 듯이 질주했건만 제발 아니라고 믿고 싶다.


불이 꺼진 로비,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아닐 거야, 아니겠지. 아니야. 본부로 집결하라고 했으니 로비가 아니라 다른 어딘가에 있겠지."

내 숨소리마저도 잡아먹힐 듯 조용한 로비를 지나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간다.


내 앞을 누군가 막아선다.

"거기 누구 있어요?"


빠르게 코너를 돌아 자세를 낮춰 숨었다.

'누구지?'

하지만 나를 본 듯 그 사람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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