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리도 같을 수가
이것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렸을 적 장래희망이 있었는가?
당신은 과거 대통령이나 축구선수, 연예인이라는 꿈을 꾼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그저 막연했던 어린 시절의 이런 꿈이 꺾인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은 어떤 꿈을 꾸는가?
아마 어릴 적 다들 비슷하게 축구선수나 대통령, 연예인, 화가 등을 장래희망으로 적었을 것이다. 요즘은 정부24에서 생활기록부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가끔 정말 궁금해서 그때의 나는 어땠는지, 그때의 내게 선생님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무슨 상을 받았었는지, 아니면 조금의 교훈을 얻고자 다운 받아 볼 때가 있다. 또 추억하고자 하기 위해서 들어가 볼 때가 있다.
나는 처음에는 화가로 시작했다. 지금이야 화가도 순수미술과 상업미술로 나뉘고, 거기서도 또 세분화되지만 어릴 때는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냥 그림 잘 그려서 실력 좋고, 돈 많이 버는 화가가 꿈이었다. 그러다가 부모님께로부터 책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이노베이터(트렌드를 창조하는 자)
저자: 김영세
출간: 2005.5.19
출처: 다음 책
이노디자인 김영세 대표의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너무 좋았다. 왜 좋았는지는 모르겠는데, 독후감 쓸 때 학년마다 한 번씩은 꼭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 롤모델이 김영세 대표님으로 바뀌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 '화가'에서 '산업디자이너'로 구체화되었다. 그래서 나는 뭘 했을까?
고등학교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생기부(생활기록부)에 있는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관련 동아리 활동이나 선생님께 부탁하여 해당 전공과에 유리하도록 적을 수 있었다. 당연히 나도 산업디자인과/디자인과에 진학하려 미술 동아리에 들어가고, 실제로 학교나 시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고, 일단 쓸 것은 많았다. 쓸게 없어서 과장하여 부풀리는 것보다는 쓸게 많아서 필요한 것만 골라 넣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과장해서 넣는 내용이 아니라 실제로 선생님께서 쓴 것을 보면 '이런이런 활동을 통해 이런이런 능력을 고찰하고 이런이런 다짐/성장을 했다.' 정도라서 일단 활동이 많으면 세특이 풍부해졌다. 그래서 열심히 많은 활동을 했으나 한 번 어려움이 찾아왔다.
미술 전공에 진학하려면 실기가 거의 80%라는 거였다. 실기 점수가 80% 들어간다는 소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있는 대학 중 미술전공이 있는 대학들 중 80% 정도가 실기를 본다는 말이다. (입시 전형마다 실기/면접/생기부의 비율은 물론 대학마다 다르다.) 그러니까 내가 가고 싶은 메이저 대학교는 거의 대부분 실기가 포함된다는 소리인데, 나는 실기라는 걸 해본 적도 없고, 그냥 공부 잘하면 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뿐이었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미술 동아리에서 친구들이 자기는 뭐 어느 대학교 가고 싶은데, 실기가 힘들다, 너무 어렵다. 시간 맞추기 힘들다 이야기하면서 나도 저금 조급해졌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부모님께 미술학원을 여쭈었고, 처음에는 취미반으로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가 실기 지식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바로 동기들 페이스에 맞추기가 어렵다는 선생님의 조언에 기초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게 되었지만, 여기서 내가 진학하려는 전공이 바뀌면서 입시 준비가 늦춰졌다.
처음에 미술학원에 가면 학생들의 실력과 어울리는 전공을 찾아 주기 위해 테스트 시험을 본다. 주제는 별 거 없고, 그냥 마음대로 그려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너는 디자인과보다는 애니과에 어울리는데?"
그렇다. 선생님의 뜬금없는 꾐에 내가 아주 그냥 팔랑귀로 걸려버린 것이다. 결국 반강제적으로 '산업디자이너'에서 '애니메이터'로 결정했다.
당연히 실기 과목도 달라질 테니 실질적으로 실기 준비를 시작한 건 고3 상반기 때부터다. 그러니까 나는 적군이 바로 코 앞으로 나를 죽이러 오는 상황에 훈련하고 맞서겠다는 상태였다.
적군: 너 죽이러 왔다~
나: 잠깐만, 나 훈련 좀 하고.
결국 온몸비틀기를 시전해 정시에 예비번호로 합격하고, 잘 다녔다.
여기서 끝나면 언뜻 평범한 미대생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서 나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꾼 '과부하'가 등장한다.
아마 글쓴이의 다른 글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신앙적인 이야기다. 그렇다. 세 번째 과부하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나의 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청소년 때, 학생 때에는 주일(일요일)에 교회를 간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아니, 쉬는 날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 지루한 설교를 들으러 교회를 간다는 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실제로 미술학원을 다닐 때, 단기선교를 여러 차례 다녀왔었는데, 내가 고3 때 입시를 시작한 이후 선생님이나 원장님께서는
그.. 너 외국 갔다 오는 거 안 가면 안 되겠니?
너도 실기 실력 부족한 거 알잖아. 일요일 오전 타임에 학원으로 오면 안 되겠니? 예배는 온라인으로도 하던데.
등등..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들이 나빴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은 신앙 있는 믿는 자들이 아니고, 단순히 학생과 학원에 도움이 되도록 내게 말을 한 것뿐이다. 그래서 미워하거나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언제나 장이 있으면 단이 있고, 선이 있으면 악도 있고, 좋은 면이 있으면 이면도 있으니까. 보는 시선에 따라 생각과 해석이 달라지니까 나는 이해했다.
그렇게 학원을 다니며 정말 절대 안 되는 예비 번호를 받고 은혜롭게 대학에 합격하여 대학을 다니던 중 방학 때 또다시 터키로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이전에 갔던 곳이지만, 또 간 이유는 별 거 없다. '그냥' 갔다. 가고 싶어서 간 거다. 가서 많은 친구들을 다시 만났고, 울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고, 사고 일으켜서 혼나기도 했고, 진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날, 무조건 마지막이 중요하다.
교회에서도 수련회 같은 것을 보면 처음에는 즐겁고 신나는 시간에 예배가 중간중간 낀 시간표인데, 항상 마지막이 중요하다. 일반적인 예배에서도 마지막이 제일 중요하다. 바로 기도하는 시간이다.
나는 여느 때처럼 기도했다. 간절히 심혈을 기울여 방언하면서 큰 소리로 아주 그냥 목에서 피맛이 나도록 기도했다. 그랬더니 뜨거운 마음을 주셨는데, 이게 뭔지 여기에 말을 할 수는 없다. 하나님과 내가 옛날에 어릴 때 약속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떠올리게 해 주셨다.
참 신기하지. 내가 잊고 살았던 것을 떠올리게 해 준다니.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니까 말이다.
[ 집 나가면 개고생 ] 브런치북을 보면 알겠지만, 저 단기선교를 다녀오고 하나님께서 떠올리게 해 준 그 약속을 통해 학생선교사를 준비하게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브런치북에서 확인하기를..)
잘 마치고 돌아왔고, 나는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두려움이 들고,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어떤 일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아니라 터키에 남아 있을 내 친구들이 혹여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거나 내가 전한 복음을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는 거다. 지옥에 가지는 않을까 두렵다는 거다.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다. (아멘!) 하지만 저 먼 나라에 사는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두려운 거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래서 나는 하나님과 약속한 나의 그 선포를 천천히 은혜로 취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가야 하는 길이구나. 천천히 헌신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 천천히 인정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만 할 수 있구나.
선교사라는 업은 직업이 아니다.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돈을 쓰는 일이다. 어디 회사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고, 어디 자격증이나 등록된 것도 아니다. 그냥 눈에는 안 보이는 하나님의 기록하신 생명의 책에 이름이 적힌다고 믿을 뿐이다.
그러면 선교사가 얻는 것은 있을까? 없다. 그냥 없다. 한국에 돌아오면 반기는 사람도 없다. 교회에서도 아무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도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기쁘게 교회도 개척하고 복음도 전하고 은혜로운 시간을 보냈지만,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는 어디 군대나 갔다 온 줄 알거나 관심도 없고, 가서 뭐 하냐 그 시간에 공부해서 학위 따거나 취업이나 하라는 사람도 있고. 도와주는 사람 없다. 알아달라는 건 아니지만, 잘 다녀왔어 한마디면 되는데 여행이라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기 갈 돈으로 기부나 하라는 사람이나 세상 쓸데없다고 절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박수 쳐줘야 한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하라고 해서 한 것도 아니다. 그냥 단순히 가야 할 것 같아서, 그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어서, 그들을 사랑해서 하나님만 믿고, 그냥 가는 거다.
일반인들이 보면 왜 하냐고 반문할 수 있는 일이다. 득이 되는 건 하나도 없고, 잃을 것만 많기 때문이다.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 나도 1년뿐이었지만, 자필증서유언을 썼다.)
내가 학생선교사를 준비할 때는 별생각 없이 '그래, 가보자. 가는 거야.' 하나님과 약속했으니 그것을 위해서 가야 한다는 약간의 의무감이 있었다. 그런데, 파송을 받고, 터키 공항에 딱 도착한 순간 알았다. 하나님이 나를 기다렸다는 것이 느껴졌다. 한 7~8년 전에 작게 지나가듯 기도한 것을 나는 잊어버렸는데, 하나님은 하나하나 기억하며 기다리셨구나. 알아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애니메이터'에서 '선교사'로 꿈이 바뀌었다. 이 전환점은 단순히 미래의 직업이 바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나의 걸음이다. 애니메이터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중심은 하나님이라는 소리다.
하나님에게도 꿈이 있다. (음.. 내가 이 말을 다른 글에서 한 번 썼던 것 같은데..) 하나님 자신만의 꿈도 있고, 우리 모두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꿈도 있다. 하나님의 꿈은 뭐니 뭐니 해도 구원 아니겠는가. 온 세상천지의 모든 피조물의 구원과 심판.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듣는 것.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꿈은 나는 모른다. 나는 내 꿈만 안다. 각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여쭤볼 순 있다. 하지만 하나님도 강제하진 않으신다. 왜냐면 인간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으니까.
나는 하나님과의 약속한 것이 있어 반강제적으로 선택했지만, 결국 지금은 헌신하려 한다. 인정하려 한다. 나는 이 길을 갈 것이다.
뭔가 내 생각을 하나님도 하고 계시다는 느낌이 든다. 하나님의 완전한 생각이 내 생각과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 생각이 그분의 생각에 포함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
취업 못하면 어때. 죽는 것도 아니잖아.
돈 못 벌면 어때. 죽는 것도 아니잖아.
대학 졸업 못하면 어때. 죽는 것도 아니잖아.
가난하면 어때, 능력 없으면 어때.
없어도 돼.
하나도 없어도 돼.
아무것도 없어도 돼.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향한 말이다.
결국 지금까지 나는 과부하인 걸로~
아무것도 없는 과부하.